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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고 있던 치명적 바이러스 깨운다…시베리아 동토의 배신

올 1월 러시아의 시베리아 동부 사할린 섬에서 거대한 얼음 땅 사이로 물이 흐르는 모습. AP=연합뉴스

올 1월 러시아의 시베리아 동부 사할린 섬에서 거대한 얼음 땅 사이로 물이 흐르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달 러시아 동부 사하공화국 야쿠츠크시의 멜니코프 동토연구소 지하엔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문에 달린 온도계는 영하 8도를 가리켰다. 중앙일보의 의뢰를 받은 현지 촬영팀은 한여름이지만 두꺼운 패딩 점퍼를 갖춰 입고 입장했야 했다. 얼음과 추위로 가득한 세상, 이곳은 시베리아 영구동토 위에 세워진 야쿠츠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2년 이상 토양 온도가 섭씨 0도 이하로 유지되는 땅"

영구동토의 사전적 의미다. 영구동토는 대부분 북극·남극 등 극지방 주변에 위치한다. 그래서 북극에 가까운 얼음의 땅, 시베리아는 곧 영구동토와 동격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러시아 영토 3분의 2가량은 영구동토로 분류된다.
 
하지만 갈수록 빨라지는 지구 온난화의 시계가 시베리아의 정의를 뒤흔들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엄청난 더위가 찾아오면서 영구동토가 빠르게 녹고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엔 40도 가까운 이상 고온이 시베리아 전역을 뒤덮었다.
'역대급' 이상 고온과 건조한 날씨가 찾아오면서 올 여름 시베리아에선 화재가 끊이질 않았다. 지난달 러시아 사하공화국 빌류이스키 숲에서 거센 불씨가 나무를 삼키는 모습. 사진 sreda studio

'역대급' 이상 고온과 건조한 날씨가 찾아오면서 올 여름 시베리아에선 화재가 끊이질 않았다. 지난달 러시아 사하공화국 빌류이스키 숲에서 거센 불씨가 나무를 삼키는 모습. 사진 sreda studio

동토 녹을 때 온실가스 대방출, 온난화 가속

동토층이 붕괴 위기에 빠지면 전 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앞당기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오랫동안 얼음에 갇혀 있던 탄소가 대거 방출되면서 온실 효과가 활성화되는 식이다. 영구동토엔 지구 대기 중에 있는 탄소량의 두 배가 묻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에선 얼음이 녹으면서 메탄이 거품 형태로 솟아오르는 경우가 늘어난다. 다만 동토에서 나올 온실가스가 어떤 형태일지, 얼마나 나올지는 학계 연구가 진행 중이다.
 
멜니코프 동토연구소 연구부소장인 페도로프 알렉산더 니콜라이비치는 "동토층이 완전히 녹으면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날씨가 더 따뜻해진다. 그러면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재앙은 훨씬 빨라질 것"이라면서 "결국 시베리아 동토가 녹는 것은 전 세계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2014년 3만년 된 시베리아 영구동토에서 발견된 대형 바이러스(피토 바이러스). 사진 CNRS

2014년 3만년 된 시베리아 영구동토에서 발견된 대형 바이러스(피토 바이러스). 사진 CNRS

동토층이 사라질 때 단지 온실가스만 나오는 건 아니다. 수만 년간 땅속에 묻혀있던 고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도 깨어날 수 있다. 부활한 바이러스로 신종 전염병이 유행한다면 면역력이 전혀 없는 현대 인류에겐 치명적이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능가하는 '팬더믹'(대유행)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동토연구소 지하엔 1977년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매머드 새끼 '미라' 모형이 전시돼있다. 단단해 보이는 동토가 차츰 녹으면서 매머드 같은 고대의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최근에도 러시아 곳곳에서 매머드 뼈나 빙하기 곰 사체 등이 발견되고 있다.
러시아 북쪽 볼쇼이 랴호프스키 섬에서 발견된 빙하기 동굴곰 사체. 2만4000년 전 멸종됐지만 영구동토가 녹아내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동토에 묻혀있었지만 장기, 치아 등은 온전히 보존됐다. AP=연합뉴스

러시아 북쪽 볼쇼이 랴호프스키 섬에서 발견된 빙하기 동굴곰 사체. 2만4000년 전 멸종됐지만 영구동토가 녹아내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동토에 묻혀있었지만 장기, 치아 등은 온전히 보존됐다. AP=연합뉴스

고대 바이러스 습격 현실로, '팬더믹'도 가능

바이러스의 부활은 이미 영화가 아닌 현실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2016년 여름, 러시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에선 12세 목동이 탄저병으로 숨졌다. 이 곳에서 75년 만에 확인된 병이었다. 지역 주민 20여명이 병에 걸렸고, 순록도 2000마리 이상 죽었다. 처음엔 생물학적 테러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동토층이 녹으면서 탄저균에 감염된 동물 사체가 공기 중에 노출돼 병이 퍼진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존재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2014년엔 프랑스·러시아 연구팀이 3만년 된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고대 바이러스를 발견해 되살렸다. 이 신종은 '피토 바이러스'로 불렸다. 크기는 1.5μm(마이크로미터)로, 사람 눈에 보이진 않지만 다른 바이러스와 비교하면 매우 큰 몸집을 자랑한다. 20㎚(나노미터) 수준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75배다. 다만 부활한 바이러스는 아메바만 감염시키고 다른 동식물에 직접 해를 끼치진 않았다. 그래도 이들은 언제든 위험한 존재로 돌변할 수 있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거대한 구덩이 '크레이터'. 지구 온난화가 이어지면 크레이터가 더 커지고,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AFP=연합뉴스

시베리아 지역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거대한 구덩이 '크레이터'. 지구 온난화가 이어지면 크레이터가 더 커지고,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AFP=연합뉴스

대형 크레이터, 지반 침하도 동토 위기 징후 

시베리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한 구덩이(크레이터)도 영구동토의 위기를 잘 보여준다. 크레이터의 정확한 생성 원인을 두고 전문가의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동토가 녹으면서 지표면이 약해지고, 기체가 여기 유입되면서 지반 자체가 무너져내렸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올해 나온 폴란드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기온이 오를수록 크레이터의 크기는 점점 확장된다. 이상 기후가 이어진다면 크레이터가 더 많이, 더 크게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뜨거운 날씨는 지반 침하로도 이어진다. 5월 29일 시베리아 노릴스크에선 지반이 내려앉으면서 열병합발전소 연료탱크가 파손됐다. 이 때문에 경유 2만여t(톤)이 인근 강으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동토층이 녹아내리면서 또 다른 환경 오염을 부추긴 것이다. 올해 캐나다 연구팀이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을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동시베리아를 흐르는 레나 강변에서 아주 빠른 지반 침식이 드러났다. 연간 최대 22m까지 동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러시아 사하공화국 야쿠츠크에 위치한 동토연구소 지하의 영구동토 시설. 사방이 얼음으로 가득차 있는 이 곳의 온도는 영하 8도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 sreda studio

러시아 사하공화국 야쿠츠크에 위치한 동토연구소 지하의 영구동토 시설. 사방이 얼음으로 가득차 있는 이 곳의 온도는 영하 8도를 가리키고 있다. 사진 sreda studio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러시아 정부도 뒤늦게 기후 재앙에 대응하고 나섰다. 사하공화국이 2018년 영구 동토층 보호와 합리적 사용을 위한 법을 통과시킨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시베리아 주민들은 불안하다. 삶의 터전이 하루하루 바뀌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다.
 
야쿠츠크에 사는 '아이 엄마' 이리나 부가에바(29)는 미래 세대부터 걱정했다. 그리고 부가에바의 우려는 한국·중국 등 주변 국가에서도 곧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후 변화가 너무 걱정될 수밖에 없죠. 어린 딸이 있는데, 이 아이는 제가 살던 그때와 같은 환경에서 살 수 없을 겁니다. 결국 풀, 나무, 음식, 물, 이 모든 게 없는 헐벗은 행성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정종훈 기자, 김지혜 리서처·이수민 인턴 sakehoon@joongang.co.kr
※불타고 있는 시베리아 숲을 하늘과 땅에서 찍은 실감형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스마트폰으로 QR코드에 접속하면 영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상이 보이지 않으면 주소창에 (https://youtu.be/LCzj-GBL6Qk)를 입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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