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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넣어도 연 이자 70만원…‘저축→집→노후’ 고리 사라졌다

#1
32세 직장인 김도엽 씨는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에서 전세로 산다. 보증금 2억7000만원 중 부모님이 1억원가량을 지원했고, 나머지는 부부가 모은 돈으로 마련했다. 다행히 빚은 없다. 현재 부부가 생활비 등을 제외하고 1년 동안 모을 수 있는 돈의 최대치는 2500만원. 주로 적금을 활용하는데 이자가 적어 거의 원금만 쌓는 수준이다. 김씨는 “내년쯤 아이를 가질 계획인데 지출이 많이 늘 것이고, 돈 모으기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두렵다”며 “보장성 보험을 제외하곤 노후 준비 같은 건 생각도 못 한다”고 말했다.

[초저금리, 2030 슬픈 노마드](上)
‘저축→집→노후’ 고리가 사라졌다

초저금리의 장기화로 자산 증식 길이 막힌 청년층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다. 셔터스톡

초저금리의 장기화로 자산 증식 길이 막힌 청년층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다. 셔터스톡

#2
미혼인 김동완(32) 씨는 취업 후 예·적금으로만 돈을 모았다. 연봉은 약 4000만원. 6년간 그가 모은 돈은 8000만원 정도다. 그는 “당장은 결혼 생각이 없지만,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이 돈으로 전세 보증금이나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쥐꼬리만 한 이자에 질린 그는 올해 초 처음으로 원유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했다가 더 큰 상처만 입었다. 유례없는 유가 하락에 놀라 손해를 보고 팔았지만 회복기엔 재투자하지 못해 손실을 봤다.
 
자산 증식 길이 막힌 청년층의 신음이 커지고 있다. 은행권의 예금 금리가 또 한 번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예금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0.81%로 집계됐다. 6월(0.89%) 0%대에 진입한 이후 석 달 연속 하락이다. 8월에 새로 가입한 정기예금 가운데 84.3%의 금리가 1%에 못 미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방어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낮춘 여파다. 한은은 올해 들어 연 1.25%였던 기준금리를 0.50%까지 인하했다.  
‘바닥 모를 추락’예금금리...이젠 0%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바닥 모를 추락’예금금리...이젠 0%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저금리는 양면이 있다. 빚이 있는 사람에겐 반갑다. 상환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을 불리려는 사람은 고민이 커진다. 수신금리가 0.81%면 정기예금에 1년간 1억원을 넣어도 이자가 70만원(세금 제외)에 못 미친다. 1억원이 있어도 사실상 돈이 불어난다고 느낄 수 없는 수준이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정혜진(31) 씨는 “은행엔 답이 없는데 주식 투자는 두렵고, 부동산은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며 “뭘 어떻게 해야 돈을 모을 수 있는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나라 경제의 가파른 성장 속에 국민도 고성장·고금리에 익숙했다. 이 기간엔 ‘저축→집→노후’로 이어지는 나름의 법칙이 있었다. 취업을 하고, 저축을 한다. 월세나 전세로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목돈을 모아 집을 산다. 자녀를 내보내고 나면 집과 약간의 금융자산(연금 포함)이 남는다. 노후자금이다. 자산의 많고 적음은 있지만, 중산층 삶의 경로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란 자괴감” 

이 법칙이 통했던 건 첫 단계인 ‘저축’의 효과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수신금리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6년 1월. 당시만 해도 저축성 수신금리는 10.42%에 달했다. 외환위기 삭풍이 몰아치던 1998년 3월엔 17.98%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이후 10년간은 빠르게 하락했다. 심리적 마지노선이던 5%가 깨진 건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때다. 2013년부터는 2%대가 고착화했고, 2015년엔 1%대에 진입했다. 그러다 올해 6월엔 1%마저 무너졌다. 
 
지금 20~30대는 ‘쏠쏠한 이자’란 걸 아예 경험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과거엔 정부도 가계의 목돈 마련을 뒷받침하려 재형저축 제도 등을 운영했다. 원금에 일정한 장려금을 붙여주고, 폭넓은 세제 혜택도 줬다. 그러나 이마저도 2015년 완전히 사라졌다.  
 
저금리로 갈수록 자산 증식에 걸리는 시간은 가속적으로 느려진다. 원금을 두 배로 불리려면 금리가 5%일 땐 14년이 걸리지만 1%일 땐 무려 70년이 걸린다. 지난해 가구주가 30대인 가구의 평균 순 자산은 2억3723만원이었다. 30대 미만은 7796만원에 그친다. 40대(3억6278만원)·50대(4억24만원)와의 격차가 상당하다. 금리가 낮으면 자산(원금)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소득을 얻은 기간이 짧은 20~30대는 여기서도 답을 찾기 어렵다.
가구주 연령별 순자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가구주 연령별 순자산.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조금이라도 나을까 싶어 저축은행이나 청년 전용 적금, 증권사 발행어음 등을 찾기도 한다. 이 역시 마뜩잖다. 직장인 이재성(34) 씨는 한 시중은행의 청년 전용 월복리적금에 가입했지만 실망했다. 높은 금리에 서둘러 가입했지만 실제로 받는 이자가 너무 적어서다. 이씨는 “우대금리를 포함해 최대 4.15%라고 했지만, 최대가입금액이 월 50만원으로 제한인 2년에 꼬박 가입해도 세후 이자는 약 45만원”이라며 “일반 적금에 가입한 것보다 2년 동안 20만원 정도 더 버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반 예금보다 금리가 높은 증권사의 발행어음 역시 최대가입금액이 적어 실제 얻는 이득이 크지 않다.
 
이렇게 자산 증식이 장벽에 가로막히면서 상실감을 호소하는 2030도 늘고 있다. 이 씨는 “취업한 뒤 7년간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한 번 안 가고 모았지만, 이 속도로 모아서는 50세가 돼도 집 한 채 못 가질 것 같다”며 “주변에 보면 외제차 타는 사람도 많던데 나에겐 꿈 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직장인 손동호(35) 씨는 “월급이라도 팍팍 오르면 좋겠지만 결국 씀씀이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며 “어떻게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란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초저금리의 장기화로 자산 증식 길이 막힌 청년층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다. 셔터스톡

초저금리의 장기화로 자산 증식 길이 막힌 청년층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다. 셔터스톡

 

초저금리 장기화…“임금체계 바꾸고 인적자본 투자” 

고민이 깊은 건 초저금리의 장기화가 불가피해서다. 미국은 최소 2022년까지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국 역시 적어도 내년까진 현 수준을 유지할 게 유력하다. 한은도 최근 국정감사 답변 자료에서 ‘경기 상황을 고려할 때 금리 상승 위험이 낮다’고 밝혔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반적인 성장세 둔화로 코로나19가 종식돼도 당분간 기조를 바꾸기 어렵다고 볼 때 저금리를 공포로 느낄 만하다”며 “미래를 책임질 20~30대가 앞으로 나아질 거란 희망을 갖지 못하는 건 여러 사회문제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구조적 해법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결국은 자산 중심 사회에서 소득 중심 사회로 이동해야 한다”며 “나이가 아닌 생산성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질 수 있도록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창업 지원을 통해 소득원을 다양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금리가 낮을수록 당장의 자산보다 꾸준한 자기 계발과 투자를 통해 미래 소득(휴먼 캐피탈)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며 “취업장려금 등 퍼주기식 해법보다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인적 자본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게 지금 국가의 책무”라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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