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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12척'도 곳곳 들러…1258㎞ 최장, 77번 국도의 반도

변산반도 격포항은 예전 격포진으로 부른 군사 요충지였다. 근처에 왕의 임시 거처인 행궁이 있었다. 김홍준 기자

변산반도 격포항은 예전 격포진으로 부른 군사 요충지였다. 근처에 왕의 임시 거처인 행궁이 있었다. 김홍준 기자

1일2산을 했다. 붙어있는 산도 아니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에 뚝 떨어졌다. 금오산(323m)과 팔영산(609m)이다. 지난 2월 28일 77번 국도는 제 몸에 다리 4곳을 새로 걸쳤다. 내비게이션은 예전 120㎞ 길 대신 85㎞짜리 새 길을 띄웠다. 반도에서 다른 반도로, 1시간 조금 넘게 걸려 섬들을 징검다리 삼아 건넜다. 여수와 고흥은 순천·벌교의 신세를 지지 않고, 가장 짧은 거리로 30분이면 통하는 사이가 됐다.

드라이브스루 언택트 여행지
부산서 해남·변산 거쳐 파주까지
우리 땅 대부분의 반도 훑고 지나

여수~고흥 잇는 다리 4개 신설
변산·태안 소나무는 왕실서 관리
6·25 격전지 김포, 일부선 “반도”

 
반도는 삼면의 바다에 둘러싸인 육지다. 현재에 묶일 것이냐, 나아갈 것이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영화 ‘반도’는 역병으로 한반도가 격리된 상황을 그린다. 영화 속, 정석(강동원) 일행을 본 홍콩인들의 “반도 놈들 아냐”라는 외침은 역병에 무너진 국가와 국민의 치명상을 드러낸다. 영화가 관객 380만 명을 모은 뒤 스크린에서 내려갈 즈음, 현실의 역병은 다시 고개를 뻣뻣하게 들었다. ‘한반도의 반도’를 둘러봤다.  

지난 8월 16일 대전에서 온 연인이 여수와 고흥을 잇는 둔병대교((오른쪽)와 낭도대교를 바라보고 있다. 이 두 다리는 화양, 적금대교와 함께 2020년 2월 28일 개통되면서 여수와 고흥을 오가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김홍준 기자

지난 8월 16일 대전에서 온 연인이 여수와 고흥을 잇는 둔병대교((오른쪽)와 낭도대교를 바라보고 있다. 이 두 다리는 화양, 적금대교와 함께 2020년 2월 28일 개통되면서 여수와 고흥을 오가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김홍준 기자

여수 돌산의 향일암은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김홍준 기자

여수 돌산의 향일암은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김홍준 기자

여수 금오산에서 한 등산객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 2월 개통한 화양, 둔병, 낭도, 적금대교를 이곳 여수 돌산에서 잇는 다리들이 2028년을 목표로 세워진다. 김홍준 기자

여수 금오산에서 한 등산객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 2월 개통한 화양, 둔병, 낭도, 적금대교를 이곳 여수 돌산에서 잇는 다리들이 2028년을 목표로 세워진다. 김홍준 기자

# 77번 국도, 다른 도로와 겹친 구간 빼면 701㎞

77번 국도는 반도 대부분을 훑는다. 우리나라 최장 도로다. 부산 중구에서 시작해 남서해안을 따라 1258㎞(2019년 기준)를 굽이친다. 국토관리청 도로현황에 따르면 ‘순수한’ 77번 국도의 길이는 701㎞. 다른 도로와 섞인 부분이 557㎞라는 얘기다. 고성반도를 한 아름 안은 77번 국도는 북북서로 향하다 다시 구불구불 남행한다. 여수와 고흥을 잇는 다리 5곳 중 팔영대교가 2016년 12월 들어섰다. 화양·둔병·낭도·적금대교가 올해 2월 개통했다. 김정신 여수시청 주무관은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화하면서 방문객이 줄었지만, 오히려 드라이브와 섬 트레킹을 선호하는 언택트 관광지로 뜨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16일 차량 한대가 77번 국도를 이용해 여수 화양면에서 고흥 영남면으로 향하는 5개 다리의 첫 구간인 화양대교에 진입하고 있다. 멀리 고봉산 아래 화양면 장수리 수문마을, 자매마을, 공정마을(오른쪽부터)이 펼쳐지고 왼편에 자연적으로 자라 마을을 호위하는 방풍림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지난 8월 16일 차량 한대가 77번 국도를 이용해 여수 화양면에서 고흥 영남면으로 향하는 5개 다리의 첫 구간인 화양대교에 진입하고 있다. 멀리 고봉산 아래 화양면 장수리 수문마을, 자매마을, 공정마을(오른쪽부터)이 펼쳐지고 왼편에 자연적으로 자라 마을을 호위하는 방풍림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지난달 17일, 여수에 사는 김지예(22)씨는 “예전엔 엄두도 못 냈지만, 오늘은 고흥에 마실 간다”며 화양대교로 향했다. 김씨를 만난 곳은 여수 화양면 장수리 자매마을. 원래 도로는 마을 앞 바다에 바싹 붙었고, 새 도로는 마을 뒤에 생겼다. 김종례(83) 할머니는 “종종 저렇게 들어와서 구경하고 간다”고 말했다. 자매마을은 77번 국도에 포위당했지만 차 소음은 크지 않았다. 한 발짝 물러서 보면 후박나무·소사나무 등이 할머니 등처럼 굽은 마을을 도톰하게 호위하고 있다. 방풍림이 방음림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밤바다’는 여수 관광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다리 건너 만나는 고흥은 사뭇 다르다. 고흥의 팔영산 유영봉에서 만난 김영철(62·대구)씨 부부는 “차도 적고 사람도 뜸해 고즈넉하다”고 말했다. 송규석 고흥군청 주무관은 “새로 다리가 놓이면서 화려한 여수와는 다른 느낌을 찾는 분들이 짧은 시간에 고흥을 찾는다”고 밝혔다. 고흥은 이야기의 땅이다. 이곳 출신 어우당 유몽인(1559~1623)은 『어우야담』을 지었다. 고흥에 전해지는 설화와 이야기는 400개가 넘는다. 도깨비 관련이 많다.  
고흥 팔영산은 도립공원이었다가 다도해국립공원에 편입된 산이다. 팔영산 뒤로 멀리 여수-고흥을 잇는 다리가 보인다. 김홍준 기자

고흥 팔영산은 도립공원이었다가 다도해국립공원에 편입된 산이다. 팔영산 뒤로 멀리 여수-고흥을 잇는 다리가 보인다. 김홍준 기자

전남 고흥 외나로도 봉래산을 약 30분만 오르면 수령 100년에 가까운 편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은 192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100여 년 차이를 두고 2018년 팔영산에도 편백나무 숲이 조성됐다. 신인섭 기자

전남 고흥 외나로도 봉래산을 약 30분만 오르면 수령 100년에 가까운 편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은 192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100여 년 차이를 두고 2018년 팔영산에도 편백나무 숲이 조성됐다. 신인섭 기자

77번 국도는 고흥 반도 남쪽을 휘감아 돈 뒤 장흥·해남·화원반도로 이어진다. 400여 년 전, 조선의 전함 12척이 이 길 왼쪽의 바닷길을 따라 이동했다. 1597년 음력 7월 정유재란. 원균이 거제 칠전량 해전에서 일본 수군에 궤멸당했다. 살아남은 전함(판옥선) 12척은 복직한 이순신이 장흥 회령포에서 건네받았다. 13척이 된 전함은 해남의 이진·어란포로 내달렸다. 다시 화원반도의 울돌목으로 향했다. 9월 16일, 적선 200여 척이 나타났다. 물길 좁고 거센 울돌목에서 이순신의 함대는 비비람처럼 나갔다.『난중일기』에 따르면, 이미 죽은 적장 마다시(馬多時)를 바다에서 건져 촌참(寸斬·마디마디 자름)한 뒤 내걸었다. 적들은 퇴각했다. 이순신의 전함은 곧바로 서해안을 따라 고군산군도까지 올라가 숨을 골랐다.
  
77번 국도도 북상한다. 이순신이 해제반도의 신안에 머물렀을 때, 충남 아산현에서 일본군의 습격을 받고 스무 살에 죽은 셋째 아들 면(葂)의 비보를 접했다. 그는 목 놓아 통곡했다(난중일기 1597년 10월 14일).
77번 국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77번 국도.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 190년 전 부안 77세 모임…77과 인연
도로는 부안의 변산반도에 들른다. 『칠갑록(七甲錄)』에 따르면 1830년 7월 7일 부안에 있는 77세 노인 7명이 칠성암(七星庵)에 모였다. 이들은 “7일 동안 학리를 주고받으니, 이 어찌 우연의 일이겠는가”고 했다. 190여 년 뒤 77번 국도가 그들 있던 곳을 스치고 지나가게 됨은 우연일까.
새만금방조제에서 바라본 변산반도. 새만금방조제 도로는 77번 국도다. 김홍준 기자

새만금방조제에서 바라본 변산반도. 새만금방조제 도로는 77번 국도다. 김홍준 기자

채석강은 변산반도의 명소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단애는 살아있는 지질 학습장이다. 김홍준 기자

채석강은 변산반도의 명소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수만 권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단애는 살아있는 지질 학습장이다. 김홍준 기자

변산반도의 끄트머리 격포항은 예전 격포진(格浦鎭)으로 부른 요충지였다. 근처에 유사시 임금의 거처인 행궁(行宮)이 있었다. 현재 행궁은 흔적도 없다. 격포진은 송정(松政·소나무 정책)을 맡았다. 고동환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송정에는 벌목을 막는 금송(禁松)과 강원도·안면도 등에서 기르는 양송(養松)이 있다”고 말했다. 

 
77번 국도는 새만금방조제를 거쳐 태안반도 안면도의 500년 이상 보호된, 안면 송림까지 들여다본다. 백화산(284m)도 소나무로 뒤덮여 있다. 솔잎은 숱 많고 결 단단한 스무 살 이등병의 머리칼처럼 건강하다. 안면도 샛별해변 남쪽에 ‘쌀썩은여’가 있다. '여'는 썰물 때 드러나는 바위를 말한다. 예전 남쪽에서 조운선이 쌀을 싣고 한강으로 향하다 이곳의 험한 바닷길을 넘지 못해 종종 좌초됐다. 쌀이 썩었다. 그래서 '쌀썩은여'다. 『동국여지승람』은 조선 태조부터 세조 때까지 60여년간 이곳에서 선박 200여 척, 1200여 명, 쌀 1만5800여 섬의 피해를 적고 있다.
태안 태을암 마애삼존불상 뒤의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 김홍준 기자

태안 태을암 마애삼존불상 뒤의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 김홍준 기자

태안 백화산은 큰 힘 들이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산행할 수 있다. 마애삼존불이 있는 태을암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으며, 군 지역으로 묶여있던 북봉 지역은 2017년 개방돼 태안반도의 북쪽까지 조망할 수 있다. 김홍준 기자

태안 백화산은 큰 힘 들이지 않고 아기자기하게 산행할 수 있다. 마애삼존불이 있는 태을암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으며, 군 지역으로 묶여있던 북봉 지역은 2017년 개방돼 태안반도의 북쪽까지 조망할 수 있다. 김홍준 기자

충남 태안반도 안면도의 샛별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쌀썩은여.' 고려· 조선 시대, 지방에서 개경 또는 한양으로 올라가던 선박들이 이곳에서 자주 좌초되면서 싣고 가던 쌀이 썩었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었다. '여'는 썰물 때 드러나는 암초 지대를 말한다. 김홍준 기자

충남 태안반도 안면도의 샛별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쌀썩은여.' 고려· 조선 시대, 지방에서 개경 또는 한양으로 올라가던 선박들이 이곳에서 자주 좌초되면서 싣고 가던 쌀이 썩었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었다. '여'는 썰물 때 드러나는 암초 지대를 말한다. 김홍준 기자

 
살아남은 조운선은 김포를 통해 한강에 들어갔다. 77번 국도인 자유로 건너편에 김포가 있다. 일부에서는 ‘김포반도’라고도 부른다. 전국지리교사모임 관계자는 “김포는 지리적으로는 반도로 볼 수는 없다”며 “한강·조강·염하(강화와 김포 사이의 해협) 등 ‘3면의 물’로 둘러싸여 있기에 형태상으로 반도로 보는 것 같다”고 밝혔다. 
충남 태안반도 파도리해수욕장의 해식동굴 앞에서 윤다혜(28.서울 중랑구)씨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밀물 때는 물에 완전히 잠겨 물때를 잘 맞춰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SNS 포스팅의 숨은 성지로 꼽힌다. 김홍준 기자

충남 태안반도 파도리해수욕장의 해식동굴 앞에서 윤다혜(28.서울 중랑구)씨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밀물 때는 물에 완전히 잠겨 물때를 잘 맞춰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SNS 포스팅의 숨은 성지로 꼽힌다. 김홍준 기자

지난 9일 경기도 성남에서 온 유현정(28), 유현진(26) 자매가 태안반도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9일 경기도 성남에서 온 유현정(28), 유현진(26) 자매가 태안반도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김홍준 기자

 
이곳에 ‘김포지구 전투’가 있었다. 국방안보포럼에 따르면, 2001년 공개된 라주바예프 보고서는 1950년 한국전쟁 개전 당시 북한 6사단의 주공격 방향을 김포-ㄴ영등포로 명시해 놓았다. 이전까지 알려진 바로는, 북한 6사단의 주력이 1·3·4사단, 105전차여단과 함께 백선엽 장군이 이끌던 국군 1사단을 문산에서 밀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주바예프 보고서는 북한 6사단이 김포-영등포로 돌아 국군 주력을 포위하려 했다고 밝힌다. 이를 예상치 못했던 국군은 병력을 급조해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시간을 벌었다. 김포지구 전투는 이후 반전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군사전문가들은 말한다.
충남 태안 안면도를 관통하는 77번 국도. 부산에서 출발해 경기 파주까지 이어지는 1258km 국내 최장 도로다. 김홍준 기자

충남 태안 안면도를 관통하는 77번 국도. 부산에서 출발해 경기 파주까지 이어지는 1258km 국내 최장 도로다. 김홍준 기자

태안번도 신두리 해수욕장에서 한 관광객이 소를 바라보고 있다. 이 소들은 쇠똥구리를 복원하기 위해 방생한 것이다. 김홍준 기자

태안번도 신두리 해수욕장에서 한 관광객이 소를 바라보고 있다. 이 소들은 쇠똥구리를 복원하기 위해 방생한 것이다. 김홍준 기자

 
임진강 건너, 철책선 너머 멀리 옹진반도다. 경기도 파주, 77번 국도는 개성까지 가기로 됐지만 여기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반도는 다시 묻는다. 현재에 묶일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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