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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NHN, 여행박사 버릴거면 내게 버려라” 열받은 창업주

여행박사 신창연 창업주. NHN 여행박사의 대규모 정리해고 방침이 알려지자 자신에게 여행사를 넘기라고 23일 전격 제안했다. 손민호 기자

여행박사 신창연 창업주. NHN 여행박사의 대규모 정리해고 방침이 알려지자 자신에게 여행사를 넘기라고 23일 전격 제안했다. 손민호 기자

“회사는 언젠가 망합니다. 사람이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회사도 어떻게 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다시 여행박사를 맡아도 회사는 망할 겁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망하지는 않을 겁니다. NHN에 제안합니다. 여행박사를 버릴 거면 나한테 버리십시오.”
 
23일 오후 신창연(58) NHN 여행박사 창업주가 서울 상암동 중앙일보를 방문해 “알량한 돈 몇 억 때문에 폐업을 각오하고 정리해고를 할 바에는 몇억을 내가 책임질 테니 그 자리를 나에게 넘겨달라”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20년 가까이 일군 여행사를 NHN에 넘기고 여행업을 떠났었다. 
 
20일 NHN 여행박사 양주일 대표가 일부 직원에 보낸 이메일이 깜짝 발표의 발단이 됐다. 양 대표는 ‘술 먹고 썼다’는 이메일에서 사실상의 정리해고 방침을 알렸다. ‘이 시간이 안 왔으면 했지만’  ‘내일은 해가 늦게 뜨면 좋겠습니다’ 같은 표현을 동원한 이메일은 코로나 사태를 버티지 못한 여행사 대표의 안타까운 사연인 양 퍼져나갔다. 바로 이 대목이 집에 있던 신창연 창업주를 자극했다. 
신창연 창업주가 건넨 이메일 원고. 원래는 NHN 경영진에 보내려다 중앙일보에 제공했다. [이메일 캡처]

신창연 창업주가 건넨 이메일 원고. 원래는 NHN 경영진에 보내려다 중앙일보에 제공했다. [이메일 캡처]

결심은 언제 했나.
정말 많은 사람이 이메일 기사를 보내왔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21일 ‘회사를 버리려면 나에게 버려라’는 글을 썼다. NHN 대표에 보낼까, 페이스북에 올릴까 고민하다 중앙일보를 찾아왔다.
 
양주일 대표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인가.
여러 직원에 물어봤다. 회사가 어려우면 직원들과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NHN 경영진은 그러지 않았다. 전체 직원과 고민하는 자리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일부 직원은 알았을지 몰라도 250명 직원 대부분은 일방적인 통보만 받았다.
 
양 대표는 정리해고가 아니라 희망퇴직이라고 한다.
1주일 기한을 주고 희망퇴직을 신청하라고 했다. 그러면 한 달 월급을 주고, 신청하지 않으면 정리해고한다고 했다. 이게 희망퇴직인가. 내쫓는 거지.
 
코로나 사태로 다들 어렵다. 여행사가 특히 어렵다.
내가 맡아도 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닥을 치면 구멍을 파면 된다. 나 같으면 비전을 제시하고 같이 고생하자고 했을 것이다. 월급을 10%만 받아도 신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회사 부동산만 정리해도 최소한 1년은 버틸 수 있다. 400억원 가까이 들여 여행박사를 인수한 대기업이 몇억원이 없어 직원을 내보낸다는 걸 어떻게 믿나. 이미 여행업계에선 정리해고 소문이 파다했었다.  
신창연 창업주가 보내준 카카오톡 대화방 화면. 신창연 창업주와 함께 일했던 여행박사 임직원들의 단체 대화방이다. 신창연 창업주는 직원들에게 '망해도 멋지게 망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캡처]

신창연 창업주가 보내준 카카오톡 대화방 화면. 신창연 창업주와 함께 일했던 여행박사 임직원들의 단체 대화방이다. 신창연 창업주는 직원들에게 '망해도 멋지게 망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캡처]

폐업은 아니다. 직원 10명은 남긴다고 들었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상적인 여행사 영업은 포기한 것이다. 들어보니 NHN은 고용유지지원금도 5월에서야 신청했다고 한다. ‘아빠 회사(NHN 본사)’가 부자니 지원금은 필요 없다고 했단다. 양주일 대표 전임 임원의 부당한 경영 방식에 대해서도 들은 게 있다. 나는 NHN이 그들의 경영 실패를 코로나 사태로 덮으려 한다고 생각한다.
 
여행박사를 다시 맡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어차피 버리려면 나한테 버리라는 것이다. 그럼 잘하겠다. 월급도 필요 없고, 주식도 필요 없다. 내가 다시 맡겠다는 건 이 작은 여행사가 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여행사 생활 내내 나는 가족보다 직원들과 더 가까이 지냈다. 직원들이 내 자식이고, 여행박사가 내 인생이다. 이렇게 여행박사가 망하면 내가 X팔린다. 내 인생이 X팔린다. 
 
어쩌면 뜬금없는 제안일 수 있다. 그러나 여행박사라면 사정이 다르다. 2009년 여행박사가 상장 폐지됐을 때 직원들이 똘똘 뭉쳐 되살린 적이 있다. 임직원이 20여억 원을 갹출해 경영권을 확보한 뒤 이내 정상 궤도에 올려놨다. 여행박사는 NHN이 인수하기 전 10여 년간 송출 인원 기준 국내 10대 여행사였다. 
여행박사 임직원의 또 다른 단체 대화방. 직원들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신창연 창업주의 마음이 읽힌다. [카카오톡 캡처]

여행박사 임직원의 또 다른 단체 대화방. 직원들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신창연 창업주의 마음이 읽힌다. [카카오톡 캡처]

여행박사는 대표적인 일본 전문 여행사였다. 특히 금요일 밤 출발해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1박3일 일본 밤 도깨비’는 주말을 이용한 해외여행 붐을 주도한 메가 히트상품이었다. 이색 복지 혜택도 유명했다. 직원이 금연하면 100만원 보상금을 줬고, 전 직원 대선 투표를 달성하면 보너스 1억원을 뿌렸다. 모두 신창연 창업주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2년 전 여행업을 떠날 때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이제 대기업이 맡아서 내 자식을 잘 키워주길 바란다. 자식이 잘되는 것만큼 부모가 좋은 것이 어디 있나.”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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