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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임대 들여 안 짓겠다”…공공재건축 ‘공수표’ 되나

8·4 주택 공급 대책이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사진은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연합뉴스]

8·4 주택 공급 대책이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사진은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연합뉴스]

정부의 8·4 주택 공급대책이 시작 단계부터 삐걱대고 있다. 8·4 대책의 핵심인 서울 ‘공공재건축’ 사업이 정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지난달 20일 공공재건축·재개발을 지원할 ‘공공정비사업 통합지원센터’가 문을 열었지만, 한달이 넘도록 공공재건축을 하겠다는 재건축조합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는 8·4 대책에서 2028년까지 공공재건축으로만 5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장담했다. 8·4 대책에서 밝힌 물량의 38% 정도로, 공급처별로 가장 많은 물량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공재개발’이 순항 중이라는 것이다. 공공재개발은 공공재건축과 비슷한 형태로, 8·4 공급대책엔 공공재개발 2만 가구가 포함돼 있다.
 

삐걱대는 8·4 주택 공급 대책
임대 거부감, 수익성도 떨어져
컨설팅 신청만 5곳 지지부진

공공재개발은 첫날부터 인기
사업 속도 더딘 조합들 새 출구
“재건축은 투기란 인식 바꿔야”

공공재건축과 공공재개발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같은 공기업이 재개발·재건축에 참여해 사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용적률 상향과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공공임대 등으로 이익의 일부를 환수하는 방식이다. 공공재건축은 아파트 최고 층수를 35층에서 50층으로 올리고, 용적률을 300∼500%까지 높이는 대신 증가한 용적률의 50~70%를 공공임대로 환수키로 했다. 재건축조합 입장에선 용적률이 두 배가량 증가하지만, 그만큼 임대주택을 들여야 한다. 공공재개발도 마찬가지다. 재개발 절차가 간소화하고, 분양가 상한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조합원 분양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의 50%를 공공임대로 내놔야 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두 사업이 비슷한 형태지만, 참여율은 극명하게 갈린다. 공공재건축은 하려는 곳이 없다. 정부는 통합지원센터의 컨설팅을 받기로 한 곳이 5곳이라고 밝혔지만, 컨설팅 수준인 데다 이마저도 정부가 강요했다는 후문이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건축 사업으로 상승한 집값의 최고 50%를 환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등의 규제는 그대로인데, 임대주택 수천여 가구를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권 주요 재건축 단지가 공공재건축을 한다면 임대주택 물량만 2000~3000가구에 이른다. 재건축조합으로선 짓지 않아도 되는 공공임대까지 들여가면서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이와 달리 공공재개발은 사업이 더딘 재개발조합의 관심을 받고 있다. 공공재개발 사업 후보지 공모를 시작한 21일 한남1구역이 용산구청에 공모 신청서를 제출했다. 용산구청 측은 “공모 신청서를 제출한 만큼 주민 동의, 노후도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남1구역은 공모 신청에 필요한 주민 동의율인 10%를 훌쩍 넘은 25%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동작구 흑석2구역, 성북구 성북1구역·장위9구역, 영등포구 양평14구역 등 20여 곳이 공공재개발에 관심을 갖고 공모 신청을 준비 중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21일 오전 열린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공공재개발은 시범 사업지 선정에 수십 개 조합이 참여 의사를 타진해 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비슷한 사업인데 공공재개발에만 관심이 몰리는 이유는 공공임대에 대한 ‘거부감’이 덜 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은 재건축과 달리 지금도 반드시 전체 가구 수의 10~15%를 임대주택(이른바 임대주택의무비율)으로 지어야 한다. 낡은 다세대·다가구주택에 세 들어 살던 서민을 위한 주거복지 차원인데, 어차피 임대주택을 들여야 하는 만큼 공공재개발 사업을 신청해 각종 인센티브를 받고 사업 속도라도 높이자는 전략인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최근 임대주택의무비율 상한선을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공공재개발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임대주택의무비율이 늘어나면 그만큼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지어야 하고, 그러면 일반분양 물량이 줄어 재개발 사업의 채산성은 악화한다. 그럴 바엔 공공재개발이 낫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공공재개발 수익률 개선 효과.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공공재개발 수익률 개선 효과.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특히 정부가 재개발이 무산(해제구역)된 곳까지 공공재개발 가능성을 열어 놓으면서 참여율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지난해 서울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취임한 2013년 이후 2017년까지 해제된 정비구역이 총 354곳에 이른다. 이 중 170곳(48%)을 시장 직권으로 해제했다. 정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개발 구역은 이해관계가 복잡해 재개발이 시급한 데도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다 해제된 곳이 많다”며 “이들 지역은 공공재개발이 새로운 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8·4 대책의 핵심 축인 공공재건축이다. 서울은 집 지을 땅이 남아 있지 않아 재개발·재건축이 유일한 주택 공급처나 다름없다. 특히 재건축은 한번에 수천여 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 주요 공급처다.
 
재개발은 일부 구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소 단위인 데다 상대적으로 조합원이 많아 주택 공급 효과가 덜한 편이다. 정부가 공공재개발 목표 가구 수를 공공재건축의 절반도 안되는 2만 가구로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공공재건축을 활성화해야 8·4 대책이 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시장에선 공공재건축 활성화를 위해선 공공임대가 아닌 공원 등으로 기부채납을 받거나, 개발 이익 환수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실 가능성은 떨어진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8·4 대책 직후 “용적률이란 공공의 것으로, 특정 지역에 용적률을 완화해주는 것은 그만큼 혜택을 주는 것”이라며 더는 혜택을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재건축은 기본적으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인데 정부는 개발이익이 발생하므로 투기라고 본다”며 “공공재건축을 활성화하려면 이 같은 정부의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2015년 이후 신규 재개발 0건…주택 공급 부족 심화
공공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정부가 참여해 인위적으로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는 것이라면, 기존의 일반적인 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은 자연스런 노후주거지 환경개선 사업이다. 낡은 주택을 새로 지어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주택을 일부 공급하는 형태다. 그런데, 일반 재개발·재건축 사업도 잘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내년 서울 입주 물량이 2만1700여 가구로 올해(4만2000여 가구) 대비 반 토막 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같은 공급 부족을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재개발 구역으로 새롭게 지정된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2015년부터 검토 중인 구역은 22곳이지만 실제 지정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상 신규 재개발 사업이 끊긴 것이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 심의(건축심의·사업시행·관리처분) 건수는 2017년 99건에서 지난해 43건으로 반토막 났다. 올 1~8월은 28건에 그쳤다. 2017년 33건이던 재개발 심의가 올해 16건으로, 66건이던 재건축은 12건으로 급감했다.
 
신규 지정이 끊기고, 심의 건수가 확 줄었다는 건 결국 일반적인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는 서울 주택 공급이 원활히 되고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내년부터 시작하는 서울 신축 아파트 공급 부족은 앞으로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 정비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기존의 재개발 사업지도 대거 해제한 만큼 향후 몇 년간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이 끊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재개발 구역 지정 기준 완화에 나섰다. 김성보 시 주택건축본부장은 최근 열린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회의에서 “(재개발 정비구역 지정 기준 완화에 대해) 우선으로 검토해서 빠르면 올 연말,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재개발구역 지정 기준을 재검토할 시점이 됐다”며 “완화를 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완화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현재 서울시 ‘주거정비지수’를 기반으로 재개발 정비사업 구역을 지정하고 있다. 서울시 주거정비지수는 노후 건축물과 가구 밀집도 외에 주민동의율이나 구역면적·도로연장률 등 여러 기준을 동시에 적용하고 있다.
 
필수 충족요건을 만족하고 세부 규정이 일정 점수 이상이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실제 정비구역 지정까지 가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시장에선 재개발 기준을 완화하면 주택 공급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건축은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다. 인·허가권은 서울시와 각 자치구에 있지만, 정부가 집값 불안을 이유로 이런저런 규제로 재건축 사업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8·4 공급 대책을 앞두고 국토부에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자고 건의했지만, 국토부는 공공재건축을 밀어붙였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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