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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정규직 전환 요구말라" 비밀합의서 요구한 조폐공사

조용만 한국조폐공사 사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오종택 기자

조용만 한국조폐공사 사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오종택 기자

 
한국조폐공사가 최근 비정규직들과 “정규직 전환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비밀 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폐공사는 이미 비정규직을 상대로 한 ‘편법 고용·꼼수 계약’ 논란을 일으켰고,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비정규직에게 합의서 서명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조폐공사의 비밀합의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중인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더 큰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국회에 알리지 말라”는 비밀 합의서

지난 15일 한국조폐공사가 여권발급원들에게 제시한 합의서. [독자 제공]

지난 15일 한국조폐공사가 여권발급원들에게 제시한 합의서. [독자 제공]

 
조폐공사 ID본부에서 여권을 제작하고 검수하는 여권발급원 40여명은 지난 15일 공사 측으로부터 ‘합의서’를 건네받았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합의서는 “코로나 사태로 일감이 대폭 줄어드는 가운데 일정한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면서 고용계약 내용을 분명히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는 내용과 함께 개인에게 지급될 일시금 액수가 명시돼 됐다. 출근 일수에 따라 일당을 받아온 여권발급원들은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업무량이 줄어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합의서에는 일시금 수령을 위해 지켜야 할 조건들도 함께 제시됐다. 합의서에는 “금액을 지급함으로써 무기계약직 및 정규직 전환 요구 등의 청구를 하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또 “본 합의서 내용을 정부·국회·언론 등 누구에게도 제공하지 않는다” “본 합의서 체결 후 민·형사 등 일체의 법적 분쟁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공사 측 합의 체결 당사자는 조용만 한국조폐공사 사장으로 돼 있다.
 
합의서를 받은 여권발급원 일부는 반발하고 있다. 여권발급원 A씨는 “돈을 받는 대신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말라는 뜻 아니냐”며 “불쾌한 생각이 들어 서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2일까지 여권발급원 중 절반 정도가 합의서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태영 노무사(노무법인 에이치)는 “합의서 내용은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며 “애초에 무효인 합의서이지만 이를 통해 기간제법을 회피하고 근로자들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용직 vs 기간제’ 논란 지속

한국조폐공사 ID본부 여권발급부에서 9년간 일해온 송모씨의 국민연금 가입기록. 공사 측은 근로기간 2년을 넘기기 전에 계약을 해지하며 네 차례 재고용을 반복해왔다. [독자 제공]

한국조폐공사 ID본부 여권발급부에서 9년간 일해온 송모씨의 국민연금 가입기록. 공사 측은 근로기간 2년을 넘기기 전에 계약을 해지하며 네 차례 재고용을 반복해왔다. [독자 제공]

 
조폐공사 여권발급원은 현재 고용 형태와 법적 지위와 관련, ‘일용직 근로자’와 ‘기간제 근로자’ 여부를 둘러싸고 회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조폐공사 측은 “매일 여권발급량이 달라지는 업무 특성에 따라 이들을 일용직으로 고용해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권발급원들은 본인들이 체결한 근로계약서와 고용 형태가 조폐공사 측의 입장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계약서상 근로기간의 명시가 없었고 맡아온 업무 역시 상시지속업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조폐공사는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피하기 위해 편법 쪼개기 계약을 해왔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근로기간 2년을 넘기기 전에 사직서를 받고 몇 개월 뒤 다시 고용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에 처음 조폐공사와 계약을 한 여권발급원 B씨는 9년간 일하며 재고용만 4번을 반복했다. 2018년에 조폐공사와 네 번째 계약을 한 B씨는 지난달 사측의 사직서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자 지난 16일 해고를 통보 받았다.
 
박현수 노무사(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는 “근로관계가 일정기간 동안 공백 없이 계속 유지돼 왔다면 사실상 기간제 근로자 또는 상용 근로자로서 지위가 인정될 수 있다”며 “공사가 2년을 주기로 동일한 근로자에 대해 재고용을 반복해왔다면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총리 해명과 엇박자 낸 조폐공사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정세균 국무총리를 상대로 질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정세균 국무총리를 상대로 질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해당 문제를 지적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질의에 대해 “그렇게 편법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면 대통령의 정책을 잘 따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정규직 전환 검토 요구에 대해서도 정 총리는 “한번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틀 전에 이미 조폐공사 측은 여권발급원을 상대로 “정규직 전환 요구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합의서를 요구한 셈이다.
 
조폐공사는 해당 논란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사 측은 “대형로펌에 문의한 결과 이미 채용공고문에 일용직이 명시돼 있었고 여권 발급 업무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돼 일용 근로자로 봐도 문제가 없다는 해석을 받았다”며 “다만 업무 성격상 기간제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어 그동안 제외됐던 각종 수당들을 지급하고자 합의서를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도 조폐공사 측은 “차세대 전자여권 도입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들은 한시적 직무를 수행하고 있어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애초에 전환 대상이 아니기때문에 보상을 거부하고 전환을 요구한다면 사법적인 판단을 받겠다”고 말했다. 합의서 내용에 관해서도 공사 측은 “통상적인 계약서 내용에 따라 작성된 것이며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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