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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없이 외친 "난 반대한다"...세상 바꾼 그녀의 마지막 판결

 

“성별을 이유로 차별하는 연방법률이 170여개나 됩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1933~2020)

2018년 개봉했던 영화 ‘성적 차이를 이유로(On the basis of sex)’의 나오는 대사입니다. 미국 국민이 역대 대통령보다 더 사랑하고 존경했던 여성, 지난 18일 87세의 일기로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대법관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평생을 양성평등과 소수자 인권을 대변했습니다. 헌법과 법률, 남성 중심의 높은 장벽에 부딪힐 때마다 "난 반대한다(I dissent)"를 외쳤습니다. 그녀에 대한 추모가 워싱턴 DC만이 아니라 전국으로 퍼지며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뉴욕 브루클린의 가난한 러시아 유대인 이민가정 출신인 긴즈버그는 코넬대를 졸업한 뒤 동창생과 결혼합니다. 첫 딸의 엄마가 된 뒤 1956년 늦깎이로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합니다. 500명의 남자 동급생 가운데 단 아홉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하버드 로스쿨 학장이 신입생 환영 만찬장에서 여학생들에 "왜 남학생에게 갈 수 있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지"라고 물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긴즈버그는 "남편이 로스쿨 2학년인데 남편이 하는 일을 이해해 더 인내심 있고 이해심 많은 아내가 되기 위해 입학했다"라고 대답해야만 했습니다.
 
암에 걸린 남편의 병간호와 육아, 학업까지 병행해야 했던 긴즈버그는 결국 보수적인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지 못하고 컬럼비아대 로스쿨로 옮겨 59년 수석졸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이란 이유로 대법관 로클럭에 지원했다가 거부당했고 어떤 로펌도 변호사로 채용하지 않습니다. 결국 선택지는 학교밖에 없었죠.
 
럿거스대를 거쳐 모교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로 지내던 그녀는 1972년부터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서 여성차별 철폐를 위해 공익소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74년까지 그녀가 참여한 소송만 300건이 넘었습니다.
 
1971년 숨진 자녀의 자산관리권은 무조건 남자에게 준다는 아이다호 주법은 위헌(리드 대 리드)이란 대법원 판결을 이끌었고, 1972년에는 가사와 돌봄은 여성의 일이라는 당시 세법 조항 때문에 노모를 돌보면서 세금 공제를 혜택을 받지 못한 독신 남성을 대변해 승리했습니다. 1975년 과부와 달리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던 홀아비를 대변했습니다.
 
성별에 따른 차별이 오직 여성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된 뒤로도 96년 여생도를 받지 않던 버지니아 군사학교의 입학정책에 위헌 결정을 내렸고 2015년에는 성 소수자 결혼을 합법화하는 기념비적 판결을 이끌었습니다.
 
숨지기 두 달 전인 지난 6월 고용주가 성 소수자임을 이유로 해고하는 것을 금지한 게 그녀의 마지막 판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대법원에서조차 어떤 대법관보다 더 많은 소수 반대의견을 써야 했습니다. 

 
2015년 8월 한국을 방한한 그녀를 단독 인터뷰했을 때 물었습니다. 왜 채택되지 않는데도 그렇게 많은 반대의견을 썼느냐고.
 
"연방법에 대한 소수 의견은 의회가 법을 바꾸라는 것이고, 헌법 해석에 관한 소수 의견은 미래 법원에 대한 제 바람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일생을 통해 보여줬습니다. '진보, 소수자의 우상'이라는 그의 죽음에 국민적 추모의 물결이 이는 이유일 겁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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