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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옥의 시시각각] ‘알리바이 입법’에 국민은 고달프다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잊고 있었다 국회의원의 힘을, 6g의 금배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방송사의 시트콤 못지않은 연출과 연기력을 자랑하던 모습만 각인됐던 탓에 그들 손에 놓인 입법(立法)권은 기억 저편에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새삼 깨닫는다. 국회는 입법부였다. 법으로 국민의 삶을 뒤틀고 힘들게 만들 수 있었다.
 

졸속 임대차보호법에 부작용 속출
AS와 리콜 없는 상징입법 만연에
“나라를 구렁텅이로 이끌 위험도”

지난 13일 서울 가양동의 한 아파트 복도에 10여 팀이 줄을 섰다. 전세 매물로 나온 집을 보기 위해서다. 5팀이 계약을 원했다. 결국 제비뽑기로 전세 계약자를 결정했다. 제비뽑기 순서는 가위바위보로 정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이 불러온 ‘전세 절벽’ 속 벌어진 ‘웃픈’ 풍경이다. 경제 수장인 홍남기 부총리도 법에 발이 묶여 ‘전세 난민’이 될 위기에 처했다. 피아(彼我) 불문, 피해자 속출이다.
 
한 방에 숲을 모두 태워버리는 네이팜탄처럼 주택시장을 뒤흔드는 임대차보호법은 미숙아로 태어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뒤 심사와 의결에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법의 문제점을 점검하기 위해 필요한 ‘축조심의’ 과정도 건너뛰었다. 법사위 전체회의 상정 이후 본회의 통과까지 걸린 시간은 28시간에 불과했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이 법은 본회의 의결 다음 날인 지난 7월 31일 바로 시행됐다.
 
치솟는 집값에 세입자 보호란 명분은 이의 없는 명제다. 그럼에도 방식의 옳고 그름은 다른 문제다. 부작용을 고민하는 것은 입법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런 절차와 과정은 사라졌다. 여당의 요구와 대중의 기대가 결합했다. 논란에도 법을 만들어 역량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앞섰다. ‘알리바이 입법’인 탓이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의 책『상징입법』에 등장하는 ‘알리바이 입법’은 상징입법의 예다. 홍 교수는 “상징입법은 겉과 속이 다른 법, 또는 그런 법을 만드는 것이다. 무슨 동기에서든 겉만 번지르르한 법을 만들어 대중을 현혹하거나 우롱하는 경우를 말한다”며 “‘안심조장형’ 또는 ‘민심무마용’ 상징입법이 가장 흔하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이런 ‘전시형 상징입법’은 위험하다. 관련 내용을 좀 더 인용하면 이렇다. ‘입법자는 겉으로는 국가와 공익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당파나 진영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거나 개개인의 영달을 추구하기 위한 상징입법을 만들고 이를 통해 국민과 여론을 웃픈 연극무대에서 농단하고 호도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를 구렁텅이로 이끌 수도 있다.’
 
이런 경고,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두려워진다. 180석을 확보한 거대 여당은 언제든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요술방망이를 손에 쥔 모양새다. 때론 상상 그 이상의 일도 벌어진다. 그들이 줄줄이 내놓는 ‘위험한 상징입법’ 안에 대한 두려움은 괜한 기우가 아니다.
 
이수진(비례대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달 퇴직금법’으로 불리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내놨다. 근로 기간이 한 달 이상이면 퇴직금을 주자는 것이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화운동 유공자의 배우자와 자녀에게 입학·학비·취업 혜택을 제공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며 역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의원님들은 거칠 것이 없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위헌 소지가 다분한 과잉 입법을 졸속으로 쏟아내도 그뿐이다. “입법의 부작용이나 결함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명색이 법을 만든다는 입법권자 국회의원들은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될 때까지만 기억한다. 그 법률안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어떤 미비점이나 문제가 있는지 따지지 않는다.” 홍준형 교수의 지적이다.
 
부작용과 결함에도 애프터서비스(AS)와 리콜 없는 제품을 쏟아내는 의원님들의 무책임한 오지랖에 애꿎은 국민만 죽을 지경이다. 과시용 상징입법이 만연하는 탓에 ‘법대로’를 외치다간 오히려 뒤통수를 맞기 십상이다. 차라리 ‘입법 알리바이’는 필요 없다고 의원님에게 읍소하는 게 살길인 듯싶다.
 
하현옥 경제정책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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