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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도세자 누이처럼? 260년 만에 되살아난 공주의 화장품

화협옹주묘에서 출토된 화장 유물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화협옹주묘에서 출토된 화장 유물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겨우 열아홉에 홍역으로 숨진 딸 화협옹주(1733∼1752)를 묻으며 영조는 “한 줄 쓸 때마다 열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라고 글을 남겼다. 저승길에도 딸이 고운 자태이길 바란 걸까. 생전 사용한 빗, 거울, 눈썹 먹 등 여러 화장 도구와 화장품 및 화장품 그릇까지 통째 묻었다. 그렇게 잠들어있던 공주의 화장품이 260여년 만에 민·관·학 협력 속에 현대적 K뷰티로 재탄생했다.
 

4년 전 화협옹주 묘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화장품 세트’ 재현
파운데이션 등 시제품 3종 공개
연내 ‘프린세스 화협’으로 출시

22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화협옹주 출토유물 연구를 기반으로 제작한 화장품 3종(파운데이션, 보습용 핸드크림, 입술보호제)의 시제품이 공개됐다.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향을 기반으로 한 디퓨저도 선보였다. 모두 화협옹주묘에서 출토된 청화백자에서 모티브를 얻은 특수 용기에 담겨 나왔다. 이를 공동 개발한 주체는 국립고궁박물관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화장품제조사 코스맥스. 이들 화장품은 연내 ‘프린세스 화협’(Princess Hwahyup)이란 상품명으로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화협옹주묘에서 출토된 유물들(위 사진)에 현대 기술력을 접목해 ‘프린세스 화협’으로 출시될 화장품 시제품.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화협옹주묘에서 출토된 유물들(위 사진)에 현대 기술력을 접목해 ‘프린세스 화협’으로 출시될 화장품 시제품.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화협옹주 화장품이 발견된 건 지난 2016년 경기 남양주시 삼패동 화협옹주묘 발굴조사 과정에서다. 앞서 화장품 및 화장용기가 일부 출토된 적은 있어도 세트 규모로 나온 건 처음이었다. 수백년이 지난지라 원형은 간데없고 갈색 고체 내용물과 딱딱히 굳은 백색 가루, 손쉽게 부서지는 적색 가루 등이었다. 특히 한 용기에선 몸체가 부서진 황개미 수천 마리가 나와 미용품 혹은 피부 치료 물질로 쓰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유물 53건 93점을 보존처리·분석하는 과정에서 8건의 화장품 내용물도 연구해 지난해 국제학술대회와 특별전시를 열었다. 이때 이들 성분을 제민요술 등 고문헌의 화장품 제조법과 대조해 만든 재현품도 선보였다. 예컨대 백색가루는 “흰쌀가루와 호분(연분)을 3:1로 섞은 분말과 찐 낙규자를 생포에 싸서 짠 즙을 섞어 햇볕에 말린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일종의 파운데이션으로 추정됐다.
 
이번에 선보인 제품은 이들 재현품에서 착안해 전통 재료를 일부 취하되 현대 기술력으로 탈바꿈한 화장품들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 미백 용품들은 납·수은 성분을 통해 창백미를 얻었고 화협옹주 출토 유물에서도 어김없이 이런 유해성분이 추출됐다. 때문에 이를 그대로 쓸 순 없다. 발림성 등 밀착력도 떨어지고 부패가 쉽다는 문제도 있었다. 연구개발의 총괄책임자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정용재 교수는 “출토 화장품에 함유된 재료를 포함하되, 중금속 등 유해 성분은 제외하고 성능 향상을 위해 최신 안료와 물질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준배 코스맥스 랩장도 “용기 문양부터 소재, 제형 기술까지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차별화된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화협옹주를 명랑한 10대 소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캐릭터도 선보였다.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회고록 『한중록』에서 그를 가리켜 ‘맑고 침착하고 효성이 깊었다’고 한 기록을 토대로 했다고 한다. 화협옹주는 사도세자와 마찬가지로 영빈 이씨 소생으로 두 살 많은 누나였다. 1743년(영조 19)에 화협옹주(和協翁主)로 봉해지고 같은 해에 영의정을 지낸 신만의 아들 신광수와 혼인했다. 한중록에는 영조가 사도세자와 더불어 화협옹주를 박대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여러 정사(正史)에 따르면 옹주들 가운데 면세결(免稅結, 세금을 면제하던 논밭으로 국가에서 왕족들에게 지급하던 생활비)을 가장 많이 받는 등 총애받은 딸로 전해진다.
 
김동영 고궁박물관장은 “과거 유물에 기반해 화장품을 현대화한 첫 번째 사례로서 향후 다양한 문화유산 활용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날 3개 기관은 2023년까지 ▶다양한 전통 화장품 개발 ▶전통 화장문화 관련 프로그램 개발 ▶화장품과 콘텐트의 활용·홍보 등 협력을 하기로 업무협약을 맺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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