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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남자가 맞아"…박보검이 연인들 싸움나게 한 '그 주사'

 
#20대가 말하는 HPV 백신 접종의 기억,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tvN 드라마 '청춘기록'에서 주인공이 HPV 예방 접종을 하는 모습. 유튜브 'tvN DRAMA' 캡처

tvN 드라마 '청춘기록'에서 주인공이 HPV 예방 접종을 하는 모습. 유튜브 'tvN DRAMA' 캡처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저를 병원에 데려가서 웬 주사를 맞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무슨 주사냐고 계속 물어봐도 설명하기 껄끄러우신지 말씀이 없으시더라고요."

 

[밀실]<50화>
20대가 말하는 'HPV 백신'의 기억

황모(25)씨는 7년 전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대입 수능을 치르고 어머니 손에 붙들려 산부인과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의문의 주사(?)를 맞았는데요. 딸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문 어머니는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그날 맞은 주사가 '자궁경부암 백신'이라는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우리 19금으로 등급 상향하면 안 돼?"(남자친구)

"자궁경부암 예방 주사 맞고 와."(여자친구)

 
최근 tvN 드라마 ‘청춘기록’에서 나온 장면입니다. 그 후 '자궁경부암 예방접종'이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랐습니다. 극 중 주인공 간의 대화가 화제가 된 겁니다. 자궁경부암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가 주로 성관계로 전염되기 때문에 나온 대사인데요. 
 
흔히 자궁경부암 백신이라고 부르는 약은 'HPV 백신'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여성이 이미 백신을 접종했다 해도 HPV에 감염된 남성과 성관계를 맺으면 감염될 수 있죠. 양쪽 모두에게 접종이 권장되는 이유입니다.
 
지난달 15일 방영분 중 남성인 주인공과 친구들이 산부인과에 가서 자궁경부암 예방 접종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유튜브 'tvN DRAMA' 캡처

지난달 15일 방영분 중 남성인 주인공과 친구들이 산부인과에 가서 자궁경부암 예방 접종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유튜브 'tvN DRAMA' 캡처

의학적으로 '적절한' 대사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남성도 HPV 예방접종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물론, 건강한 성관계의 모범사례를 보여줬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죠.
 
하지만 현실의 20대 청년들이 밀실팀에 털어놓은 백신의 기억은 달랐습니다. 청춘 드라마처럼 훈훈하지만 않았는데요. 영문도 모른 채 어머니 손에 이끌려 주사를 맞은 황씨처럼 말이죠. 밀실팀이 20대 남녀 5명에게 그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여자는 필수, 남자는 '개념남'?"…인식 바꿔야

영상 크리에이터 '주긍정'은 HPV 예방 접종 후기 영상을 올렸다. 유튜브 '주긍정' 캡처

영상 크리에이터 '주긍정'은 HPV 예방 접종 후기 영상을 올렸다. 유튜브 '주긍정' 캡처

"남자친구한테 (자궁경부암) 예방 접종을 권했더니 '그러게, 맞아야겠네'라고 영혼 없이 대답만 하더라고요. 자기가 걸릴 병이 아니라고 안심하는 느낌이 들어 화가 났죠."

 
직장인 심모(28)씨는 대학교 2학년 때 HPV 백신 주사를 맞았습니다. 당시 남자친구에게도 예방 접종을 권유했지만, 성의 없는 반응만 돌아왔다는데요. 성관계는 원하면서 안전하고 건강한 관계를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하는 모습이 무척 실망스러웠다네요.
 
하지만 HPV는 남성도 공격합니다. 여성의 자궁경부암뿐 아니라 남성 항문암과 생식기 사마귀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성별과 관계없이 백신 접종이 필요한 이유죠. 하지만 백신 개발 초창기만 해도 HPV가 남성에게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없었답니다. 자연스레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알려진 이유죠.
 
HPV 백신 홍보 책자엔 여성들의 사진만 실려 있다. 이시은 인턴

HPV 백신 홍보 책자엔 여성들의 사진만 실려 있다. 이시은 인턴

밀실팀이 만난 이들은 여성에게만 HPV 예방 접종을 권장하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대학원생 황모(25)씨는 "여성은 접종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남성이 접종하면 '개념남'이라고 치켜세워주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다른 누군갈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접종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죠.

 
'자궁경부암 백신'이라는 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해 HPV 백신 접종 후기 영상을 올린 영상 크리에이터 '주긍정'은 "영상에 달린 댓글 중 '그걸 왜 남자가 맞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며 "'자궁'이라는 단어 때문에 여자들만 맞는 주사라는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전했죠.

 
 

또 다른 장애물, 성 경험 '쉬쉬하는' 사회

성경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도 HPV 백신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고등학생 때 가족 권유로 HPV 예방접종을 했다는 김모(22)씨는 "여학생이 산부인과에 가는 걸 보는 주변 시선이 곱지 않았다"며 "어린 나이에 성관계했거나 성 경험이 많은 사람만 맞는 백신이라는 편견 때문에 주변 친구들은 접종을 꺼렸다"고 털어놨습니다.
 
지난 6일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를 찾은 여성이 진료실로 들어가고 있다. 이시은 인턴

지난 6일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를 찾은 여성이 진료실로 들어가고 있다. 이시은 인턴

아예 자녀의 성 경험 언급 자체를 꺼리는 부모님 때문에 당황스러웠다는 경험담도 있죠.

 
7년 전 어머니 손에 이끌려 영문도 모르고 HPV 백신을 맞은 황모(25)씨는 "성인이 된 딸에게 설명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아무 말 없이 병원에 데려가서 주사를 맞게 한 건 폭력적이라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우려가 무색하게 청소년 때 성관계를 경험하는 학생 비율도 꾸준히 늘고 있는데요.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 중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지난해 기준 5.9%였습니다. 2016년 4.6%를 기록한 이래 계속 증가했죠. 고3 학생의 경우 11%에 달했습니다.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점차 늘어나는 환자…"교육·지원 확대 필요"

예방 접종을 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예방 접종을 하는 모습. 사진은 기사 본문과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실제로 백신의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자궁경부암으로 병원을 찾는 젊은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데요.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자궁경부암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4년 전과 비교해 ▶10대 133% ▶20대 72% ▶30대 25% 각각 증가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6년부터 만 12세 이하 여아 대상으로 HPV 예방 접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남성과 13세 이상 여성은 50만~6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반면 미국·호주·독일·영국 등 외국에선 성별과 관계없이 폭넓게 접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관희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HPV 예방 접종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시은 인턴

한관희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HPV 예방 접종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시은 인턴

전문가들은 HPV 접종에 대한 잘못된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한관희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자궁경부암은 콘돔 사용 등 피임만으로 완전히 예방할 수 없어 남녀 모두 접종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며 "HPV 예방 백신이라는 정확한 명칭을 사용해 남성들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혜영 의원은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접종 대상에 남자아이를 포함하고, 지원 연령도 확대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학교 성교육에도 HPV 예방 접종에 대한 적극적인 안내를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자궁경부암 주사'가 아닌 'HPV 백신', 남이 아닌 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접종하러 가는 게 어떨까요?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박건·윤상언·최연수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김현정·이시은 인턴, 백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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