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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양학선·김국영·신유빈…올림픽 없는 올림피언의 가을 이야기

도쿄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는 양학선·김국영·신유빈. 사진=대한체조협회·대한육상연맹·대한탁구협회

도쿄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는 양학선·김국영·신유빈. 사진=대한체조협회·대한육상연맹·대한탁구협회

 
일간스포츠가 창간 51주년을 맞이한 2020년. 예정대로라면 올해는 제32회 도쿄 올림픽 개최로 전세계가 뜨거운 스포츠 열기에 휩싸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근대 올림픽 124년 역사에 남을 '올림픽 1년 연기'를 결정했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이후 1차 세계대전(1916년), 2차 세계대전(1940년·1944년) 기간 동안 세 차례 올림픽이 제때 열리지 못한 적은 있으나, 전염병으로 대회가 연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메가 스포츠 이벤트인 올림픽의 특성상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도 올림픽 연기는 옳은 선택이었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만 바라보고 4년 동안 구슬땀을 흘려온 선수들에게 올림픽 없는 2020년이 혼란스럽기만 하다. 올림픽 연기 결정 이후 반년이 지난 9월, 일간스포츠는 창간 51주년을 맞아 올림픽 없는 2020년을 보내고 있는 올림피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체조 국가대표 양학선이 수원시체육회 선수촌에서 일간스포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수원=김민규 기자

체조 국가대표 양학선이 수원시체육회 선수촌에서 일간스포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수원=김민규 기자

 
기계체조 양학선

"자주 가는 편의점 사장님이 은퇴했냐고 물어보더라(웃음). 은퇴하기 전 마지막 올림픽을 꼭 나가고 싶다."

한국 체조 종목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체조영웅', '도마의 신'….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학선(28·수원시청)의 이름 앞에 붙는 화려한 수식어들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양학선은 연이은 부상 탓에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있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햄스트링 부상으로 은메달에 그쳤고, 고향인 광주에서 열린 2015 유니버시아드 대회도 기권했다. 2016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는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결국 출전을 포기, 2연패의 꿈도 무산됐다.
 
창간 51주년 인터뷰를 위해 수원시체육회 선수촌에서 만난 양학선은 "런던 올림픽 이후로 금메달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그 후로 계속 다치면서 대회에 나가지 못했고,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히더라. 메달 못 따서 은퇴한 거 아니냐는 얘기 들을 때마다 상처도 많이 받고, 아쉽고 서운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동시에 "예전보다 욕을 덜 먹으니 부담감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오히려 좀 시원해졌다"고 어깨를 으쓱였다.
 
길고 긴 부상과 재활의 터널 속에서 올림픽만 생각하고 버틴 시간이 8년이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2020 도쿄 올림픽은 양학선의 두 번째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대회였다. 그래서 양학선은 코로나19로 인해 올림픽 취소 가능성이 한창 제기되고 있을 때도 신경 쓰지 않고 무던하게 훈련에 매진했다.
 
 
 
양학선은 "솔직히 정말 연기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 취소한다, 연기된다는 얘기가 나와서 선수들이나 감독님, 모두 사기가 저하되어 있을 때도 나는 '전쟁 난 것도 아닌데 설마 취소되겠어?'하는 마음으로 혼자 나가서 야간 훈련을 할 정도였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랬던 만큼 당연히 충격도 컸다. 더구나 양학선은 도쿄 올림픽을 잘 마친 뒤 7년을 만난 여자친구와 10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사귀는 동안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올림픽에서 멋진 모습 좀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는데…"라고 쓴웃음을 지은 양학선은 "2주 정도 '현타(현실 자각)'가 와서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아마 모든 선수가 그랬을 거다. 그리곤 '아, (대회)규정이 또 바뀔 테니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그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고 말했다.
 
올림픽까지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나가기 위해 치러야 할 대회들도 줄줄이 연기·취소됐다. 선수 입장에서는 컨디션 조절이 더 어려워졌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회는커녕 제대로 훈련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 양학선은 "버릇을 들이듯이, 국제대회에서 계속 금메달을 따두면 올림픽 금메달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는데 크고 작은 대회들이 모두 연기되거나 취소돼 너무 허탈하다. 당장 눈앞의 목표가 사라지니까 어려움이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양학선은 부상을 넘어 마지막 올림픽에 도전한다. 사진은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양학선의 모습. 중앙포토

양학선은 부상을 넘어 마지막 올림픽에 도전한다. 사진은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양학선의 모습. 중앙포토

 
8년의 기다림에 1년이 더해졌다. 그러나 양학선은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양학선은 담담한 말투로 "난 이미 8년을 기다렸다. 9년 차에 나가도 된다. 가장 큰 걱정이라면 내년이면 30대라는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아무래도 20대와 30대는 몸 상태가 확실히 다르다. 당장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해도 한 살 먹었다는 게 차이가 나더라.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졌지만, 노하우가 있으니 효율적으로 운동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부상을 넘어, 난관을 뚫고 마지막 올림픽에 도전하는 양학선은 "도쿄 올림픽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도쿄 올림픽을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 제2의 인생이 많이 바뀔 것 같다. 또 다른 '최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욕심을 많이 내고 있다"며 "이미 기술은 완성되어 있다. 그 기술을 조금 더 보완해서 완벽하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양학선은 "8년 전 런던 올림픽 때 나는 뱀을 봐도 무서움을 모르는 갓난아기였다. 무서운 줄도 모른 채 만졌고, 장난치는 것처럼 덤벼들었다"며 "지금은 뱀이 무섭다는 걸 안다. 그래도 만져보고 싶다. 어떤 도구가 필요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그 과정을 지금 조심스럽게 밟아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에 목말라 보였다.
 
 
 
김국영은 자신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도쿄올림픽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겠다는 다짐을 드러냈다. 사진=김국영 제공

김국영은 자신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도쿄올림픽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겠다는 다짐을 드러냈다. 사진=김국영 제공

 
◇육상 김국영
 
"올림픽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고 싶다."
 
2016 리우 올림픽 이후 2020 도쿄 올림픽을 기다리며 보낸 4년. 육상 국가대표이자 100m 한국 기록 보유자 김국영(29·광주광역시청)은 그 사이에 '군인'이 됐다가 '민간인'으로 돌아왔다. 입대할 때부터 군인 신분으로 올림픽 출전을 준비해왔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도쿄 올림픽이 미뤄지면서 상황이 또 바뀌었다.
 
지난 16일 전역한 김국영은 일간스포츠와 전화에서 "신분만 바뀔 뿐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민간인'은 다른 게 많더라"며 "계속 운동하면서 지냈다. 전역 전에 부상으로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던 만큼 재활 치료와 체력 훈련을 병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국영은 광주광역시청에 합류해 오는 10월 13일 김천에서 열리는 실업 대항대회, 10월 19일 예천에서 개막하는 전국대학·일반 육상경기대회 출전을 준비 중이다. 그동안 연이은 대회 취소로 컨디션 관리에 애를 먹어온 그에겐 반가운 기회다.
 
김국영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회가 취소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허탈했다. '또 취소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자꾸 들어 힘들었다"며 "아침에 일어나면 오전 10시마다 코로나19 관련 브리핑을 매일 챙겨보고, 실시간 확진자 수도 하루에 두세 번씩 검색해서 보는 것 같다. 육상은 폐활량이 중요한 스포츠이다 보니 최대한 조심하면서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김국영은 사상 초유의 올림픽 연기 사태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김국영은 "코로나19로 인해 10월 전국체전이 연기되면서 부상을 안고서라도 훈련해서 출전할 필요가 없어졌다. 부상 부위를 치료할 시간도 생겼고, 또 재정비해서 새로운 계획을 짤 수 있는 여유도 생긴 만큼 득이 된 거라고 생각 중"이라며 "최대한 준비를 잘해서 올림픽 준비에 지장이 없도록 하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김국영은 2010년 대구 전국 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예선에서 10초31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 서말구가 1979년 멕시코에서 세운 한국기록 10초34를 31년 만에 경신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후 다섯 번이나 자신의 기록을 갈아 치우며 한국기록 보유자의 위치를 공고히 다졌다. 현재 한국기록은 2017년 6월 27일 코리아오픈 국제육상경기 100m 결선에서 그가 세운 10초07이다.
 
 
김국영은 4년 전의 아픔을 원동력으로 남은 1년 최선을 다할 것이라 다짐했다. 사진은 지난 2016 리우올림픽 당시 남자 100m 예선 8조 경기에서 10초37의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한 뒤 아쉬워하고 있는 김국영. 중앙포토

김국영은 4년 전의 아픔을 원동력으로 남은 1년 최선을 다할 것이라 다짐했다. 사진은 지난 2016 리우올림픽 당시 남자 100m 예선 8조 경기에서 10초37의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한 뒤 아쉬워하고 있는 김국영. 중앙포토

 
그런 그에게도 세계의 벽은 높았다. 김국영은 4년 전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100m 최초로 기준 기록(10초16)을 통과해 본선 무대를 밟았으나, 10초37의 기록으로 예선에서 탈락했다. 같은 조에서 뛴 9명 중 7위였다. 김국영은 당시를 돌이키며 "100m가 참 허무하다는 생각을 했다. 30시간 걸려서 리우까지 가서 10초 만에 모든 게 끝났다. 그렇게 탈락하고 그날 밤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회상했다.
 
4년 전 경험한 올림픽의 '쓴맛'은 김국영을 더 담금질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국내 대회에서 10초03을 뛰고 1등 하는 것보다 올림픽에서 10초02를 뛰고 예선을 통과하는 게 더 뜻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올림픽은 기준기록을 통과해서 본선에 오른, 내로라하는 최고의 선수들만 출전하는 대회다. 리우 때는 그런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4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기록을 단축해가며 느낀 것은 다른 선수들이 아닌 나 자신과 경쟁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 라이벌은 내 기록이고, 내 기록과 싸워서 이기면 준결승 진출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내년에 열릴 도쿄 올림픽은 김국영에게 두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이 될 예정이다. 그는 "2016 리우 올림픽은 실패였고, 2024 파리 올림픽 때는 전성기가 지났을 나이다. 그러니까 운동을 그만두고 돌아봤을 때 올림픽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게끔, 남은 1년의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물론 9초대 진입 목표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김국영은 "스무 살 때 31년 만에 한국기록을 깬 뒤부터 다음 목표는 9초대 진입이라는 얘기를 해왔다. 안 될 거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지만, 나는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도전해왔다. 2~3년 안에 꼭 달성하고 싶다"고 흔들림 없는 각오를 전했다.
 
 
 
도쿄 올림픽 출전권이 달린 세계예선에서 맹활약한 '탁구 신동' 신유빈은 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브라보앤뉴 제공

도쿄 올림픽 출전권이 달린 세계예선에서 맹활약한 '탁구 신동' 신유빈은 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브라보앤뉴 제공

 
◇탁구 신유빈
 
"올림픽은 일단 나가는 게 목표다. 만약 나가게 된다면 메달도 따고 싶다(웃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탁구 국가대표팀 막내 신유빈(16·대한항공)의 목소리엔 수줍음이 가득했다. 사상 초유의 올림픽 1년 연기에도 "부족한 점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훈련도, 휴식도 충실히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긍정 에너지'를 내뿜는 그지만, 막상 올림픽에 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부끄럽고 어색한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탁구 신동'으로 이름을 떨친 신유빈은 올림픽 출전의 꿈을 한창 키워나가는 중이다. 14살의 나이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단 신유빈은 올해 1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단체전 세계예선에서 한국의 극적인 본선 출전권 획득에 큰 힘을 보탰다.
 
도쿄 올림픽 단체전 출전권은 남녀 16장씩이다. 각 대륙 챔피언과 개최국 일본이 7장을 먼저 가져간 상태에서, 한국 여자대표팀은 16강에서 북한에 1-3으로 패해 위기에 몰렸다. 패자부활전에 걸린 티켓은 단 한 장. 우크라이나와 스페인을 꺾고 패자부활 결승에서 프랑스를 만난 한국은 단식과 복식에서 승리를 따낸 신유빈의 활약 속에 극적으로 도쿄행을 결정했다.
 
신유빈은 그 짜릿했던 순간에 대해 "죽는 줄 알았다"고 표현했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이겨서 좋은 게 아니라,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어서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고 돌이킨 신유빈은 "그렇게 긴장되는 경기는 처음이었다. '올림픽에서도 이것보다 긴장 안 하겠다' 싶었다. 막상 올림픽에 가면 엄청 긴장할 것 같다"고 웃었다.
 
코로나19로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면서 아직 올림픽에 누가 나갈지 결정되진 않았다. 그러나 신유빈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는 언제나 그를 밝고 건강한 상태로 유지해준다. 신유빈은 "만약 올해 7월에 올림픽이 열렸으면 난 부족한 게 많은 상태였을 것"이라며 "훈련하면 할수록 더 좋아진다. 준비할 시간이 늘어난 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설령 올림픽에 못 나가더라도 준비하는 과정이 내게 엄청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2004년생 신유빈은 대표팀에서 가장 어리다. 그가 여덟 살 때 열린 2012 런던 올림픽을 TV로 본 기억이 없다. 그는 "(2016 리우 올림픽은) 보긴 했는데 초등학교 때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난 1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올림픽 단체전 세계예선 패자부활전 결승 프랑스와 경기에서 서브를 넣고 있는 신유빈. 사진=국제탁구연맹

지난 1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올림픽 단체전 세계예선 패자부활전 결승 프랑스와 경기에서 서브를 넣고 있는 신유빈. 사진=국제탁구연맹

 
대표팀 언니·오빠들과의 나이 차이도 엄청나다. 하지만 탁구에 대한 마음은 누구보다 크다. 수원 청명중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 대신 선뜻 실업팀 입단을 선택했을 때, 그 결정을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신유빈에게선 또래와 다른 길을 걷는다는 불안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신유빈은 "어차피 탁구 치는 건 똑같다. (실업팀에서) 운동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코로나19 때문에 친구들은 학교 체육관도 사용하지 못하는데, 지금 이렇게 훈련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당차게 말했다.
 
아직은 올림픽을 실감할 수 없는 나이. 신유빈은 항상 '꿈'을 품고 있다. 신유빈은 "잠들기 전 시상대 위에 태극기가 걸려있고 관중들이 좋아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어우, 미쳤나 봐' 싶은데 그래도 언젠가는 이 상상이 현실이 될까 싶다"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또 하나, '긍정왕' 신유빈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는 원동력이 있다. 그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BTS)의 가사 한 구절이다. 신유빈은 "'다이너마이트' 노래 가사에 '핑퐁'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그 부분에서 탁구 스윙을 하더라. 보자마자 깜짝 놀라서 잘못 본 줄 알았는데, 탁구선수로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며 "빨리 코로나19가 잠잠해져서 올림픽도 가고, 콘서트도 가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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