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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향 책만 읽기에도 인생 짧다" 서점하는 사회학자 노명우의 독서론

니은서점 노명우 교수와 북텐더들이 2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왼쪽부터 북텐더 구보라, 이동근씨와 노명우 교수, 북텐더 송종화씨다. 최정동 기자

니은서점 노명우 교수와 북텐더들이 2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왼쪽부터 북텐더 구보라, 이동근씨와 노명우 교수, 북텐더 송종화씨다. 최정동 기자

“절대 ‘OO대학교 추천 도서 100’ 따위의 추천 리스트를 참조하지 말라.” 사회학자 노명우(54‧아주대) 교수가 지난달 펴낸 새 책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클)의 당부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인생극장』 등 피부에 와 닿는 사회학 대중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해온 그는 2018년 아예 상아탑 밖 실험무대를 세웠다. 서울 연신내의 10평 남짓한 작은 책방 ‘니은서점’이다.  
 

사회학자 노명우의 작은 책방 철학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년 국민독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전자책을 합친 한국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7.5권. 2년 전보다 1.9권 줄어든 수치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사양산업 영세 자영업자’를 자처하는 노 교수가 세간의 필독서 목록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저 필독서란 이유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펼친다면 며칠 안에 책 던지며 독서랑 절교할 가능성이 다 읽을 가능성보다 높은 탓이다. 거기다 “필독서 리스트는 한 명이 만든 게 아니라서 서로 가치관이 충돌할 수 있고 뒤죽박죽”이란다. 트렌드를 알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베스트셀러도 꼭 읽을 필요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책을 제대로 읽고 싶다면 그보단 자기랑 독서 코드가 맞는 사람을 찾는 게 맞죠.” 이런 철학으로 지난 2년간, 유튜브와 더 친한 디지털 세대를 책으로 홀린 ‘마스터 북텐더(북 바텐더)’ 노 교수, 그와 함께 니은서점을 꾸려가고 있는 1990년대생 ‘북텐더’ 구보라(30)‧이동근(28)‧송종화(29)씨를 지난달 25일 만나 독서 비결을 들었다.  
 

①“내 취향 책만 읽기에도 인생은 짧다”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표지. 노명우 교수는 2015년 아버지, 이듬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 후 조의금에 생전 드리던 용돈을 보태 뜻있는 일에 쓰고자 ‘레인보우 펀드’를 만들고 2년 전 서점을 냈다. 표지사진 속 서점 창가 안쪽 초록색 의자는 노명우 교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쓰던 것. ‘니은서점’이란 이름은 그의 가족을 동네에서 ‘삼거리 노씨네’라 부른 데서 따왔다. [사진 클]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표지. 노명우 교수는 2015년 아버지, 이듬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 후 조의금에 생전 드리던 용돈을 보태 뜻있는 일에 쓰고자 ‘레인보우 펀드’를 만들고 2년 전 서점을 냈다. 표지사진 속 서점 창가 안쪽 초록색 의자는 노명우 교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쓰던 것. ‘니은서점’이란 이름은 그의 가족을 동네에서 ‘삼거리 노씨네’라 부른 데서 따왔다. [사진 클]

학자라서 서점 물정 모르는 소리 한다고? 노 교수에게도 서점은 연신내 부동산 거리에서 주변 반찬집‧어물전‧핫도그 가게가 사라지고 바뀌길 반복하는 동안 꿋꿋이 버텨온 현실이다. 그것도 여느 동네서점 판매 1등 실용서‧참고서‧베스트셀러 일절 없이.  
니은서점은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전문이다. 노 교수에 따르면 1년에 신간 서적이 8만종, 여기에 구간도서까지 몇십만 권 중 니은서점 서가에 꽂히는 책은 1000종이 채 안 된다. 손님이 직접 주문하거나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신간이 일시적으로 머무는 걸 제외하면 노 교수의 관심과 취향에 의해 구성된다. “작가이자, 교육자, 서점 주인의 정체성이 서로 딴죽걸기도 하면서 절충안을 찾아 만든” 일명 책들의 ‘소우주’다.  
“책에 대한 1차 판단은 먼저 읽은 사람들의 리뷰에요. 신간이 나오자마자 올라오는 리뷰는 서평단에 의해 대부분 별 다섯 개를 만들어낸 것이 많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읽는 냉혹한 평들을 참조해요. 최종 관문은 제가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죠.”

끌리는 책이 있으면 저자가 책에 인용한 다른 책 목록을 보는 것도 방법이다. “한 작가만 잡아당겨도 고구마 줄기처럼 책이 주렁주렁 뽑혀 나오죠.” 자꾸 읽으면 자기 취향에 눈뜨게 돼서 스스로 책을 고를 수 있게 된단다. 니은서점만의 ‘북텐더’들은 자신의 독서 경험을 살려 이런 손님들의 취향 탐구를 돕는다. 맥락 없는 추천도서 목록에 휘둘리는 것보다 책 읽는 재미도, 깊이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②SNS 해시태그로 만나는 취향의 공동체  

책과 상극인 듯한 SNS 활용법도 있다. 1960년대생 노 교수가 서점을 오가던 90년대생 ‘독서가’들을 정식 직원인 북텐더로 맞으면서 니은서점에 새로 생긴 ‘포스팅 법칙’이 한 예다. SNS에 책 추천을 올리면 24시간 이내에 서울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메시지‧e메일로 주문이 들어온단다.  
노명우 교수는 "읽는 사람이 많을수록 위험한 책도 있고 책 자체가 찬양의 대상이 될 순 없다. 그래도 사회가 좀 더 좋아지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책을 전시‧보급하고 싶다"고 했다. 최정동 기자

노명우 교수는 "읽는 사람이 많을수록 위험한 책도 있고 책 자체가 찬양의 대상이 될 순 없다. 그래도 사회가 좀 더 좋아지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책을 전시‧보급하고 싶다"고 했다. 최정동 기자

페이스북‧유튜브 등 계정을 운영하며 그날 근무하는 북텐더가 책 추천 게시물을 올리고 있는데 인스타그램 계정이 유독 활발한 데는 앞서 말한 ‘고구마 줄기 법칙’이 관계있다. 한때 “인스타그램은 정보가 없고 허세작렬한 사진만 있다”고 오판했다는 그는 “인스타그램은 해시태그가 훨씬 유동적이어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 읽고 좋았던 책을 해시태그해서 들어가면 다른 책, 서점 등 ‘취향의 공동체’를 알게 되더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코로나19 2차 타격 이후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도 나섰다. 사회이론서 『민주주의는 없다』는 이를 통해 소개한 이후 니은서점 규모론 이례적으로 30권 가량 주문이 들어왔다.  
 

③삶을 바꾸는 자극…책을 온몸으로 감각하라

책, 서점이 주는 물리적 감각도 읽고 싶게 만드는 매력의 일부다. 니은서점엔 조지 오웰, 슈테판 츠바이크, 강상중 등 노 교수가 닮고 싶고 영향 받은 작가들을 모아둔 ‘명예의 전당’도 있다. 서가의 판매용 책 사이 ‘공유서재’ 스티커가 붙은 책들은 그가 직접 밑줄 치고 메모해가며 읽고 솔직한 감상평으로 ‘찜해둔’ 것이다. 책 냄새를 좋아한다는 이동근 북텐더는 “제가 읽혔으면 하는 책은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하게 되는데 그렇게 눈이 가서 구매하는 손님도 있다”며 즐거워했다.

 
사회학자 노명우의 인생 독서 3
“일주일에 한 권, 바쁘거나 귀찮아서 빼먹고 넘어가는 주도 있어 1년에 40권정도 읽는다”는 노명우 교수는 “다독보다 제대로 읽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의 독서 인생에 그렇게 ‘제대로’ 각인된 세 번의 순간이 있단다. “초등학교 때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을 읽고 소설이 머릿속에 홀로그램으로 그려지는 신기한 체험을 했죠. 고등학교 땐 백과사전을 뒤지다가 마르크스 공산당선언 구절에 가슴이 뜨거워진 게 이과였고 의대를 가려던 제가 사회학과에 가게 된 결정적 계기였죠. 세 번째는 독일 유학(베를린자유대학 사회학) 가서 첫 박사논문이 길을 잃고 헤매던 찰나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읽고 주제를 확 바꿨죠.” 그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 책이 준 자극들은 고스란히 니은서점을 찾아온 이들에게도 전파되고 있다.

④읽고 생각하다보면 스스로 작가가 된다

 니은서점의 ‘북텐더’는 ‘부드럽게 하다, 소중히 하다’는 뜻의 영단어 텐더(tender)에 책(book)을 합친 말. "학교에서는 교육자이자 연구자지만 서점에는 ‘훈장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돕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발상에서 만들었다. 혼자 책 읽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다같이 낭독회를 여는 등 문화기획자 역할도 한다고 구보라 북텐더는 밝혔다. 최정동 기자

니은서점의 ‘북텐더’는 ‘부드럽게 하다, 소중히 하다’는 뜻의 영단어 텐더(tender)에 책(book)을 합친 말. "학교에서는 교육자이자 연구자지만 서점에는 ‘훈장질’하는 사람이 아니라 돕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발상에서 만들었다. 혼자 책 읽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다같이 낭독회를 여는 등 문화기획자 역할도 한다고 구보라 북텐더는 밝혔다. 최정동 기자

“왜 책은 인터넷 기사처럼 결론이 빨리 등장하지 않느냐”는 식의 ‘디지털 스캔’ 방식으론 독서가 될 리 없다. “10명이 모여 10일 동안 100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데카메론』은 유튜브 동영상조차 흥미를 끌지 못하면 1분도 보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읽을 수 없는 텍스트가 된다”고 노 교수는 경고한다.  
그럼에도 그는 “정보와 생각은 다르다. 정보만 원하는 사람은 유튜브, 인터넷 검색으로 충분하지만, 책은 정보로만 구성돼 있는 게 아니라 생각을 자극하는 도구”라고 강조했다. “책은 능동적인 지적 활동을 해야 읽을 수 있다. 인권에 관한 책을 10시간 걸려 읽으면 그 시간만큼 인권을 생각하게 된다. 생각의 깊이는 빠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주제와 질문에 대해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가에 좌우된다”면서다.  
그렇게 읽고 생각하며 얻게 되는 또 다른 열매는 글쓰기다. 니은서점의 북텐더들은 모두 작가 지망생이다. 이미 구보라 북텐더는 독립출판물 『쎗쎗쎗, 서로의 데드라인이 되어』를 펴냈고 송종화 북텐더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며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란 책을 냈다.  

책을 읽어도 돌아서면 기억이 안 난다고? 부담 느낄 필요 없다. "모든 책을 기억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하면서 쌓이는 거고, 까먹으면 또 읽으면 되지." 아주대 사회학과 제자인 송종화 북텐더가 귀띔한 노명우 교수의 유쾌한 충고다. 최정동 기자

책을 읽어도 돌아서면 기억이 안 난다고? 부담 느낄 필요 없다. "모든 책을 기억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하면서 쌓이는 거고, 까먹으면 또 읽으면 되지." 아주대 사회학과 제자인 송종화 북텐더가 귀띔한 노명우 교수의 유쾌한 충고다. 최정동 기자

“사회학자로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에 관심 갖게 된다”는 노 교수는 요즘 조선 중인 출신의 역관이자 요절한 문인 이언진의 삶을 재조명하며 신분제가 없어진 지금도 여전한 ‘불평등의 문제’를 탐구하는 데 푹 빠져있다.  
니은서점 식구들이 뭉친 프로젝트도 있다. 은평문화재단의 의뢰를 받아, 동네 골목 영세상권이 코로나19를 어떻게 겪고 있는지 노 교수가 북텐더들과 다 같이 조사‧작업하게 됐다.  

“서점이란 게 완성된 책을 판매하는 동시에 지식이 만들어지는 곳이 되면 좋겠다, 그게 미래 모습의 서점이란 생각을 늘 했는데 좋은 기회이자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 교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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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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