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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규의 미래를 묻다] 원자력, 우주 개발의 새 시대를 열다

진화하는 원자로

조형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조형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무려 33조원. 미국이 2024년 우주인을 달에 다시 보내기 위해 들이는 돈이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2년 만에 인류가 다시 달에 발을 딛게 됐다. 약 2주일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이를 공식 발표했다. 미국뿐 아니다. 중국·인도·러시아 등도 달 개발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유럽연합(EU)은 달에 거주 시설을 짓는 ‘문 빌리지(moon village) 계획’을 세워 놓았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 걸쳐 미국과 옛 소련이 달을 놓고 경쟁한 지 50년 만에 재현된 달 탐사·개발 경쟁이다.
 

NASA, 2028년 달 표면 우주기지에
초소형 원자로 ‘킬로파워’ 설치해
4~6명 우주인 생활할 에너지 공급
한국도 우주용 원자로 개발 착수

달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우주 개발 전초기지 건설 가능성 때문이다. 화성과 같이 더 먼 행성의 탐사를 위해 달에서 먼저 기술과 경험을 쌓고, 달을 중간 기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과거의 탐사와는 달리 달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기지를 건설해 장기간에 걸친 탐사를 계속하려는 것이다. 지구에서는 희귀하지만 달에는 풍부한 자원인 희토류나 핵융합의 원료인 헬륨3 같은 유용한 자원을 채굴할 수도 있다. 얼음 형태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달의 남극에서 물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연료 한 번 넣으면 10년간 전기 생산
 
우주에 기지를 만들려면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시설이 필수다. 해결책이 바로 초소형 원자로다. 그림은 달 표면에 초소형 원자로를 설치한 상상도다. 4기를 설치하면 우주인 4~6명이 생활할 수 있다. [사진 NASA]

우주에 기지를 만들려면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시설이 필수다. 해결책이 바로 초소형 원자로다. 그림은 달 표면에 초소형 원자로를 설치한 상상도다. 4기를 설치하면 우주인 4~6명이 생활할 수 있다. [사진 NASA]

하지만 달에 장기간 머물 기지를 건설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에너지, 특히 전기가 문제다. 기지를 가동하려면 오랫동안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필수다. 연료전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수소 공급이 필요한 연료전지는 오래가지 못한다. 태양광 발전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낮이 14일, 밤이 14일 계속되는 달의 특성 때문이다. 전기공급 문제를 해결해야 우주기지 건설과 장기간 우주 생활이 가능하다.
 
가장 효과적인 해법은 원자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2018년 5월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와 NASA는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우주용 초소형 원자로 개발에 성공했음을 알렸다. 킬로와트(㎾)급의 전기 출력을 낸다고 해서 이름이 킬로파워(kilopower)다. 이 원자로는 핵반응이 일어나는 중앙의 ‘노심’이 지름 11㎝, 높이 25㎝로 매우 작다. 로켓에 실어 우주로 보낼 만큼 충분히 가볍다. 연료를 한 번만 넣어도 10년간 계속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10㎾ 전기를  생산하는 킬로파워 4기를 설치하면 우주기지에서 4~6명이 생활하며 탐사 장비를 운용할 수 있다. NASA는 2028년 달에 초소형 원자로를 설치해 우주 탐사의 새로운 장을 열 계획이다.
 
우주용 원자로 개발의 관건은 핵반응에서 나온 열에너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뽑아내 발전을 하느냐였다. 연구진은 작고 가벼운 열전달 장치인 ‘히트 파이프(heat pipe)’를 이용해 이를 가능케 했다. 히트 파이프는 휴대전화나 노트북PC 등에서 생기는 열을 식히기 위해 이미 널리 사용되는 장치이다. 연구진은 고온에서 작동하는 고성능 히트 파이프를 개발하고 원자로 노심과 연결해 가벼운 초소형 원자로를 만들 수 있었다. 히트 파이프를 10년 동안 이상 없이 사용할 수 있는지, 우주 공간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2018년 5월 NASA가 초소형 원자로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는 모습. [사진 NASA]

2018년 5월 NASA가 초소형 원자로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는 모습. [사진 NASA]

초소형 원자로의 개발은 원자력을 기존의 대형 발전소 말고도 다목적으로 활용하는 새 지평을 열었다. 원전의 200분의 1 내지 300분의 1 정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지상용 초소형 원자로는 컨테이너 트럭으로도 운반할 수 있다. 한번 연료를 채우면 7년 넘게 발전한다. 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디젤 발전기를 돌린다면, 2만8000ℓ짜리 대형 유조차 1600대 분량의 기름이 필요하다. 원자로는 이런 대규모 연료 공급이 없이 작동된다는 게 제일 중요한 장점이다. 나아가 특별한 장치 없이도 전력 수요에 맞춰 출력을 쉽게 조절할 수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와 짝을 맞추기에 제격인 셈이다.
 
이 같은 장점을 가진 초소형 원자로는 쓰임새가 다양하다. 현재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초소형 원자로 이용을 추진하는 기관은 미국 육군이다. 운반하기 쉬운 초소형 원자로는 군사 기지에 쉽게 설치해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파견 군인의 희생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해외 주둔 미군 사상자의 절반가량이 연료나 식수 같은 물자 수송 중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무장이 덜한 보급 부대에 대한 적군의 기습이 많다고 한다. 막대한 연료 수송이 필요한 디젤 발전기를 초소형 원자로로 대체함으로써 인명 손실과 보급 부담을 줄이는 게 가능해진다.
  
자원개발에도 초소형 원자로 활용
 
초소형 원자로의 또 다른 수요처는 자원개발 회사다. 자원개발은 오지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현장까지 전력선을 끌어오기가 쉽지 않다. 대형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등지에서는 데이터센터를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짓곤 한다. 데이터센터는 또 온도 유지, 특히 여름철 냉방에 전기가 많이 필요해, 전기를 아낄 수 있는 서늘한 산간 지역을 일부러 택하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는 초소형 원자로가 적격이다. 이 밖에도 열과 전기가 같이 필요한 산업시설 등은 초소형 원자로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활용처다. 미래에는 해양 자원개발 기지와 바닷속에서 오래 활동하는 무인 잠수정(수중 드론)에도 초소형 원자로가 쓰일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용도의 초소형 원자로는 여러 곳에서 개발하고 있다. 미국 NASA와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를 비롯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 일리노이 주립대, 원전 공급 업체인 웨스팅하우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인 오클로 등이 자신만의 고유한 초소형 원자로를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미래에 대비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우주용 원자로와 고성능 히트 파이프 개발에 착수했으며, 서울대와 KAIST도 독자적인 초소형 원자로를 고안해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인류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끊임없이 새로운 거주지를 찾고 미지의 공간을 개척하는 도전을 거듭해왔다. 호모 사피엔스의 대이동, 신대륙의 발견 등은 인류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됐고 인류의 번영을 가능케 했다. 변모한 원자력은 우주와 해양을 개척해 새로운 거주지로 삼을 인류의 새로운 도전을 가능케 할 것이다.
 
원자력도 4차 산업혁명을 만났다
초소형 원자로만이 원전 변신의 전부가 아니다. 기존의 대형 원전도 4차 산업혁명을 만나 더욱 안전하게 바뀌고 있다. 부품 등의 고장이나 이상을 미리 예견하는 ‘예측 진단 빅데이터 시스템’이 그런 예다.
 
원전에는 온도와 압력 등을 모니터링하는 수많은 계측 장치가 있다. 이에 더해 소음과 진동 데이터까지 측정하고 있다. 다양하고 입체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부품에 곧 고장이 생길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어서다. 오랜 기간 원전을 가동하면서 쌓인 빅데이터 덕에 이런 ‘고장 예측 진단’이 가능해졌다. 항공기 엔진을 만드는 미국 GE가 소음·진동을 측정하고 빅데이터와 비교·분석해 엔진 특정 부품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일본 NEC 등이 빅데이터를 활용한 ‘고장 전조 감시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국수력원자력도 비슷한 ‘원전 예측 진단용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했다.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란 것도 있다. 실제 가동 중인 원전과 똑같이 만들어 놓은, 컴퓨터 가상공간 속의 원자로다. 실제 원전에서 계측하는 데이터들이 이곳에도 똑같이 입력, 적용된다. 이 디지털 트윈의 상태를 분석하는 것은 인공지능(AI)이다. 각종 신호를 판독해 앞으로 원자로에서 일어날 일들을 계산해 낸다.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판단이 나오면 현재 어떤 조처를 해야 하는지 판단해 운전원에게 알려준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덕에 한층 안전한 원전 가동이 가능해지고 있다.
 
더 나아가 원전 상태에 따른 최적의 제어를 스스로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지능형 원전제어 기술’도 개발 중이다. 자동차가 점점 완전 자율주행으로 진화하는 것과 유사하다. 원전 자율운전은 기존 원전을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주기지나 무인잠수정을 위한 초소형 원자로를 현실화하는데도 핵심적인 기술이다. 다만 원자력 분야는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적용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적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핵심기술들을 단계적으로 검증하며 완성도를 높여가야 할 것이다.
 
이렇듯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해 원전을 더 안전하게, 잘 활용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원전은 사양길”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실제 세상은 딴판이다.
◆조형규 교수
한국원자력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교수가 됐다. 프랑스 원자력청(CEA)에서 원전 안전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를 했고,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 초소형 원자로 관련 연구를 했다. 서울대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형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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