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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까지 반발할텐데…'표냐 진보가치냐' 與 낙태죄 고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낙태죄 전부 폐지 의견을 밝혔다. 박 의원은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을 심사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다. 임현동 기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일 낙태죄 전부 폐지 의견을 밝혔다. 박 의원은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을 심사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다. 임현동 기자

“저는 형법에서 낙태의 죄를 전부 삭제하고자 합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낙태죄 폐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정부가 전날 입법 예고한 형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현행 낙태죄 체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전날엔 같은 당 권인숙 의원이 “그간 사문화되고 위헌성을 인정받은 낙태 처벌 규정을 되살려낸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라며 정부안을 비판했다. 권 의원은 성폭력연구소 울림의 소장을 지냈고, 박 의원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처장을 지냈다. 여당 의원이 정부 입장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것은 21대 국회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정치권 최대 이슈 된 낙태죄

 
낙태죄가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 때문이다. 지난해 4월 헌재는 낙태죄 처벌 조항(형법 268조·270조)에 대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며 시한을 올해 12월 31일까지로 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올해 안에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낙태죄 조항의 효력이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정부가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7일 오후 서울 국회 앞 모습.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왼쪽)과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이 나란히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7일 오후 서울 국회 앞 모습. 낙태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왼쪽)과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이 나란히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는 시한을 두 달여 앞둔 지난 7일,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임신 14주까지 어떤 경우에나 낙태가 가능하고, 14~24주에는 지금처럼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예외 사유로 ‘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 ‘혈족·인척간 임신’ 등 기존 항목 외에 ‘사회적·경제적 이유’가 추가됐다. 이는 “낙태를 완전히 허용하라”는 시민·여성단체의 주장과 “제한하라”는 종교계 주장을 임신 14주를 기점으로 섞은, 절충안으로 해석됐다.
 
입법예고 기간 40일이 지나면 법안이 국회로 넘어오지만, 175석의 거대 여당인 민주당은 아직 방침을 정하지 않았다. 신동근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고위는 물론 법사위에서도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주당 여성가족위원회 관계자 역시 “최근 정부에서 당 정책위원회와 법사위·복지위 간사들, 그리고 일부 관심 있는 의원들에게 정부안 취지를 설명하고 갔지만, 당 차원의 논의는 없었다”고 했다.
 

여성 표심 vs 종교 표심

 
낙태죄 폐지와 관련, 민주당은 곤혹스러운 기류가 역력하다. 전통적인 우군(友軍)이라 할 수 있는 여성단체가 “낙태죄를 형법에서 완전히 삭제하라”며 여권을 연일 압박하고 있어서다. 민주당 최대 지지층인 20~40대 여성 유권자도 완전 폐지론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더구나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 전임 시장들의 성추행 의혹으로 인해 치러지게 됐다. 민주당이 여성계 의견을 무시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여성단체가 지난 7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국가인권위 직권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여성단체가 지난 7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의 국가인권위 직권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하지만 ‘낙태죄 전면 폐지’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두고 개신교와 적지 않은 갈등을 겪은 상황에서, 정부와 원만한 관계였던 천주교와도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지난 8월 “여성의 행복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태아의 생명권을 박탈한다면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과 국가의 약자 보호 책무를 저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경고했다. 민주당 입장에서 ‘낙태죄 완전 폐지’는 내년 보궐선거는 물론 이듬해 대선에서도 ‘종교계 표심’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우리 당에서 이 이슈는 ‘진보적 가치’냐 ‘선거 승리’냐의 딜레마에 가깝다”며“어떤 방식으로 법을 개정해도 욕은 먹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안 제출 전까지는 유야무야 12월 31일을 넘겨 낙태죄 효력이 자동 상실되길 바라는 의원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보수 진영은 ‘엄격히 제한’ 기류

 
제1야당인 국민의힘 입장에서도 낙태죄는 쉽지 않은 문제다. 당 관계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 단순히 찬반 입장을 내기보다는 각계 의견부터 취합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 내부에선 임신 중지를 더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보건복지위 간사인 강기윤 의원은 “사회·경제적 사유라는 불분명한 ‘허용 사유’ 등으로 낙태를 남용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의 한 축인 기독교계 반발도 외면할 순 없다”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한 여성 의원은 “낙태죄 폐지에 대해서 국회가 머리를 맞댈 시기가 됐다”며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여성계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청와대 앞 분수대 앞에서 낙태죄 완전 삭제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정부 안에 대해 "(청와대가) 부처 의사에 반해서 밀어붙였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뉴스1]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8일 청와대 앞 분수대 앞에서 낙태죄 완전 삭제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정부 안에 대해 "(청와대가) 부처 의사에 반해서 밀어붙였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뉴스1]

한편,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낙태죄 관련 정부안에 대해 “관계부처 회의에서 확정된 내용”이라며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모두 중대가치”라고 말했다. 청와대 의지가 정부안에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서는 “부처 의사에 반해서 밀어붙였다는 뜻이라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오현석·박해리·손국희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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