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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터질지 몰라 수확 포기”…철원 민통선 마을 씁쓸한 추석

“목숨 걸고 논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느냐”

지난달 23일 오전 민간인통제선 내 강원 철원군 이길리에서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장이 지뢰를 탐지하고 있다. [사진 이길리 주민 제공]

지난달 23일 오전 민간인통제선 내 강원 철원군 이길리에서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장이 지뢰를 탐지하고 있다. [사진 이길리 주민 제공]

“지뢰가 어디서 나올지 몰라 올해 벼 수확은 어쩔 수 없이 포기했습니다.”
 

6800평 논에서 지뢰 발견…수확 포기하고 지뢰 탐지
“지뢰 탐지 끝나야 마음 편히 농사 지을 수 있을 것”

 강원 철원군 동송읍 강산리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안쪽에서 농사를 짓는 최종수(54)씨는 풍요로워야 할 추석을 수해와 지뢰 때문에 씁쓸하게 보냈다. 지난 8월 초 철원지역에 700㎜가 넘는 집중호우가 내릴 당시 2만2440㎡(6800평) 규모의 논둑이 무너지면서 토사가 논을 덮쳤기 때문이다. 피해를 본 논 주변은 비무장지대(DMZ)로 곳곳에 지뢰가 묻혀 있는 지역이다.
 
 최씨는 지난달 23일 논에서 지뢰 1발이 발견되자 벼 수확을 포기했다. 올해 수확을 포기하면서 4000만원이 넘는 손해를 봤다는 게 최씨의 입장이다. 최씨는 “추수도 중요하지만, 목숨을 걸고 논에 들어갈 수는 없어 올해는 수확을 포기하기로 했다”며 “내년 농사를 위해 군부대에 지뢰 탐지를 맡기는 쪽을 택했다. 그래야 앞으로 마음 편히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라고 말했다.
 
 유례없는 긴 장마에 수해 피해를 본 철원지역 민통선 안쪽 마을 농민들이 잇단 지뢰 발견에 속속 수확을 포기하고 있다. 철원군 갈말읍 정연리 민통선 안쪽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남운(48)씨도 지뢰 때문에 수확을 포기한 논 면적이 4950㎡(1500평)에 이른다. 벼를 수확했다면 80㎏ 기준 20가마가량이 나오는 면적이다.
 

비무장지대 지뢰 4개, 수해 때 떠내려와

지난달 23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에서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장이 발견한 M14(대인지뢰) 3발. [사진 이길리 주민 제공]

지난달 23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에서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장이 발견한 M14(대인지뢰) 3발. [사진 이길리 주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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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째 민통선 안에서 농사를 짓는 김씨는 “수확을 하려면 토사를 치우고 콤바인이 들어가야 하는데 지뢰가 논과 하천 곳곳에서 나오는 상황이라 작업을 못 했다”며 “지뢰 탐지를 할 경우 많은 인력과 장비가 논에 들어가기 때문에 벼 낱알이 다 떨어져 수확을 해도 남는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앞서 농민들은 추석을 앞둔 지난달 23일 추수를 위해 민간 지뢰 전문가를 초청해 지뢰 탐지 작업을 의뢰했다. 하지만 지뢰 탐지에 나선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장이 3시간 만에 이길리 논 인근 하천에서 3발, 강산리 논에서 1발 등 지뢰 4발을 발견하면서 수확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집중호우 때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 중 1발은 부식이 상당히 진행됐지만, 나머지 3발은 M14(대인지뢰)로 형체가 그대로 유지돼 폭발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김 소장은 “이번에 발견된 지뢰는 제2땅굴 발견 이후 군(軍)이 산 아래쪽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며 “지뢰가 논 인근에서 나무뿌리 등과 엉켜 있었던 만큼 수해복구와 농작물 수확 작업을 할 때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청와대에 “집단이주” 호소문도 전달

지난달 23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논에서 농민들이 지뢰 발견 위험 속에서도 벼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3일 강원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의 논에서 농민들이 지뢰 발견 위험 속에서도 벼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철원군 이길리 주민들이 태풍·집중호우 때 떠내려온 지뢰로 인한 피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철원군 이길리 주민들이 태풍·집중호우 때 떠내려온 지뢰로 인한 피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길리 주민들은 수해에 이어 지뢰까지 발견되자 지난달 21일에는 청와대를 찾아가 집단이주를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주민들은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따른 이주 지원대책 마련’, ‘비무장지대 유실 지뢰의 위험 근본적 해결’, ‘농경지 지뢰 피해지역 작물보상비 지급’ 등의 내용이 담긴 호소문을 청와대 관계자에게 전달했다.
 
 주민들은 “수재민의 경우 현행법상 주택 건축 비용을 가구당 1600만원까지만 지원받을 수 있다”며 “집터를 마련하고 집을 새로 짓는데 2억원에 가까운 비용이 필요해 1억8000만원이라는 부채를 안고 이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강원도와 철원군은 정부에 이길리 지역을 국가생태습지로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생태습지를 조성하면 주민들이 실질적인 보상을 받아 수해 걱정이 없는 곳으로 이주할 수 있고, 자치단체 입장에선 생태습지를 활용한 관광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종연 이길리 이장은 “1600만원으로 이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생태습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만큼 긍정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한탄강보다 5m 정도 낮은 지대에 형성된 이길리는 1996년과 1999년, 올해까지 25년간 세 차례나 온 마을이 물에 잠겼다. 지난 8월 집중호우 땐 주택 68동이 침수되면서 13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철원=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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