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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원불교 최고 어른이 기억하는 이건희 회장

 원불교는 26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소태산기념관 대각전에 분향소를 마련해 원불교도를 비롯한 일반인의 조의를 받기로 했다. 아울러 이건희 회장의 장례도 교단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고인이 출석 교도로 등록된 서울 원남교당에서 매주 토요일 천도재를 지내고, 다음달 8일에는 전북 익산의 원불교 총부에서 추도식을 열기로 결정했다.  
 
고인이 원불교와 인연을 맺은 데도 삼성그룹 창립자인 부친 고(故) 이병철 회장의 천도재가 큰 계기가 됐다. 부인 홍라희 여사의 모친 고(故) 김윤남(신타원 김혜성 원정사) 여사가 워낙 신실한 원불교도였다. 장모와 부인의 권유로 고인은 원불교에 교적을 올렸다.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은 1987년 부친 이병철 회장의 천도재에서 원불교 법호를 받았다. [중앙포토]

삼성그룹 고 이건희 회장은 1987년 부친 이병철 회장의 천도재에서 원불교 법호를 받았다. [중앙포토]

1987년 12월 13일 전북 익산 왕궁면의 중앙훈련원 소법당에서 열린 이병철 회장 천도재에서 이건희 회장은 원불교 대산 김대거(1914~98) 종법사로부터 ‘중산(重山)’이란 법호와 ‘중덕(重德)’이란 법명을 받았다. 종법사는 원불교 최고지도자다. 원불교를 창교한 소태산 대종사에 이어 제2대 종법사를 역임한 정산 종사, 제3대 종법사를 지낸 대산 종사는 원불교 교단에서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이병철 회장 천도재는 원불교단 간부와 총부 인근의 교도 100여 명이 참석해 유족과 함께 거행됐다. 당시 대산 종법사의 특별 천도 설법이 이건희 회장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고 한다.  
 
천도재에서 대산 종법사는 ‘호암 이병철-오직 불심에 귀의하여 가소서’란 제목으로 설법을 했다. “선생이 이 나라 경제계에 공헌한 공덕에 대하여 평소 큰 박수를 보내 왔는데 갑자기 부음을 접하니 놀라움과 애도하는 마음 금치 못하는 바입니다”라고 운을 뗀 뒤 대산 종사는 “선생이 끼친 빛나는 공덕은 영원한 세상에 선생의 무한한 복록이 될 것이며, 이제 오직 불심에 귀의하여 큰 서원 세우고 착(着) 없이 가시는 일만 남았음을 명심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원불교 제3대 종법사를 역임한 대산 김대거 종사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만나고 있다. [중앙포토]

원불교 제3대 종법사를 역임한 대산 김대거 종사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만나고 있다. [중앙포토]

 
이어서 대산 종법사는 “영가의 과거 일생은 고락 영고를 막론하고 이미 다 마쳤사오니 과거의 세간 애착은 조금도 염두에 남기지 마시옵고 오직 생멸 거래가 없고 망상 번뇌가 끊어진 본래의 참 주인을 찾아서 미래 세상에 반드시 불과를 얻고 대중을 이익 주며 금생에 모였던 모든 선연도 불토극락에 다시 만나서 한 가지 도업을 성취하옵기를 깊이 축원하오며 간절히 부탁하옵나이다”라고 설법했다. 당시 대산 종사의 천도재 설법은 『대산종사법문집』에도 수록돼 있다.  
 
이날 대산 종사는 이건희 회장에게 법랍과 원불교 전서 등을 선물했다. 아울러 12인연 법문과 법위등급을 해설하는 법문을 통해 이건희 회장에게 큰 인물이 돼 줄 것을 당부했다. 천도재 이후에 이건희 회장은 홍라희 여사나 김윤남 여사와 함께 대산 종사를 종종 찾아뵙곤 했다.  
 
고 이병철 삼성창업주와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80년 삼성본관 집무실에서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삼성]

고 이병철 삼성창업주와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80년 삼성본관 집무실에서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삼성]

 
대산 종사에 이어 원불교 제4대 종법사를 역임한 이는 좌산 이광정(83) 상사다. 좌산 상사는 현재 원불교 최고 어른이다. 선(禪)과 수행에 대한 안목도 무척 높다. 좌산 상사는 25일 이건희 회장의 부고를 접하고 “참 말수가 적은데, 얼마나 생각이 깊은 분인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좌산 상사는 이건희 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러니까 48년 전이었다. 그때 저는 교단의 교화부장을 맡고 있었다. 서른 여덟 살쯤 됐으니 저도 젊었다. 당시 대산 종사님이 익산 왕궁면 묘원에 계셨다. 가족과 함께 이건희 회장이 왔는데, 인상에 아주 무게감이 있었다. 그런 정중함이 있었다. 그게 아주 크게 와 닿았다.”
 
그때부터 좌산 상사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유심히 살폈다고 한다. “일단 사람을 신뢰하면, 그 사람에게 모든 걸 일임한다. 그리고 당신은 미래지향적이고 첨단지향적인 구상을 했다. 그러다가 몇달 지나면 세계 최초, 또 몇달 지나면 세계 제일을 내놓았다. 그걸 보면서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예전에는 우리가 소니 같은 일본 기업을 얼마나 부러워했나. 지금은 삼성이 세계를 앞서고 있지 않나. 그걸 해낸 사람이다.”
 
좌산 이광정 상사는 "이건희 회장은 참 말수가 적은데, 얼마나 생각이 깊은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중앙포토]

좌산 이광정 상사는 "이건희 회장은 참 말수가 적은데, 얼마나 생각이 깊은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중앙포토]

 
구 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할 때였다. 좌산 상사는 러시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러시아 개방 초기였다. 공항에 내렸는데 삼성 간판이 이미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더라. 그걸 보니까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게 자부심이 들더라. 고인은 그처럼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를 살려주는 역할을 했다.”  
 
고인의 법호는 ‘중산(重山)’이다. 좌산 상사는 그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무거울 중, 뫼 산이다. 무거운 산이다. 고인의 진중함, 인격적 무게감도 있다. 그렇지만 저는 고인이 세상에 끼친 은혜의 무게가 그처럼 무겁다고도 본다. 삼성이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선두 주자 역할을 하지 않았나.”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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