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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대 曰] 나훈아 노래의 철학성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나훈아 신곡 ‘테스형’의 인기를 타고 각종 패러디가 잇따라 나온다. 테스형의 ‘테스’ 자리에 다른 사람 이름을 넣어 부르곤 한다. "OO형, 세상이 왜 이래?” 이런 식으로 변형시켜 궁금한 걸 묻는 것이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겠지만 테스형의 테스는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가리킨다. 그런데 ‘서양철학의 아버지’로 통하는 그 이름에 눌려 더 중요한 것을 놓쳐선 안 될 것 같다. 테스형이란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이 왜 이래’라는 물음이다. 물음에서 철학은 시작한다.
 

2003년 ‘공’에서 2020년 ‘테스형’까지
삶의 의미를 묻는 순간 누구나 철학자

나훈아의 노래에 언제부터 이런 철학적 물음이 들어가게 된 것일까. 1982년 5월 2일 발행된 주간지 ‘선데이 서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훈아 마니아’인 이재술 와인소믈리에를 인터뷰하면서 그가 수집해놓은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월간중앙’ 11월호 참조〉
 
‘선데이 서울’에는 나훈아와 영화배우 김지미 관련 기사가 실려 있었다. 당시 나훈아와 김지미는 부부 사이였다. 이 기사의 내용 중에 "나훈아는 노래에도 인생이 들어가고 철학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부부끼리 종종 주고받는다고 한다”는 구절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부부끼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노래에도 인생과 철학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그냥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나훈아의 작사·작곡 능력은 일찍부터 발휘됐다. 72년에 가수 조미미가 부른 ‘사랑은 장난이 아니랍니다’는 앞서 71년에 나훈아가 작사·작곡해 불렀던 노래다. ‘해풍’ ‘그리움’ 등이 담긴 나훈아 자작곡집을 72년에 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66년 데뷔부터 70년대까지 나훈아의 싱어송라이터 이미지는, 필자의 기억으로는 좀 약한 것 같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강해졌고 또 노래 가사의 의미도 깊어져 가는 듯한데, 그 분기점은 ‘선데이 서울’ 기사에 보이듯 80년대 초반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올해 발표한 또 다른 신곡인 ‘명자’라는 노래도 의미심장해 보인다.
 
크게 화제가 됐던 올해 추석 공연에서 나훈아가 ‘테스형’에 곧바로 이어 부른 노래는 ‘공’이었다. 필자에겐 이 ‘공’이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보였다. 노래를 배치한 순서가 절묘했다. ‘공’은 2003년에 나훈아가 작사·작곡해 발표했는데 이렇게 노래한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진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 년도 힘든 것을/ 천 년을 살 것처럼….” 불교의 ‘공(空)’ 사상을 나훈아식으로 풀어낸 노래인데,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세태를 풍자한 테스형과 대비된다. 그는 아마 테스형이 몰고 올 파장을 미리 내다본 듯하다. ‘공’의 노랫말을 좀 더 보면 그런 느낌이 더 분명해진다. "살다 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철학은 거창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삶의 의미를 물을 때 우리는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철학은 물음에서 시작해 비움으로 끝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요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나훈아 노래만큼이나 삶의 의미를 묻고 느끼면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개인과 사회는 밀접히 연결돼 있다. 물음은 개방적이어야 한다. 물음이 사라진 사회, 질문을 봉쇄하는 사회는 죽은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물음도 던질 수 있겠다. 사모펀드는 왜 이래, 법무부 장관과 검찰은 왜 이래, 코로나19는 계속 왜 이래, 미세먼지는 또 왜 이래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많은 물음이 있겠지만 가장 소중한 질문은 밖이 아닌 나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다. 나는 어떤 물음을 나에게 던지며 살아가고 있는가.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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