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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은 이승만 빙의했고, 조정래는 아직도 지리산 해방투쟁"

‘해방전후사’로 되돌아간 나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소설가 조정래가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 이영훈을 “신종 매국노이자 민족 반역자”라고 비난했다. 이씨가 소설 『아리랑』에 묘사된 일본 경찰의 조선인 학살 장면이 왜곡이라고 비판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이 충돌을 그저 두 자연인 간의 감정싸움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국가 공동체의 기억을 조직하고 그로써 국가 정체성을 정립하는 문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좌우 진영 모두 ‘역사 수정주의’ 착란에 빠져
‘분단에 기생한 친일이 발목 잡는다’는 집권세력
생존자 없으니 죽은 친일파를 무덤에서 꺼내려 해
‘실증’ 부각한 『반일종족주의』는 21세기판 민족개조론
진영 싸움이 자유주의적 권리 제약으로 흘러선 안돼

역사학자 논쟁
 
독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86년 역사학자 에른스트 놀테가 신문에 도발적인 글을 발표한다. “나치와 히틀러가 ‘아시아적’ 행위를 저지른 것은 자기 자신들을 어떤 ‘아시아적’ 행위의 잠재적 혹은 현실적 희생자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수용소군도’가 아우슈비츠의 원조였던 것은 아닐까? 볼셰비키의 계급학살이 나치의 인종학살의 논리적·사실적 선행자였던 것은 아닐까?”
 
놀테의 주장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홀로코스트와 스탈린주의 사이의 ‘인과적 연결’, 즉 홀로코스트는 스탈린주의의 만행에 대한 반작용일 뿐이며, 아우슈비츠의 원형은 소련의 노동수용소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홀로코스트의 ‘유일성(Singularität)’의 부정, 즉 나치의 인종학살은 가스실을 사용했다는 기술적 측면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들이 저지른 범죄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이를 철학자 하버마스가 반박하면서 논란은 ‘역사학자 논쟁’(Historikerstreit)이라 불리는 거대한 논쟁으로 번지게 된다. 논쟁의 배경이 된 것은 신보수화 경향이었다. 70년대 후반 진보가 세계적으로 퇴조기에 들어가자,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보수주의자들이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앞 세대의 죄를 뒤집어쓰고 남에게 사과만 하며 살아야 하는가.’
 
대논쟁의 끝에 홀로코스트와 스탈린주의 사이의 인과적 연결은 없으며, 홀로코스트가 유일성을 띤다는 사실이 재확인되었다. 한 인종집단을 멸종시키기 위해 국가 기관이 조직적·체계적 프로그램을 가동한 예는 역사에 유례가 없다는 것이다. 놀테의 주장은 명백히 나치 범죄를 상대화하는 역사수정주의에 속한다. 하지만 그 엄격하다는 독일에서도 그로 인해 그가 처벌받지는 않았다.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
 
퍼스펙티브

퍼스펙티브

한국에도 수정주의자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 그들의 논리도 놀테의 것과 다르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의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제이며, 해방 이후에도 한국군·미군 위안부 형태로 존속했다.” 즉 종군위안부와 조선시대 기생 사이에는 ‘인과적 연결’이 존재하며, 한국군과 미군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했으니 종군위안부의 ‘유일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학문적 이슈라기보다는 피해자의 고난을 기념하는 정치적 이슈에 가깝다. 때문에 피해자의 고통을 강조하려고 ‘사실’을 넘어 빈 곳을 상상력으로 채우기도 하고, 극단적 사례를 골라 사건을 과장하는 일도 벌어진다. 위안부 소녀상도 그런 보정 작업을 거쳐 빚어진 이미지다. 이런 허점을 파고들기 위해 수정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가 바로 ‘역사 실증주의’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보자. 수정주의자들은 일제하에서도 인구와 생산력이 늘었음을 ‘실증’한다. 문제는 비교의 대상이 조선시대라는 데 있다. 제대로 된 비교라면 그 대상이 자주적 근대화를 했을 경우의 조선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조선은 가정으로만 존재하기에 실증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 실증되지 않는 것은 곧 없는 것. 그러니 조선은 근대화의 능력이 없었다는 결론으로 나갈 수밖에.
 
그래서 일본이 나서서 조선을 근대화했다. 그런데 감사는커녕 외려 사과를 하란다. 대체 한국인들은 왜 저러지? 여기서 그들은 ‘민족성론’으로 나아간다. ‘반일 종족주의’가 한국인의 DNA이며 그 뿌리는 저 멀리 샤머니즘의 전통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 자랑하는 실증주의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드러난다. 이 허무맹랑한 주장을 대체 무슨 수로 실증하겠다는 것일까?
  
조정래의 ‘토착왜구’
 
식민지근대화론은 실은 민족주의 사학의 자기반성이었다. 이영훈씨의 스승 안병직 교수는 일찍이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주창한 바 있다. 일본의 식민통치로 근대화가 지체되어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배를 받는 반(半)봉건사회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한국은 이미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 워낙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라, 안 교수는 이를 폐기하고 우익으로 전향한다.
 
문제는 식민지반봉건론의 정치적 함의다. ‘식민지반봉건’의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미국을 몰아내고 북한과 통일하는 수밖에 없다. 거기서 나온 것이 ‘반미자주화’라는 80년대 NL 운동론이다. 이 논리를 받아들이면 한국전쟁 역시 남한 인민을 미국의 식민통치에서 구하기 위한 민족해방전쟁으로 보게 된다. 바로 여기서 식민지근대화론과 대척점에 있는 좌익 수정주의가 탄생한다.
 
거기에도 다양한 버전이 있다.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을 빌미로 삼는 ‘북침론’, 남한이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된 것을 근거로 한 ‘유도남침설’, 38선에서 늘 벌어지던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비화한 것에 불과하다는 설(說) 등. 사실 이 이론들 대부분은 브루스 커밍스 등 미국 좌파학자의 것을 들여온 것이다. 운동권 필독서였던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바탕에는 이 역사 수정주의가 깔려 있다.
 
한때 도그마를 파괴하는 역할을 했던 그 책이 이제는 스스로 도그마가 되었다. 이 책으로 역사를 공부한 집권세력은 “친일 미(未)청산이 한국 사회의 기저질환”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해방 75년이 넘도록 여전히 ‘분단에 기생해 존재하는 친일’이 민족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착란에 빠져 있다. 그런데 지금 살아있는 친일파가 없으니 자꾸 죽은 친일파를 무덤에서 꺼내려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과거사 문제에는 두 개의 차원이 존재한다. (1)수난의 역사를 기록하는 학문적 실증 (2)희생자의 고통을 기념하는 정치적 활동. 이 두 차원이 서로 생산적 긴장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올바른 기념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족주의자들은 기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종종 엄밀한 실증을 생략한다. 식민지근대화론자는 그 틈을 치고 들어와 학문적 실증을 기념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데에 쓴다.
 
역사에서 ‘실증’은 중요하나, ‘실증주의’는 다른 문제다. 사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 역시 민족주의자들 이상으로 이념적이다. 반일 감정의 뿌리가 샤머니즘이라는 주장은 학문이 아니라 일본 우익이 조선인에 대해 가졌던 인종적 편견의 재판일 뿐이다. 민족사학을 비판하려다 과거의 식민사관으로 퇴행해버린 셈이다. 『반일종족주의』는 ‘조센징’의 근성을 뜯어고치자는 21세기 민족개조론이다.
 
한편 학문적 연구에 정치적 열정을 앞세우면 이념으로 현실을 재단하고, 상황을 과장하거나 선악의 구도로 극화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위안부상은 ‘순결한 소녀’의 이미지로 표상되었으나, 우리는 위안부가 되는 데에는 다양한 방식과 사정이 있음을 안다. 사실에 충실했다면 조선 징용공의 동상이 일본의 탄광노동자를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민망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이영훈은 1948년의 이승만으로 빙의해 건국 운동을 하고, 조정래는 아직도 지리산에서 해방투쟁을 한다. 두 세력이 각자 국가를 건립하거나 민족을 해방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싸우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싸움이 시민의 자유주의적 권리를 제약하는 데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정래는 과거에 소설로 인해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당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최근 반민특위의 부활을 주장하고 나섰다. “150만, 160만 하는 친일파들을 전부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죄악에 대해서 편들고, 역사를 왜곡하는 그자들을 증발하는 새로운 법을 만드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제가 적극 나서려고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가니 민족보안법이 올 모양이다.
 
단죄해야 할 그 150만, 160만은 누구일까? 아마도 100만에 달한다던 ‘남한 내 간첩’만큼 애먼 이들일 게다. 결국 자신의 도그마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은 민족반역자로 간주해 단죄하겠다는 얘기다. 시민을 ‘용공’으로 몰던 문화가 ‘민족정기’라는 이름의 민족광기로 부활했다.
 
E. H. 카의 말대로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그 대화를 법으로 단절해서는 안 된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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