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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NYT도 그의 손 거쳤다, 폰트디자이너 벵기어트 별세

세계적인 폰트 디자이너 에드 벵기어트. [사진 Type Directors Club 유튜브 캡처]

세계적인 폰트 디자이너 에드 벵기어트. [사진 Type Directors Club 유튜브 캡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빈 도화지에요. 음악이 소리의 조화로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듯, 그래픽디자인은 물체를 조화롭게 배열해 눈이 즐거워지도록 하는 거죠." 

 
코카콜라·플레이보이·포드자동차·뉴욕타임스(NYT)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이름표'들은 모두 폰트디자이너 에드 벵기어트(Ed Benguiat)의 손이 부린 마법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역할을 알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20세기 최고의 폰트디자이너, 혹은 '유형 산업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벵기어트가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2세.
 
미 뉴욕타임스(NYT)는 19일 벵기어트의 부고를 전했다. 192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600개가 넘는 서체를 개발했다. 남성잡지 「에스콰이어」 제호, 미국 통신사 'AT&T' 로고,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와 영화 '혹성탈출' 타이틀도 그의 작품이었다.
 
에드 벵기어트의 손에서 탄생한 로고·디자인. 중앙포토

에드 벵기어트의 손에서 탄생한 로고·디자인. 중앙포토

 
그는 성공적인 디자인이 단지 '글꼴의 아름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글자 사이의 간격과 글꼴의 비율 등을 중요시했다. 벵기어트가 한 생애 최초의 '디자인'은 세계 2차대전 당시 군에 입대하기 위한 출생증명서 위조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는 지난 2017년 한 강연에서 "사실 아버지가 위조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10세 무렵 드럼을 배운 벵기어트는 젊은 시절 재즈 연주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결혼 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뒤늦게 디자인학원에 등록했다. 그곳에서 레이아웃·디자인·타이포그래피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처음 극장 광고판 제작 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53년 ‘에스콰이어’ 디자이너로 입사한 뒤 폰트디자인에 두각을 나타냈다.
 
영화 '혹성탈출' 포스터. [중앙포토]

영화 '혹성탈출' 포스터. [중앙포토]

넷플릭스 '기묘한이야기'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기묘한이야기'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67년엔 NYT의 제호를 새롭게 디자인했다. 그는 "나에게 떨어진 미션은 제호를 '모두 바꿔라' 였다"며 "하지만 모든 것을 바꾸면 아무도 우릴 NYT로 봐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 있던 제호를 가져다가 고치기로 했다"고 했다. 그가 재디자인한 NYT 제호의 핵심은 '두꺼운 부분은 두껍게, 얇은 부분은 얇게'였다. 수십년 전통이던 NYT 제호 맨 뒤 온점(.)을 뺀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일부 독자들은 온점의 부재에 아쉬움을 표했다고 한다. 
 
그는 세계적인 폰트디자인 회사 ITC(International Typeface Corporation) 설립에 참여해 부사장으로 일했으며, 미국 맨해튼 시각예술학교에서 50여년간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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