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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 봉사’ 아산상 받은 수녀님 “상금 3억 그들 위해 쓸 것”

“그분을 위해 쓰고 싶어요.”

제32회 아산상 대상 수상하는 여혜화 수녀

제32회 아산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여혜화(72·사진) 베네딕다 수녀는 받게 될 상금 3억원을 “주님이 주신 특별선물”이라고 표현했다. 
 
27년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헌신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대상의 영예를 안게 된 여 수녀는 상금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 “오두막집이라도 ‘내 집’ 가지고 싶어하는 가난한 농장 일꾼들에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모두 쓰고 싶습니다.” 
제32회 아산상 대상을 받게 된 여혜화(72) 수녀.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제32회 아산상 대상을 받게 된 여혜화(72) 수녀.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19일 오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메시지를 통해 여 수녀는 이런 입장을 밝혔다.  
 
여 수녀는 1993년 우간다로 떠났다. “처음부터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는 그는 그렇게 삶의 3분의 1 이상을 여기서 보내고 있다. 수도 캄팔라에서 두 시간 떨어진 진자에서 병원과 학교 등을 세우는 데 일조했다. 벽돌 한 장 쌓을 때부터 깊게 관여해 현재 그가 운영 책임자로 있는 진료소(성 베네딕도 헬스센터)에는 하루 평균 200명 이상 환자가 몰린다. 책상 들일 형편이 안 돼 바닥에 아이들을 앉혀 놓고 수업하던 것부터 시작한 유치원·학교는 700명의 꿈을 키울 터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 수녀는 한사코 “수도원 선배님들과 가족이 함께 해낸 일들”이라며 “뒤에서 도와 드리는 재능을 받아 도와 드리는 걸 잘할 뿐”이라고 말한다. 여 수녀는 수녀회 추천으로 필리핀에서 간호학을 전공한 뒤 국내로 들어와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소록도병원에 갔다. 그곳에서 한센인들을 살피던 중 “평생 봉사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간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주님만 믿고 죽을 각오 하고 왔습니다.” 여 수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힘든 일은 많았지만, 주님 도움으로 수도 가족들과 함께 잘 해결해왔다”는 게 여 수녀 얘기다.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뻔한 적도 있고, 에볼라 바이러스가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여 수녀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질병이 아니었다. 
제32회 아산상 대상을 받게 된 여혜화(72) 수녀가 수녀원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제32회 아산상 대상을 받게 된 여혜화(72) 수녀가 수녀원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언젠가 좀 멀쩡해 보이는 청년이 진료소를 닫은 일요일에 우리를 찾아왔어요. ‘일요일에만 시간이 있다. 소문 듣고 왔다’고 하는데 도와줄 수 있었지만 미사 드리러 가고 싶어 주간에 오라며 돌려보내고 미사에 갔습니다. 그때부터 주님께 죄를 지은 듯 두고두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주님 뜻과 달리 내 생각대로 환자를 대했을 때가 가장 아프고 힘들었다”고 여 수녀는 말했다. 
 
여 수녀를 거쳐 간 수많은 환자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이가 있을까. 이웃에 사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환자가 있었는데 부인, 어린 자녀들과 오래 살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했다고 한다. 여 수녀를 포함한 수도원 가족이 약과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이며 회복을 도운 영향으로 잠시 호전됐지만 얼마 가지 않아 증상이 다시 악화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위해 병원 내 입원실을 만드는 등 여럿 수녀가 밤낮없이 분투하는 걸 보고 환자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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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들의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는 죽는 두려움 없이 하늘 집으로 기쁘게 갈 수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여 수녀는 “여러 환자가 남긴 말 중 이 환자가 이렇게 말하며 평안히 눈을 감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제32회 아산상 대상을 받게 된 여혜화(72) 수녀.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제32회 아산상 대상을 받게 된 여혜화(72) 수녀. 사진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여 수녀는 여생을 우간다 식구와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곁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처음에는 마음을 얻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이제 이곳에서 계속 봉사해도 된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 가장 큰 성과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제 2의 고향인 우간다에서 조용히 봉사하며 지역 주민들과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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