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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떠난 뒤 하지 말 것 생각해 두게”

붉은색 갑골문체로 쓴 배 주(舟)자와 동파문자체로 쓴 수레 거(車)자로 완성한 작품 ‘주거(舟車)’. 박원규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며 20~30대 청년들을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붉은색 갑골문체로 쓴 배 주(舟)자와 동파문자체로 쓴 수레 거(車)자로 완성한 작품 ‘주거(舟車)’. 박원규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며 20~30대 청년들을 염두에 두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하석 박원규(73)의 개인전 ‘하하옹치언(何何翁卮言)’을 보러 간 자리에 남자 노인 ‘옹(翁)’은 없었다. 청바지 위에 초록색 티셔츠, 블랙 라이더 가죽 재킷에 운동화를 신은 70대 청년. 일본의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서울 혜화동 JCC아트센터(관장 안순모) 1~4층을 작품 36점으로 채운 서예가가 거기 서 있었다.
 

서예가 박원규 ‘하하옹치언’전
갑골문체·광개토대왕비체 등
글씨로 20~50대에 메시지 전달
“70에도 별명은 새나라의 어린이”

그의 붓은 갑골문체(甲骨文體), 동파문자체(東巴文字體), 금문체(金文體), 한간체, 광개토대왕비체(廣開土大王碑體)를 넘나든다. 그림 같기도, 글씨 같기도 한 그의 작품들은 외려 현대 미술에 더 가깝다. 체(體)보다 중요한 건 작품 내용. 사서오경을 섭렵한 그는 “50년 이상 (한문) 책을 읽으며 내가 ‘캐낸’ 글로만 글씨를 썼다. 20·30대 청년들과 퇴직을 앞둔 중장년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여기에 담았다”고 말했다.
 
전시작 중 가로 길이 12m, 세로 2m40㎝의 대작 ‘산거지(山居志·산에 사는 뜻)’ 는 이렇게 시작한다.
 
“내 집은 깊은 산속에 있네/봄여름이 바뀔 적마다 섬돌에는 푸른 이끼, 길에는 떨어진 꽃/그러나 날 찾는 이 없네.” (세상의 명성과 잇속을 낚아채려 급히 달리지 말고) 스스로를 잘 기르라는 조언이다. 중장년들에게 ‘100세 시대, 이모작의 삶을 준비하라’는 뜻을 담았다.
 
하석 박원규 선생이 광개토대왕비체로 쓴 '낙천안명'. [사진 JCC아트센터]

하석 박원규 선생이 광개토대왕비체로 쓴 '낙천안명'. [사진 JCC아트센터]

광개토대왕비체로 쓴 '관기소불위'.[JCC아트센터]

광개토대왕비체로 쓴 '관기소불위'.[JCC아트센터]

퇴직을 앞둔 이들을 위한 글도 있다. 광개토대왕비체로 쓴 ‘관기소불위(觀其所不爲)’다. 『여씨춘추·논인』에서 발췌한 글로 ‘그 사람이 하지 않는 것을 관찰한다’는 뜻. 그는 “사람의 참모습을 보려면 빈궁해졌을 때 그가 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아야 한다”며 “중장년들은 현직을 떠난 뒤 하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20·30대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담았다. 붉은색 갑골문체로 배 주(舟)자와 오색 상형문자인 동파문자체로 수레 거(車)를 써서 수레와 배의 형태가 그대로 보이는 ‘주거(舟車)’다. 이 작품에 그는 중국 5대10국 시대의 재상 풍도(馮道)가 쓴 시 ‘우작’을 적었다. “위험할 때 갈팡질팡 하지마라/앞길에도 종종 기회가 있으리니/(…)/배와 수레 어디서든 나루에 안 닿을까”라는 내용이다. 그는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한탄만 하지 말고 세상에 좋은 일을 하라. 언젠가는 세상이 너를 써줄 날이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전시 제목 ‘하하옹치언’의 유래는 뭘까. “제 호 ‘하석’은 어찌 ‘하(何)’ 자에 돌 ‘석(石)’ 자를 씁니다. 옛날에 그 어찌 하 자 두 자를 쓴,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하하 웃기만 해서 ‘하하 존사(尊師)’로 불린 분이 있었는데, 저도 누가 고깝게 한다고 화낼 나이가 아니란 생각에 저를 ‘하하옹’이라고 불렀죠. 치언은 ‘술 한잔하고 무심히 늘어놓는 말’이니, 이번 전시는 ‘하하옹이 늘어놓는 횡설수설’인 셈입니다(웃음).”
 
전북 김제 출신으로, 고교 시절 글씨와 전각을 배운 그는 대학 2학년(전북대 법대)때 부터 한학의 대가인 긍둔 송창 선생을 비롯, 월당 홍진표, 강암 송성용, 독옹 이대목(대만), 지산 장재한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바리스타 과정까지 마친 커피 전문가이자, 맛있는 맥주 얘기라면 밤새울 정도의 맥주 전문가다. 1980년대 중반 전국 국악 고수(鼓手)대회 결선 3위까지 올랐고, 골프와 수영, 스쿼시 실력은 프로급. “‘추사 선생을 극복하지 않고 나는 역사에 남을 수 없다’는 각오로 매일 나를 단련해왔다”는 그다. “내 별명이 ‘새나라의 어린이’입니다. 매일 새벽 3시30분~4시에 일어나 운동해요.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려면 체력관리는 필수죠.” 전시는 12월 20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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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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