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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생각의 공화국] 개혁 위한 법과 지혜의 이중주

‘비밀의 숲’을 분석한다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이 글에는 ‘비밀의 숲’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적폐가 만연한 세상에서 개혁에 성공 하려면
좌고우면 하지 않는 준법 마니아가 있어야
준법 마니아를 제 위치에 놓을 현자도 필요
법의 원칙과 이를 구사할 신중한 자세 요구돼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베스트 드라이버다. 오랜만에 그의 차를 타고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평소처럼 안정감 있게 핸들을 돌리며, 그는 아침에 관공서에 다녀온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통 법규를 어겼으니 경찰에 출두해달라는 통지가 왔거든. 며칠 전 그는 깜빡이를 켜지 않은 채로 차선을 바꾸었고, 마침 누군가 그 장면을 촬영해서 경찰서에 신고한 것이었다. 뒤에 따라오는 차가 없었기에 깜빡이를 켜지 않았거든. 그런 점을 감안해서 경찰서에서도 이 사안을 심각하게 보지는 않고 간단히 경고하는 데 그쳤다.
 
이 건을 통해서 이 사회에 ‘준법 마니아’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이 어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준법 마니아는 평소에 눈에 불을 켜고 다니며, 불법 행위가 눈에 띄기만 하면 기록해서 경찰에 신고한다. 어쩌다 한번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수 건, 많게는 수십 건의 불법 사실을 적발해서 보고한다. 그래서 경찰서에는 아예 준법 마니아 리스트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준법 마니아는 금전적 보상을 바라고 사진을 찍어대는 일반 파파라치와는 다르다. 교통 법규 위반 사실을 경찰서에 알렸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포상금은 없다. 아무런 포상금 없이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준법 마니아는 오늘도 이 사회의 법질서 수호를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일부러 신경을 써서 주변의 불법 사실을 포착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자료를 정리해서 경찰에 보낸다.
 
교통 법규를 종종 어기는 ‘보통’ 운전자들은 이런 준법 마니아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다들 소소하게 교통 법규 위반을 하는데, 신호등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빨리 가라고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는 이 사회에서, 하필 자기만 신고당해서 경찰에 출두하는 마음이 썩 흔쾌할 것 같지는 않다. 공공질서 수호의 책임을 맡은 경찰들마저도 이 준법 마니아를 크게 반기지는 않는다고 한다. 경미한 위반 사항이라고 해도 일단 신고가 접수되면, 담당 직원은 해당 일 처리를 해야만 한다. 가뜩이나 처리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그런 업무가 늘어나면 기운이 빠질지 모른다. 자발적 규범준수, 윤리, 예절, 상식 등이 커버해야 할 사안에 법이 일일이 나서다 보면, 정부는 계속 확대되고, 공무원들은 지쳐버릴지 모른다.
 
얼마 전 종영한 초인기 TV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 2’의 주인공 황시목 검사(조승우 분)도 일종의 준법 마니아처럼 보인다. ‘비밀의 숲’에서는 검찰·재계·정계 등 부패로 얼룩진 한국 사회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정의로운 검사 황시목이 파헤친다. ‘비밀의 숲’은 공교롭게도 정부가 적폐 청산과 검찰개혁을 추진하던 시기와 맞물려 시청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비밀의 숲’이 묘사하는 바, 한국 사회는 정상적인 개혁이 불가능해진 곳이다. 무엇이 잘못인지 몰라서 못 고치는 것이 아니다. 모두 무엇이 잘못인지는 알고 있으나 크고 작은 인연·인맥, 각종 관계로 다들 연루되어 있기에 누구도 그 상황을 근본적으로 수술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섣불리 개혁에 뛰어들었다가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역풍을 맞고, 조용히 매장된다.
 
이런 상황에서 황시목 검사는 자신이 속해 있는 검찰조직마저 예외를 두지 않고 잘못을 적시하고 개혁하려 든다. 아무런 포상 없이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준법 마니아 황시목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어떤 예외도 두지 않으면서, 범법과 비리의 핵심으로 돌진한다.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할 그런 일을 어떻게 황시목은 해낼까? 그것은 황시목이 ‘정상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질병과 수술로 인해 주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그 결과 외톨이가 되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에, 수사 대상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다. 외톨이이기에 한국 남자들의 패거리 문화에 물들지 않는다. 황시목에게는 군대에 가야 하는 자식도, 요트를 사려 드는 배우자도 없다. 물론 그렇게 사는 대가는 만만치 않다.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이유로 선배들의 미움을 사고, 권력과는 거리가 먼 변방으로 좌천된다. 세상에는 잘생긴 외톨이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간혹 있기에, 간혹 고적함을 달랠 수 있을 뿐.
 
이 황시목이라는 캐릭터는 한국 사회의 절망과 희망을 모두 보여준다. 먼저 절망을 보자.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외톨이만이 적폐를 청산하려 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회의 절망을 보여준다. ‘감정’이 있는 사람은 조직 없이 살기 어렵고,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역겨운 꼴도 적당히 넘길 줄 알아야 한다는 게 한국 사회의 통념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적폐에 가담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사람 좋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일수록 기득권 세력이자 적폐의 핵심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조직을 이길 수 있을까? 공연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 보았자, 조직도 자신의 먼지를 털려고 들 것이고, 결국 왕따가 되고 말 것이다. 비판적 개인에게 결국 남는 선택지는 조직을 떠나버리는 일뿐인지 모른다.
 
다른 한편, ‘비밀의 숲’은 황시목 같은 사람이 있다면 적폐를 청산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특히 시즌 1의 결말에 가서, 황시목은 한국 사회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비리와 범죄의 뿌리를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한 결말은 황시목처럼 아예 감정을 도려내고 어떤 인맥에도 좌우되지 않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급진적 준법 마니아만이 한국 사회를 적폐의 수렁에서 건져낼 것 같은 기대를 준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시민이 할 일은 그런 준법 마니아, 혹은 ‘찐 똘아이’를 발굴해서, 그에게 수사 전권을 주면 될 것 같다. 아니, 황시목을 검찰총장으로! 아니, 대통령 후보로!
 
그러나 ‘비밀의 숲2’에서 황시목은 전작에 비해 더 큰 수사 권력을 누리지만, 끝내 아주 만족할만한 개혁에는 이르지 못한다. 사실 ‘비밀의 숲 2’는 비밀의 숲이 아니라 ‘떡밥의 숲’에 불과했을 뿐 시즌1에 비해 드라마의 입체감이 부족했다는 중평이다. 왜 그랬을까?
 
시즌1에 있었던 중요한 캐릭터가 ‘비밀의 숲2’에서는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배우 유재명이 연기한 검사 이창준이다. 이창준은 원래 도덕적 열망으로 가득했던 개혁적 검사였지만 끝내 비리에 연루되고 만다. 황시목과는 달리, 이창준은 감정이 살아있는 보통 사람이자, 조직에서 잘 살아남을 정도로 처세에 능한 사람으로 판명된다.
 
준법 마니아가 되기에는 복잡한 캐릭터, 선악으로 딱히 양분되지 않는 입체적 캐릭터, 이창준은 황시목에게는 없는 통찰력과 지혜(prudence)를 가지고 있다. 비리에 연루된 이상, 자신은 개혁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이창준은 판단한다. 이제 이창준은 여느 준법 마니아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만 돌진하는 대신에 상황을 깊고 길게 본 뒤에,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정교하고도 입체적인 계획을 마련한다. 부패할 대로 부패한 이 사회에서는 보통 조치로는 되지 않고, 황시목 같은 돌직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 돌직구를 제대로 과녁에 던져넣을 수 있게끔 조준할 사람이 필요하다. 황시목이라는 준법 마니아 바둑돌을 아주 적절한 타이밍과 위치에 놓은 뒤, 이창준 자신은 존재의 모순을 안고 투신해버린다. 비극적인 생을 마감해 버린다. “그 후배는 잘 써야 합니다.” 이제 정조준된 준법 마니아 황시목은 스트라이크를 향하여 질주하기만 하면 된다.
 
한국 정치사의 흥미로운 국면에서 상영된 ‘비밀의 숲’은 시청자의 관심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어떤 시청자는 검찰은 너무 부패했으므로 검찰 권력을 크게 약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또 어떤 시청자는 한국의 정경유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또 어떤 시청자는 한국의 검찰-경찰 갈등은 구제 불능일 정도로 고착되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또 어떤 시청자는 황시목을 연기한 배우 조승우가 고개를 갸웃할 때 꽤 귀엽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또 어떤 시청자는 경찰을 연기한 배우 배두나에게는 긴 머리보다는 짧은 머리가 어울린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비밀의 숲’이 전하는 메시지가 하나 더 있다면 이것이다. 우리에게는 준법 마니아가 필요하다. 그뿐 아니라, 준법 마니아를 제 위치에 놓을 수 있는 현자도 필요하다. 법과 신중한 지혜(prudence)가 모두 필요하다. 경(經·원칙)과 권(權·원칙을 아는 이가 구사하는 창의적 조치)이 모두 필요하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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