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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퍼스펙티브] 윤석열 정치적으로 죽는다 해도 진실 변하지 않아

펀드 사기꾼의 말 신봉한 추미애의 칼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아테네 시민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마지막을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라는 말로 장식한다. 오늘 민주당 의원이 다수인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그들은 펀드 사기꾼의 말만 믿고 대한민국의 검찰총장을 범죄자로 몰아가려 할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치적으로 죽는다 해서 형사법적 사실까지 바뀌지 않는다. 진실은 남아 있을 테니 어느 쪽 운명이 나을지는 마지막까지 가봐야 안다. 권력은 유한하고 정권은 바뀌기 마련이니까. 새로운 세상에서 제2, 제3의 윤석열이 등장해 진실이 드러나면 사기꾼의 말만 믿고 칼춤을 춘 법무장관 추미애나 현 집권당 실세들은 순식간에 적폐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검찰총장에 세 번째 올가미 씌우기
범죄 잡는 사람들을 왜 두려워하나
권력은 유한하고 정권 바뀌기 마련
테스형 “죽음보다 비열함이 어려워”

법과 증거가 아니라 힘과 진술에 의해 정의가 결정되는 방식은 문재인 정부의 오래된 습관이다. 이 정권의 추종 세력이나 친여 언론의 행태가 대체로 그러하다. 권력의 보호를 받는 사기꾼의 진술에 온 세상이 놀아난다. 헛물만 켜다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놓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또 다른 거짓의 향연이 반복되곤 했다. 윤석열에 대한 거짓 칼춤은 벌써 세 번째다.
 
첫 번째는 한겨레신문이 저지른 윤중천 진술의 뻥튀기 사건이다. 윤중천은 사기 등 혐의로 5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윤중천이 2013년에 진술했다는 “윤석열 검사장이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드나들었던) 원주 별장에 온 적이 있는 것도 같다”라는 말 한 조각을 한겨레신문이 6년 뒤인 작년에 발견하고 이를 뻥튀기해 “윤석열도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라고 기사화한 것이다. 기사가 나가자 윤중천이 이를 즉각 부인하고 윤 총장이 한겨레 기사를 허위와 명예훼손으로 고소함으로써 윤석열이 원주 별장에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한겨레는 사기 범죄자 윤중천의 한마디를 금과옥조로 여겨 사실처럼 둔갑시킨 데다 과장까지 더했다.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기사가 나간 시점인 2019년 10월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불법 행위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강조하던 때여서 집권 세력은 윤 총장에 대한 공격의 재료로 이 기사를 활용했다. 2020년 5월 한겨레가 부정확한 보도를 인정하고 사과하기까지 ‘윤석열 접대 논란’은 이어졌다. 7개월 만에 사실관계는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그 사이 윤석열의 검찰은 무슨 범죄 집단처럼 난도질당했다. 검사들을 권력의 입맛대로 잡아들일 수 있는 공수처법이 통과되었다. 추미애가 새 법무장관에 올라 세 차례 인사로 검찰총장의 팔다리를 자르고 몸통을 쪼갰다. 윤석열은 홀로 정신만 남아 있는 듯하다.
 
두 번째 거짓 사건은 2020년 3월에 터져 7월에 수그러들었다. 윤석열의 측근 검사와 채널A 기자의 이른바 검언유착 파문이다. 윤 총장의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과 이동재 기자 간 검언유착설은 MBC가 사기 전과자로 여러 번 수감된 적이 있는 지모씨의 말을 토대로 처음 기사화했는데 이 내용을 더 강화해 보도한 KBS가 오보를 사과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MBC와 KBS는 서로 경쟁하듯 한동훈과 이동재의 대화 녹취록에 있지도 않은 ‘검찰의 유시민 범죄자 만들기 기획’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꾸며 보도하였다. 추미애파 애완 검사들은 검언유착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한동훈 검사장에 육탄 공격까지 해댔으나 증명에 실패했다. 녹취록이 공개되자 방송사들의 악마적 편집과 보도는 힘을 잃었다.
 
결국 한동훈 검사장의 유시민 범죄자 만들기 기획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윤석열 총장의 배후설도 사라졌다. 4개월 만에 윤석열과 그 측근의 검언유착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그 사이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가 된 민주당 권력은 묻지마 윤석열 죽이기 체제로 촘촘하게 재편되었다. 그들은 오늘 국감에서 임기가 엄연히 남아있는 윤석열한테 왜 그만두지 않느냐고 떼를 지어 호통칠 것이다. 물론 윤석열이 그 요구에 응할 이유는 없다.
 
세 번째 사기꾼을 활용한 윤석열 죽이기엔 어용 언론이 아니라 추미애 장관이 직접 나섰다. 김봉현은 시중에서 1조6000억원을 끌어모아 1000여명의 돈 5000억원을 꿀꺽 삼킨 희대의 사모펀드 범죄자다. 금융 사기의 오랜 역사에서 우리가 알게 된 진실은 이런 규모의 범죄 행각엔 실세 권력의 비호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윤석열이 추미애한테 수사지휘권을 박탈당하면서 “수사팀은 펀드 사기를 저지른 세력과 이를 비호하는 세력 모두를 철저히 단죄함으로써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닦아 주기 바란다”고 한 말은 그가 표적을 정확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추미애 장관은 엉뚱하게 검찰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는 사기 범죄자 김봉현이 강기정 전 청와대 수석에게 돈을 줬다고 할 땐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하더니 “야당 정치인에게 돈을 줬다.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진술을 하자 득달같이 윤석열 총장 쪽으로 칼끝을 돌렸다. 추미애 장관에겐 사기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감싸기보다 범인 잡는 검찰총장에 대한 미움이 더 큰 모양이다. 추 장관과 민주당 사람들은 왜 범죄자를 쫓는 사람을 두려워할까. 그들은 무엇이 그리 켕기는 것일까.
 
윤석열에 올가미를 씌우려는 정권의 시도들은 사기꾼의 말만 믿고, 앞뒤 재지 않고 몰아붙이다 정반대의 증거가 나옴으로써 순식간에 허망해지는 공통점이 있다. 추미애 장관이 김봉현의 말을 신봉한 사건도 비슷하게 귀결될지 모른다. 진행 형태가 과거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자의 진술은 구명운동이 목표이기에 조금만 지나면 앞뒤가 안 맞고 자가당착에 빠지기 일쑤다. 힘으로 지켜주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 때 추미애의 갈 곳이 없어질 것이다. 한겨레발 윤석열 때려잡기가 7개월 유지됐고, MBC·KBS 두 방송의 경쟁적 협공이 4개월 진행됐으니 이번 추미애의 칼춤은 그보다 더 짧을 것인가.
 
사람들이 되풀이 되고 있는 거짓의 패턴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진실이 허무한 거짓을 몰아내는 속도가 그만큼 빨라지고 있다. 검찰개혁은 알고 보니 수사 잘하는 검사들을 축출하는 것이었다. 그 목적은 시민의 생활은 아랑곳 않고 부패한 정권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검찰개혁으로 법은 죽었다. 그들은 법과 공정을 테러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정적들의 고발이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고 규탄했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으로 지킨 신앙 같은 신념은 진실이 거짓보다 오래간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을 피하기보다 비열함을 피하는 게 어렵다고 하였다. 죽음은 진실을 지킨 사람에게 내려지는 판결이요, 비열함은 거짓으로 남을 죽인 사람이 받게 될 판결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비열함을 남기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이다.
 
민주정치의 타락 속에 죽어간 소크라테스 … 곧이어 나라 망해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사진)가 독배를 마실 때 나이가 70세, 기원전 399년이었다. 그가 아테네 시민 500명으로 구성된 배심원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 기록이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제자 플라톤이 속기록처럼 풀어 저술했다. 플라톤은 스승의 옥중 대화와 최후의 날을 각각 묘사한 『크리톤』 『파이돈』이라는 책도 남겼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다수의 폭력에 의해 자신이 희생됐다는 인식을 표출했다. 그는 변론 도중 틈틈이 “시민 여러분, 야유하지 말아 달라” “고함지르지 말아 달라” “귀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는데 재판정이 선동과 집단감정에 휩싸여 있음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민주정치에서 태어나 북쪽의 스파르타 지배를 받은 독재정치(30인 참주정, tyranny)를 거쳐 다시 회복된 민주정치의 세 시기를 겪는다. 각 시기마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첫 번째 민주정 때 소크라테스는 시민 평의회 위원을 지냈다. 승리한 해전에서 병사를 구출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로 장군 10명의 처형을 결의할 때 소크라테스만 반대했다. 그는 변론에서 “결의안을 지지하는 정치가들은 나를 고발하고 체포할 태세였고, 여러분은 그러라고 고함을 질러댔지만 나는 구금이나 죽음이 두려워 여러분의 부당한 결정을 지지하느니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법과 정의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도시가 아직도 민주정체였을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라고 회상했다.
 
두 번째 독재정치 시기에도 소크라테스는 독재자들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해 처형 위기에 몰렸으나 정권이 교체되는 바람에 살아난다. 세 번째 회복된 민주정치에서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나라가 인정하지 않는 다른 신들을 섬긴다”는 고발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내 귀에 들리는 양심의 소리에 따라 자유롭게 토론하고 표현하며 젊은이들을 가르쳤다’는 취지로 변론했다. 선동 정치에 휩쓸려 대중은 양심, 토론과 표현, 자유로운 교육에 거부감을 가졌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선동 정치, 다수의 폭력, 민주정치의 타락 속에 일어났다. 얼마 있다 아테네는 망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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