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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잘 꼬시는 학문이냐" 첫 서울대 여성학 박사인 이 남자

서울대에서 여성학 협동과정 박사학위를 받은 신필식 박사가 2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서울대에서 여성학 협동과정 박사학위를 받은 신필식 박사가 2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남자가 여성학을 배운다고 하니까 ‘여자를 더 잘 꼬시기 위한 학문이냐’ ‘연애 잘하려고 배우는 거냐’ 묻는 사람도 있었죠.”

 
국내 ‘남성 최초 여성학 박사’로 불리는 신필식(43) 박사의 얘기다. 신 박사는 2020학년도 1학기를 끝으로 서울대에서 10년간 여성학 박사학위 과정을 마쳤다. 1999년 서울대에 여성학 협동과정을 만든 뒤 남성이 박사학위를 받은 건 신 박사가 처음이다.
 
신 박사는 “학위가 없더라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기울인 수많은 선배가 있기 때문에 ‘남성 최초’라는 타이틀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다른 남성들에게 여성학을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명예로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웃었다.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여성학을 공부하며 느낀 점을 들어봤다.
 

“여성학 배운 뒤 일상 변화”

서울대를 상징하는 마크 앞 학생들이 모여있는 모습. [뉴스1]

서울대를 상징하는 마크 앞 학생들이 모여있는 모습. [뉴스1]

여성학 대학원에 몸을 담는 동안 신 박사는 ‘소수자’가 되는 경험을 했다. 교수, 선후배 모두 여성이 대다수여서다. 신 박사는 “교수님이나 동료들이 내가 남자란 이유만으로 이상하게 쳐다본 적은 없다”면서도 “남중·남고·이과대를 나와 남자만 많은 곳에 있다가, 태어나 처음으로 소수자 위치에 서보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예전에는 결혼·출산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학을 배운 뒤 상대방에게 결혼 여부를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라는 걸 알게 돼 멈칫할 때가 많았다”며 “일상 속에서도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여성학, 남성에게도 깨달음”

서울대에서 여성학협동과정 박사학위를 받은 신필식 박사가 2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서울대에서 여성학협동과정 박사학위를 받은 신필식 박사가 2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여성학에 거부감을 가진 남성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여성학을 단순히 ‘남성에 대한 공격’ ‘남성 혐오’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며 “여성학이 ‘여성을 위한 학문’은 맞지만, ‘여성만을 위한 학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들이 피해자’라고 이야기만 하면 이에 반박하면서 화를 내는 일부 남성들이 있다. 발끈할 게 아니라 사회 구조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여성학은 남성에게도 깨달음을 줄 수 있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성들은 밤늦은 시간에 귀가할 때, 택배를 받을 때조차 굉장한 두려움을 느낀다. 남성들은 흔히 경험하지 않는 일”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남성들은 구조적인 수혜자, 혹은 암묵적인 방관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부장제 벗어나는 백신 맞았다”

신필식 박사가 쓴 박사학위 논문 '한국 해외입양과 친생모 모성'. [서울대 중앙도서관]

신필식 박사가 쓴 박사학위 논문 '한국 해외입양과 친생모 모성'. [서울대 중앙도서관]

신 박사는 여성환경연대에서 약 15년째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뒤 환경대학원에서 공부하던 그는 여성환경연대 활동을 통해 에코 페미니즘을 접했다. 이후 관심사는 자연스레 여성학으로 옮겨갔다. 여성 농업인 등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에선 아예 여성학을 주제 삼았다. 
 
그는 “누군가 내 모습을 보고 ‘남자도 함께 여성운동을 할 수 있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정말 좋겠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선 ‘남성 페미니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그는 “왜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디지털 성범죄 혹은 기타 범죄로 인해 일부 남성에 대한 깊은 실망과 불신을 느꼈다는 징후가 아니겠냐.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돌봄·재생산이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도 ‘한국 해외입양과 친생모 모성’이다. 자녀를 해외로 입양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한 연구다. 그는 “아직 우리나라엔 여성학과가 있는 학교가 적다. 연구할 수 있는 기관도 많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학을 배우며 가부장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백신을 맞았다”며 “어린 두 자녀에게 ‘가부장적이지 않은 아버지’란 선물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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