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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목격자’ 러 청년 사바틴이 조선의 건축물에 남긴 흔적은…

사바틴이 재설계해 완공된 러시아공사관 본관과 정문 전경.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사바틴이 재설계해 완공된 러시아공사관 본관과 정문 전경.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일본인들에게 훈련 받은) ‘친일파’ 조선군에 의해 조선 왕궁이 점령됨. 일본인 낭인들이 후궁과 왕후로 추정되는 여인을 살해함. 의기양양한 조선의 새로운 ‘친일파’에 의해 사실상 조선의 왕이 감금됨.”

고종이 아관파천 감행한 러시아공사관 등
근대 건축물 10여건 설계?공사 관여 추정
덕수궁 중명전 특별전시로 건축활동 조망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른바 ‘을미사변’이 벌어지고 열흘 뒤 사바틴이라는 이름의 러시아 청년이 이 같은 목격담을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사건 당일 경복궁에 있었던 그는 건청궁 곤녕합에서 벌어진 참변을 목격했고 일본군의 서슬 퍼런 칼날을 피해 가까스로 궁을 빠져나왔다. 제물포에서 포함을 타고 러시아로 도망친 뒤 상세한 증언을 자국 외교부 측에 문서로 제출했다. 을미사변 직후 관련성을 부인하던 일본이 자국 공사 미우라 고로가 자행한 일이라고 축소 인정한 데는 이러한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청년의 본명은 아파나시이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1860~1921). 한국 근현대사학계에선 ‘을미사변 목격자’로서 주목해왔지만 실제 그의 본업은 건축이다. 1883년 인천해관 직원으로 조선에 입국했다가 1904년 완전히 떠날 때까지 조선의 근대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에 여러 족적을 남겼다. 특히 1888년 경복궁 내 건설된 관문각과 1890년 수정 설계된 러시아공사관은 그의 이름이 명시된 대표작이다. 그의 증언록에 따르면 을미사변 당시 그는 고종의 요청을 받은 외국인의 한명으로서 경복궁에서 당직을 서던 중이었다. 일본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외국인 여럿을 궁궐에 초빙했고 이들은 번갈아 가며 야간에 경계를 봤다고 한다. 을미사변 후 고종(재위 1863∼1907)이 이듬해인 1896년 사바틴이 지었던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것(아관파천) 또한 독특한 인연이다.
문화재청이 올해 한국과 러시아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상호문화교류의 해를 맞아 근대기 조선에서 활동했던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 사바틴(1860~1921)을 소개하는 특별전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부제: 사바틴이 남긴 공간과 기억)를 19일부터 11월 11일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세레딘 사바틴 초상화.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올해 한국과 러시아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상호문화교류의 해를 맞아 근대기 조선에서 활동했던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 사바틴(1860~1921)을 소개하는 특별전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부제: 사바틴이 남긴 공간과 기억)를 19일부터 11월 11일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세레딘 사바틴 초상화. [사진 문화재청]

 
러시아 출신의 건축기사 사바틴은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당시 경복궁 당직관으로 해당 사건을 지켜본 후 기록으로 남겼다. 사바틴이 그린 명성황후 시해장소 약도(왼쪽)와 그의 증언서.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제공. 사진=문화재청]

러시아 출신의 건축기사 사바틴은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당시 경복궁 당직관으로 해당 사건을 지켜본 후 기록으로 남겼다. 사바틴이 그린 명성황후 시해장소 약도(왼쪽)와 그의 증언서.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제공. 사진=문화재청]

이처럼 우리나라의 근대 격변기에 깊숙이 관여했던 러시아 출신 건축기사 사바틴의 생애와 활동을 한눈에 조망하는 전시가 열린다. 올해 한‧러 수교 30주년과 상호 문화교류 해를 맞아 덕수궁 중명전에서 선보이는 특별전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부제: 사바틴이 남긴 공간과 기억)’이다. 2018년 러시아연방문화부 주최로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사바틴 건축 사진전의 내용에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연구용역을 통해 추가 확보한 자료들을 엮었다. 건축모형 3건, 영상 7건에 사진 수십 건 등으로 중명전 2층 강당을 꽉 채워 역사의 파노라마를 재현했다.
 
사바틴이 남긴 을미사변 증언록과 시해 장소 약도 등은 현재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이 소장하고 있다. 전시 프롤로그에선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통해 사바틴이 한국 근대사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소개한다. 이어지는 본 섹션은 실제로 사바틴이 지었거나 설계‧공사에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근대 건축물들의 사진‧모형과 관련 기록물을 나열했다.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이정수 학예연구사는 “확실한 것은 관문각(경복궁)과 러시아공사관 뿐이지만 제물포구락부, 중명전, 정관헌(덕수궁), 손탁호텔 등 10여건의 근대 건축물에 그가 관여했다는 기록 혹은 추정이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이 올해 한국과 러시아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상호문화교류의 해를 맞아 근대기 조선에서 활동했던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 사바틴(1860~1921)을 소개하는 특별전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부제: 사바틴이 남긴 공간과 기억)를 19일부터 11월 11일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러시아공사관의 최초 설계 도면.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제공.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이 올해 한국과 러시아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상호문화교류의 해를 맞아 근대기 조선에서 활동했던 러시아 건축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 사바틴(1860~1921)을 소개하는 특별전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부제: 사바틴이 남긴 공간과 기억)를 19일부터 11월 11일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러시아공사관의 최초 설계 도면. [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 제공. 사진=문화재청]

특히 러시아 대리공사 겸 총영사 베베르의 의뢰로 사바틴이 재설계한 러시아공사관 건설 과정이 눈길을 끈다. 애초 러시아 건축가 류바노프가 설계한 초기안은 궁궐 같은 위용을 갖췄으나 막대한 예산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했고 사바틴은 건축비를 3분의1로 축소시켜 18개월 만에 완공했다. 전시 큐레이터를 맡은 김영수 서울시립대 연구교수(건축학박사)는 “사바틴이 기존 안을 크게 변경시키지 않은 채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건축비를 절감하려 애쓴 게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견적서(사본)가 기축통화로 사용되던 멕시코달러로 환산·기재된 것도 이채롭다. 공사대금을 제때 받지 못한 사바틴이 영사관 측에 밀린 돈을 청구한 청원서도 함께 공개됐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 특별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가 러시아공사관의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바틴은 근대기 조선에 머무르며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에 관여했던 인물로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을 목격했다. [연합뉴스]

19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1883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 특별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가 러시아공사관의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바틴은 근대기 조선에 머무르며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에 관여했던 인물로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을 목격했다. [연합뉴스]

사바틴 특별전에 전시된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러시아공사관 사진(위 사진)과 공사관 빈터에 우후죽순 들어선 판자촌 풍경. 강혜란 기자

사바틴 특별전에 전시된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러시아공사관 사진(위 사진)과 공사관 빈터에 우후죽순 들어선 판자촌 풍경. 강혜란 기자

우여곡절 끝에 완공된 러시아공사관은 당시 유행하던 아치형 아케이드와 우뚝 선 사각탑이 특징이었다. 건물은 이후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대부분 사라졌다. 이번 전시엔 전쟁 직후 폐허가 된 공사관 모습과 함께 빈터에 다닥다닥 들어섰던 무허가 판자촌 사진도 걸려 있다. 일부 판잣집은 한때 고종이 머물렀던 침소 위치에 자리했을 법도 하다. 한동안 법조회관이 들어서기도 했던 공사관 자리엔 현재 사각 탑(사적 제253호)만 남아 보수공사 중이다.
 
이날 개막식에서 안드레이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는 “지난 9월 30일이 수교 30주년이었지만 양국 우호 관계는 1884년 조러수호통상조약부터 150년 이상 이어져왔다”면서 건축가 사바틴을 필두로 한 양국 교류의 역사를 강조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고종의 근대 국가의 염원이 스민 한국 근대기의 건축 관련 연구를 확장해야 할 필요성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덕수궁과 돌담길을 사이에 둔 중명전은 매주 월요일 휴무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전시는 11월 11일까지. 1층에선 이곳에서 불법체결된 을사늑약 관련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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