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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파 권력] 좌표찍듯 "1·1·8" 외친 그들, 집권여당 권력도 바꿨다

“친일 매국노의 매부가 염치도 없이 민주당 대표가 되겠답니다.후보 사퇴시켜야 합니다.”

이, 온라인 당원제로 지지층 결집
추, 권리당원 투표 50% 반영 결정

전당대회 장악해 당 주류로 부상
여론몰이 넘어 당 선거 결과 좌우

 
김부겸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에서 당권 도전을 선언한 지난 7월 9일.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에는 김 전 의원의 처남이 『반일종족주의』를 쓴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라서 대표로서 자격이 없다는 저격성 글이 삽시간에 퍼졌다. 이날부터 사흘간 트위터 올라온 유사한 글이 4987건에 달했다. ‘문파(文派)’ 권리당원들의 ‘김부겸 비토’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김 전 의원 측에선 “페이스북 계정 Ed**** ***가 여론몰이의 주범”이라고 지목했다. 이 계정에 오른 “김부겸 류의 정치인이 당 대표를 하고 대권 운운하는 게 불편하다”는 등 두 개의 글은 총 2000여 회의 ‘좋아요’와 400여 회의 ‘공유’를 기록했다.
 
결국 해명을 위해 김 전 의원의 아내인 이유미씨까지 지난달 3일 입장문을 냈다. “부디 정치인 김부겸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고 널리 이해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미 “친일파의 친척이라면 그 역시 친일파”(트위터 계정명 : ica*******)라는 프레임이 권리당원 사이에 널리 퍼진 뒤였다. 전당대회에서 2위로 낙선한 김 전 의원은 권리당원 투표에서 14.8%의 득표율로 3위에 그쳤다.
 
경선 막판 문파들 사이에선 ‘118 운동’이 확산됐다. 당 대표로는 기호 1번 이낙연 후보를, 최고위원으로는 기호 1번 신동근 후보와 8번 김종민 후보를 찍자는 캠페인은 그대로 실제 결과로 이어졌다. 당초 신동근 후보는 인지도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문파의 적극 지원으로 당선됐다. 전당대회를 준비했던 한 인사는 “당내 경선은 문파가 주축인 온라인 권리당원이 지배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해찬의 ‘10년 계획’

2011년 '야권 대통합'을 내걸고 발족한 혁신과통합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계기로 '개방형 온라인 정당'을 본격화했다. 사진은 2011년 9월 6일 세종문회화관에서 열린 혁통 발족식.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오른쪽 셋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유시민(왼쪽 첫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중앙포토]

2011년 '야권 대통합'을 내걸고 발족한 혁신과통합은 민주당과의 통합을 계기로 '개방형 온라인 정당'을 본격화했다. 사진은 2011년 9월 6일 세종문회화관에서 열린 혁통 발족식.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오른쪽 셋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유시민(왼쪽 첫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중앙포토]



“이해찬 전 대표가 10년을 두고 계획한 ‘큰 그림’이다.”
 
온라인 권리당원이 당을 지배하는 구조에 대해 과거 한 대선주자 캠프에서 SNS 홍보 책임을 맡았던 민주당 인사가 내린 평가다. 2011년 이해찬 대표가 상임대표이던 ‘혁신과 통합(혁통)’은 개방형 온라인 당원제를 기획했다. 혁통은 노무현 정부 이후 한 때 스스로를 폐족으로 칭했던 친노 그룹이 정치 재개를 위해 만든 단체다. 2011년 11월 7일 이 대표는 당시 민주당(손학규 대표)에 통합을 위한 로드맵으로 ▶시민 주도 정당 ▶개방형 정당 ▶SNS기반 정당 등 3가지를 핵심 테마로 제시했다. 모두가 손쉽게 정당에 가입하고 이들이 SNS 등을 통해 당의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명분이었다. 
 
당시 실무자였던 한 의원은 “이미 당 조직이 손학규 대표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친노 그룹이 당권을 탈환하기 위한 해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덤을 당 안으로 끌어들이는 길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지지층은 노사모라는 전국 오프라인 조직을 갖췄지만 온라인 상의 결집력도 대단했다. ‘온라인 노빠’와 당시 형성 단계였던 문재인 혁통 상임대표의 온라인 지지 세력을 끌어들이면 손쉽게 당권을 잡을 거란 계산은 적중했다. 통합 직후 열린 민주통합당의 2012년 1·15 전당대회에서 한명숙 대표, 같은 해 6·9 전당대회에서 이해찬 대표가 연이어 당권을 잡은 것이다.   
 

‘모바일 투표’ 업고 대선 직행한 문재인

201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결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1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결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12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노빠·문파’는 모바일 투표에 적극 참여했다. 손학규 후보는 대의원 현장투표에서 1379표로 문 후보(1297표)를 앞섰지만 모바일 투표에서 참패(손학규 12만7856표, 문재인 33만6717표)했다. 당시 손학규 캠프의 실무자는 “노빠와 문파들이 쓰나미처럼 모바일 투표에 몰려들었다”고 회고했다.
 
2015년 ‘온라인 당원제’ 도입은 문파가 민주당의 확실한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방문 또는 우편·팩스로만 낼 수 있었던 입당 원서를 온라인으로 받기 시작한 게 이 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6월 추미애 대표가 2018년 지방선거 공천 경선에 권리당원 투표를 50% 반영하겠다고 결정하고 ‘100만 권리당원 운동’을 펴면서 당원 모집 경쟁이 불붙었다. 2017년 6월 24만 명이던 민주당 권리당원은 6개월만에 150만 명을 넘어섰다.
 
당시 행정 실무를 맡았던 당직자는 “‘2017년 9월 이전 입당자’로 경선 투표 자격을 정해 7~8월 두 달 동안 하루에 3만여 명씩 꾸준히 입당원서가 접수됐다”며 “문 대통령 지지율이 70%에 육박하던 때라 신규 당원 120만여 명 중 30~40%는 문파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공생하는 문파와 민주당

 
2018년 이해찬 대표가 두번 째 당권을 잡은 이후 문파들은 선거가 아닌 일상적 정치 공간에서도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얼굴없는 권력은 당 안팎의 이견과 비판을 제거하는 데 남용됐다. 20대 국회 때 당내 쓴소리 의원 모임이었던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 멤버들이 문파의 집중 공격대상이 됐다. 지도부와 다른 의견을 내면 며칠간 전화·문자 폭탄에 의원실 업무가 마비되고 SNS에 비난글이 도배되는 일이 반복됐다.
 
이해찬 체제에서 당직을 맡았던 한 의원은 “‘조금박해’뿐 아니라 누구라도 당의 방침에 이견이나 유보적 입장을 보이면 곧바로 타겟이 되곤 했다”며 “‘이건 아니다’라고 나서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털어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민주당이 이견을 해소하는 방식은 메시지를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메신저를 제거하는 것”이라며 이를 “문(문재인 대통령)주적 소통방식”이라고 꼬집은 적이 있다. 지난 2월 임미리 고려대 교수가 ‘민주당만 빼고’라는 컬럼으로 문파들의 표적이 됐을 때였다. 민주당은 당시 임 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참여 관련 여론조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참여 관련 여론조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민주당 지도부는 문파 여론을 적절히 활용하기도 했다. 야권의 비례위성정당을 “위장정당”(이해찬 대표)이라고 비난하던 민주당이 뒤늦게 자신들도 비례위성정당을 만들기 위해 명분쌓기용으로 실시한 지난 3월의 전당원 투표가 대표적인 사례다. 각종 여론조사에선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이나 연합정당 참여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지만(지난 3월11일 리얼미터 조사, 찬성 40.9%, 반대 48.5%), 전당원 투표의 결과는 압도적 찬성(찬성 74.1%, 반대 25.9%)이었다. 민주당의 한 핵심 의원은 “이미 당원게시판 등의 분위기를 본 지도부는 문파들이 집단적으로 위성정당 창당에 찬성한다고 확신했다”며 “절대 다수의 당원이 원한다는 것만큼 좋은 명분이 어디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국민과 괴리된 문파, 거리둬야”

좌우를 막론하고 열성지지층의 여론은 중도층 여론에 비해 과격하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은 문파와 일반 국민 여론과의 괴리가 심화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당원이 당 운영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문파를 중심으로 한 SNS 여론과 실제 여론이 괴리되는 ‘디지털 디바이드’가 나타나는 것이 문제”라며 “특히 문파의 경우 워낙 구심력이 강한 탓에 외부의 견제나 비판이 이뤄지지 않아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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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활동성이 큰 일부 문파의 의견이 여과 없이 당에 흡수돼 당의 행동반경과 의사결정 구조를 제약하는 상황”이라며 “문파 코드에 맞추자니 중도층과 잠재적 지지층을 밀어내는 꼴이고, 무시하자니 충성도 높은 당원 다수와 등지는 부담을 안아야 하는 딜레마 상황”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문파와 거리를 두고 숙의로 이끄는 정치적 리더십이 아쉽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노빠'가 바라본 문빠, 그들은 왜?
2003년 노사모 회원들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모습. 노사모는 전국 지역조직을 바탕으로 각종 행사를 직접 기획하는 등 오프라인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중앙포토]

2003년 노사모 회원들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모습. 노사모는 전국 지역조직을 바탕으로 각종 행사를 직접 기획하는 등 오프라인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중앙포토]

 
정치인 온라인 팬덤의 시초격인 노사모는 문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중앙일보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지역에서 활동한 노사모 회원을 만나 문파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들은 ‘노빠’와 다른 문파의 특징을 열정과 과격함, 배타성 등으로 요약했다.
 
◇‘단일대오’와 ‘각개전투’

문재인 대통령 공식 팬클럽인 ‘문팬’ 운영진 출신인 김기문(56)씨는 2000년대 초반까지 노사모 핵심 회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2017년 대선 캠페인에 집중하기 위해 운영하던 가게마저 자진 폐업할 정도의 원조 문파다. 노사모와 문파의 차이를 묻자 그는 “노사모는 단일대오로 움직이지만 문파는 파편화된 상태로 각개전투를 벌이는 식으로 활동한다”고 답했다. 노사모의 온라인 활동은 각 시·도별 지역조직을 통한 대면 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문파는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를 무대로 개별적으로 움직인다. 어떤 이슈나 캠페인이 문파를 관통하는 대세가 될지 예측하기 여려운 것도 그래서다.
 
김씨는 “문파도 시간이 흐르면서 활동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며 “2017년 대선 직전까지는 여러 온라인 카페를 통합한 ‘문팬’이 구심점이었지만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킨다는 공통점만 남았을 뿐 문파라는 집단을 정의하기도 어려울 만큼 분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노사모는 내분이 있어도 외부로 표출되는 메시지와 활동의 통일성은 유지됐지만 문파는 파편화된 개인들이다 보니 발언의 내용과 강도도 천차만별”이라며 “과격한 언동은 문 대통령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사모’와 ‘문파’는 어떻게 다른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노사모’와 ‘문파’는 어떻게 다른가.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콘택트와 언택트

노사모 경기 북동부 지역의 연락 총괄 간부였던 김덕문(53)씨의 진단도 비슷했다. 김씨는 “노사모는 기본적으로 콘택트(대면)을 중시한 반면 문파는 모든 활동이 언택트(비대면)로 이뤄지는 구조”라며 “구조의 차이는 결속력과 목표의 차이로도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또 “SNS 활동에 의존하는 문파 중엔 ‘입진보’가 많다”며 “오프라인 공간에서 형성된 친밀함이 없어 쓴소리도 성찰도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극단적 의견을 걸러내는 내부 여과장치가 없다는 얘기다.
 
김씨는 과거 노사모 활동을 80년대 학생 운동에 비유했다. “노사모의 지역조직은 학생 운동 시절 각 대학 총학생회와 같은 실무를 담당했고, 노사모 지도부는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과 같은 기획·운영 기능을 맡았다”는 설명이다. 이어 “실제 80년대 학생운동을 할 때 가깝게 지낸 이들이 노사모에서 다시 만나 함께 한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조국 사태' 당시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조국수호·검찰개혁을 위한 서초달빛집회' 현장. [뉴스1]

지난 1월 '조국 사태' 당시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조국수호·검찰개혁을 위한 서초달빛집회' 현장. [뉴스1]

 
◇“문재인만 보는 경주마”

노사모 초창기 멤버로 부산 지역에서 활동했던 박영천(52)씨는 “문파를 보면 양 옆의 시야를 모두 가린 채 문재인 대통령 하나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17년 대선 이후엔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라는 목표를 상실한 문파라는 경주마들은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날뛰게 됐다”며 “조직적 실체가 없어 통제 범위를 벗어난 행동을 바로잡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박씨는 또 “문 대통령 당선으로 문파도 권력이 됐지만 이를 통제하려는 힘도 견인하려는 힘도 작용하지 않았다”며 “현역 의원은 물론 공직자·교수 등을 향해서까지 총구를 겨누는 극단적인 상황은 책임 없는 권력이 낳은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사모는 첫째 왜곡된 지역감정의 극복, 둘째 참된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회칙이 있었다”며 “문파도 가이드라인과 방향을 형성해 가야 정치 발전에 기여한 세력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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