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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대만 사업가와 인민대회장…응씨배의 추억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잉창치(應昌期, 1914~1997)는 중국 저장성 닝보(寧波)에서 태어난 대만 사업가다. 장제스(蔣介石)와 동향이자 재무담당으로 장제스와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배해 대만으로 탈출할 때 함께 갔다.
 

덩샤오핑 시절 중국에서 첫 대회
올해 신진서 등 한·중·일 4강

내가 잉씨를 처음 본 것은 1982년 가을이었다. 한국-대만 교류전에 선수로 참가하여 타이베이에 갔던 것인데 거기서 대만 팀 단장 잉씨를 만났다. 정원이 아름다운 저택에서 노부부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손님을 맞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몇 년 후 잉씨는 돌연 거액의 상금을 내건 세계대회 개최를 선언했다. 이게 응씨배였다. 자존심 상한 일본이 후지쓰배를 급조하는 바람에 첫 세계대회의 영예는 빼앗겼지만 새 변화의 주인공은 잉씨였다. 대회는 베이징의 인민대회장에서 열렸다. 전국인민대회가 열리는 바로 그곳에서 대만 재벌이 주최하는 바둑대회가 열렸다. 중국과 대만이 멀리 틀어진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덩샤오핑(鄧小平)이 이끄는 중국은 달랐다.
 
조훈현과 네웨이핑의 결승 5번기는 항저우에서 1대1을 이룬 뒤 3국이 잉씨의 고향인 닝보에서 열렸다. 닝보는 청나라를 몰락시킨 아편전쟁의 무대. 덩샤오핑은 그곳에 중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자영상점 1호를 세웠다. 중국은 막 달아오르고 있었고 그런 분위기 탓인지 닝보 기차역은 몰려든 환영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온갖 소리로 귀가 먹먹했다. 바둑대회를 들고 40년 만에 고향을 찾아온 잉씨는 행복해 보였다.
 
닝보에서 진짜 놀란 것이 있다. 잉씨가 안내한 곳에 장제스의 사당이 있었다. 본토 수복을 유훈으로 남긴 적군의 대장인데 그를 모시는 사당이 도시 가운데 아주 근사하게 자리 잡은 채 관광객을 맞고 있었다. 장제스의 뒤를 이어 대만 총통이 된 장징궈(蔣經國)가 젊은 시절 군대의 파일럿으로 활동한 모습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분단국가에서 오래 살아온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잉씨는 1997년 사망했다. 죽기 전에 잉창치바둑기금회를 설립하여 바둑대회들이 계속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지금도 응씨배 외에 세계청소년선수권 등 9개 대회가 매년 치러지고 있는데 6개가 중국에서 열린다.
 
잉씨는 바둑대회 개최 이유로 ‘잉씨룰’ 보급을 전면에 내세웠다. 잉씨는 바둑 룰의 많은 허점을 고치고자 30년을 연구한 끝에 ‘전만법’이라는 새 룰을 만들었다. 쓰기에 불편한 탓에 대중 보급은 부진하지만 허점이 없는 룰임엔 틀림없다.
 
바둑기금은 지난해 아들 잉밍하오(應明浩) 회장이 작고하며 딸 잉러우어(應柔儿)가 맡고 있다. 잉씨 집안에서의 바둑 사랑은 점점 엷어져 가고 중국과 대만 사이의 파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응씨배를 포함한 수많은 바둑대회는 계속될 수 있을까.
 
다행히 코로나 사태로 연기되었던 응씨배가 지난 8일 온라인대국으로 개막했다. 4강의 얼굴은 한국의 신진서 대 중국의 자오천위, 중국의 셰커 대 일본의 이치리키 료의 대결이다. 신진서와 셰커 20세, 자오천위 21세, 이치리키 료 23세. 모처럼 한·중·일이 어울렸고 대만은 이번에도 없다.
 
1993년의 어느 날 잉씨는 2회 우승자 서봉수 9단과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 이렇게 물었다. “대만이 바둑 강국이 될 방법은 없을까?”
 
그게 마지막이었다. 역사의 풍운에 한쪽 발을 담근 채 바둑에 돈과 열정을 쏟아부었던 거물 잉창치는 투병 끝에 4년 후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를 향한 박수 소리는 희미해졌다. 그가 바둑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알 수 없지만 한국바둑은 잉씨를 고맙게 생각한다. 변방의 한국바둑이 응씨배를 통해 일어섰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보통 인연이 아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닝보의 장제스 사당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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