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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실직·이혼·우울증… "같이 죽자" 모인 2030의 결말

동반자살 이미지. 연합뉴스

동반자살 이미지.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4일 동대구역. 20대 후반~30대 초반 성인 남녀 3명이 전국 각지에서 KTX를 타고 도착했다.  
 

[사건추적]

이들이 KTX에서 내려 각자 이동한 곳은 대구 달성군 구지면의 작은 빌라. 빌라에 살던 변모(29)씨는 이들이 각자 문을 두드릴 때마다 집안으로 들여보냈다.
 
생면부지 남녀 4명이 얼굴을 마주한 목적은 딱 하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었지만, 혼자 하기가 무서워서다. 변씨가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함께할 사람을 찾았다. 게시글에 ‘OOOO(동반자살을 암시)’ 해시태그(#)를 달았다.
 
다른 사람은 포털에서 해당 문구를 검색했다가 변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을 발견했다. 이들은 각각 변씨의 글에 ‘진지하게 같이 가실 분 구합니다’라거나 이와 비슷한 댓글을 달았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통성명했다. 스마트폰 메신저 프로그램 아이디를 주고받은 뒤, 카카오톡으로 극단 선택을 모의했다. 변씨가 자신의 집을 장소로 제공하고, 다른 사람이 도구를 준비하는 내용이었다.
 

SNS로 극단 선택 모의한 2030

SNS에서 동반자살자를 모집하는 사람들. [트위터 캡쳐]

SNS에서 동반자살자를 모집하는 사람들. [트위터 캡쳐]

4명은 이날 변씨의 집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요즘 2030 세대라면 누구나 한번 쯤 고민했음 직한 이유를 서로 털어놨다. 서울에서 온 최모(24) 씨는 어릴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 어려운 상황에서 힘겹게 번 돈을 믿었던 친구에게 떼였다. 사기 피해를 본 뒤 제대로 거처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경주에서 찾아온 서모(31)씨는 경제적 이유가 컸다. 이날 모인 사람 중 유일한 30대였던 그는 다니던 직장에서 실직하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장소를 제공한 변씨는 이혼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경기도 여주에서 온 송모(22)씨는 우울증을 앓았다. 이들 중 가장 어린 데다 부모도 멀쩡히 살아있었다. 꽤 잘 산다는 인상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때문에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송씨의 극단 선택 동기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자살 내몰리는 20대. 그래픽 김영희 기자

자살 내몰리는 20대. 그래픽 김영희 기자

이들은 자정 무렵 약속대로 계획에 착수했다. 변씨가 작은 방 한가운데 한 물체에 불을 붙였다. 함께 잠을 청했지만, 연기는 생각보다 독했다. 4명은 콜록거리며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변씨만 숨졌다. 살아남은 이들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들은 “산으로 올라가면 저체온증으로 죽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막상 올라갔더니 너무 추워서 다시 내려왔다”고 진술했다.  
 

살아남은 뒤로도 서로 다른 길

자살 사망률 추이. 그래픽 김영옥 기자

자살 사망률 추이. 그래픽 김영옥 기자

얼어 죽는 데 실패한 이들은 다시 변씨 빌라로 돌아왔다. 재차 극단 선택을 시도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최씨는 이 와중에 친구와 페이스북 메신저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1명은 이미 죽었고, 우리도 곧 죽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최씨 친구의 제보를 받은 대구달서경찰서는 즉시 빌라를 찾았다. 현장 도착 당시 변씨는 이미 작은방에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최씨·서씨는 연기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송씨는 거실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경찰은 무료 숙식을 제공하고 자활을 돕는 기관에 이들을 넘겼다. 당시 출동한 서태규 달서경찰서 형사과 형사 등은 "아직 젊은데 열심히 살라"며 집으로 돌아갈 교통비까지 쥐여주며 달랬다.  
 
사망자를 제외한 이들은 모두 변씨 자살을 방조한 죄목으로 기소됐다. 살아남은 이후에도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 경찰 관계자는 "송씨는 다시 가출해 극단 선택을 시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반면 최씨는 주민센터 직원 도움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씨는 병원 치료를 마친 뒤 가족에게 넘겼다. “가끔 안부 전화가 오는 것을 보니 서씨가 잘 사는 것 같다”는 것이 서 형사의 얘기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사업 현황’자료에 따르면, 올해 극단 선택을 시도한 사람은 1만5090명이었다(1~8월 기준). 이 중 20대가 28%를 차지했다. 특히 20대는 지난해 같은 기간(2951명) 대비 올해 자살 시도 증가율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43%).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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