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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의 시선] 33년 전 ‘수지 김’의 조국과 뭐가 다른가

김승현 정치에디터

김승현 정치에디터

잊혔던 그 이름이 TV에 나오자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 수지 김. 2001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한 ‘윤태식 게이트’의 출발점이자 피살자. 햇병아리 법조 출입기자일 때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던 사건이 최근 방송에서 재연됐다.
 

87년 ‘수지 김 사건’ 은폐 안기부
“남북문제” 이유로 집안 풍비박산
피격 늑장 대응도 국가우선 횡포

사건의 전모는 요약이 버거울 정도다. 1987년 1월 윤태식(당시 29세)은 홍콩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 수지 김(본명 김옥분·당시 34세)과 말다툼을 하다 숨지게 했다. 그는 살인을 은폐하고 한국에 가기 위해 월북을 시도하는 척하고는 “납치되기 직전 탈출했다”는 기괴한 거짓말을 지어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관여하면서 사건은 북한의 미인계 공작에 의한 ‘여간첩 납치 미수 사건’ 일명 ‘수지 김 사건’으로 각색됐다.
 
안기부가 처음부터 조작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살인자의 황당한 거짓말을 알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면서 ‘국가 안전을 위한 기획’이 진행됐다. 안기부장이었던 장세동은 직권남용죄의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피했다. 다만,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이런 해명을 했다.
 
“창피하지만 안기부도 속았다. (윤태식을) 데려와서 보니까 부인을 죽인 살인자였다. 남북문제이고 하니까 일정한 시간을 뒀다가 처리하려 했는데 제가 얼마 안 있다가 그 자리를 떠나(87년 5월) 방치됐던 사건이다. 유족에게 백번 천번 사죄를 드려도 지금도 유감스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남북문제이고 하니까’ 수지 김은 간첩이어야 했고, 윤태식의 거짓말은 진실이 됐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불귀의 객이 된 김옥분은 다시 짓밟혔다. 1987년 1월 기자회견에서 윤태식은 “너무 무서워 말을 못하겠다. 이번 일로 반공은 바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악어의 눈물을 글썽였다. 살인죄 등으로 징역 15년 6개월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윤태식은 2년 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엔 살려고 거짓말을 했다. 이후 안기부가 김대중 선생 등을 북한과 엮어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협박했다”고 했다. 진실이 드러나기 1년 전엔 국가정보원이 재수사를 막으려 한 일도 자행됐다.
 
국가의 만행은 시스템처럼 작동했다. 버스안내양, 술집 종업원으로 악바리처럼 모아 고향에 부친 돈이 북한 공작금으로 둔갑했다. 그 진술을 강요받고 폭행당한 수지 김의 어머니는 실어증을 앓다가 숨졌고, 맏언니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 객사했다. 한 여동생은 이혼당하고 그 아들은 간첩의 씨앗이라는 핍박을 받았다. 수지 김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는데 이후 윤태식은 지문 인식 벤처기업 ‘패스21’로 승승장구했다. 2001년의 수사로 진실이 밝혀지고 국가 배상(45억여 원)이 이뤄진 것으로 천추의 한이 다소나마 풀렸길 바랄 뿐이다.
 
33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 삶을 개미처럼 짓밟는 국가범죄는 더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1주일 전까지만 해도 확고했던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22일 서해에서 실종된 국민이 북한 등산곶 해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사건의 처리 과정을 보면서다. 실종 공무원 이모씨의 피살은 23일 밤 10시가 넘어 보도되기 시작했는데, 그 직전 언론사에는 앞뒤 맥락 없이 ‘공무원 월북설’이 퍼졌다. 청와대엔 이미 24시간 전 ‘사살 후 시신 훼손’이라는 첩보가 올라간 상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겐 그 첩보가 10시간 뒤(23일 오전 8시 30분)에야 보고 됐고, 그 사이 유엔 총회에서 ‘종전 선언’을 제안하는 화상 연설(23일 오전 1시 30분, 15일 사전 녹화)이 공개됐다.
 
충격적인 국민 피격 뉴스에 앞서 ‘월북 프레임’이 짜이고, 새벽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았으며, 그사이 평화 메시지까지 타전된 기이한 현상의 원인은 뭘까. 국민의 안전이 ‘우선순위’ 한참 아래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론 악화에 다급해진 청와대와 여권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공개하고 그의 “미안하다”는 발언을 칭송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수지 김에게 그러했듯 ‘남북문제이고 하니까’ 국민은 뒤로 물러나 입 닥치고 계시라는 얘기다.
 
하루 이틀 진상 공개를 지연했다고 14년을 조작한 극악무도한 국가범죄와 비교하는 게 견강부회(牽强附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박종철이 죽고 수지 김이 은폐된 33년 전 국가시스템처럼 이번에도 국가가 우선이었다는 점이다. 수지 김이 간첩이었어야, 이씨가 월북했어야 국가에 이익이라는 망상과 궤변이 시스템으로 용인되고 있었다. 국가가 먼저고, 국민은 나중이었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었다.
 
김승현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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