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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문 대통령, 37번의 말보다 한 번이라도 실행을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은 37번이나 외쳤다. ‘공정, 공정, 공정…’ 19일 청년의 날 기념사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공정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자신했다.
 

내 자식에 춘풍, 남의 자식 추상
그런 정부를 어떻게 믿겠나
취임사에 좋은 말 다 있는데
실제로 벌어진 일은 거꾸로다

그러니 공정이란 말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공정을 강조하는 것도 당연하다. ‘공정한 대통령’이니까.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공정’만 강조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왜 그랬을까.
 
문 대통령이 ‘공정의 화신’이어서?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모자라다는 말이다. 자신이 있으면 넘치지 않는다. 청년들에게 ‘공정’을 가르치려고? 청년들이야말로 ‘공정’에 목말라 있지 않은가. 문 대통령도 “여전히 불공정하다는 청년들의 분노를 듣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무얼 가르친다는 말인가.
 
연설 비서관이 무능해서? 맹물로 엿을 고아서 단맛이 안 난다고 문장 탓을 할 수는 없다. 그럼 불공정에 분노한 청년들 앞에 참회하는 것인가? 참회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게 참회다. 그러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문 대통령은 “기성세대는 오랫동안 특권과 반칙이 만연한 사회에 살았다”며 “기득권은 부와 명예를 대물림”한다고 했다. 자신은 기성세대도 기득권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한다. 오히려 기득권과 싸우는 전사이거나 제3의 구경꾼 시점이다. 공정을 해친 가해자도, 공정을 보장해야 하는 관리자도 아니다. 그러니 반성하거나 사과할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청년들이 문 대통령에게 불공정에 대해 추궁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폭발한 건 ‘아빠 찬스’, ‘엄마 찬스’다. 그런데 못 들은 척 문 대통령은 답을 하지 않았다. ‘조국’의 ‘조’자도, ‘추미애’의 ‘추’자도, ‘김홍걸’의 ‘김’자도 비치지 않았다.
 
물론 부모 찬스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아들 병역 문제로 두번이나 대선에서 실패했다. 최순실 씨의 딸 입학 문제는 박근혜 정부를 몰락시킨 방아쇠였다. 요즘 청년들은 공정 가치에 훨씬 더 민감하다.
 
가장 큰 문제는 공정을 약속한 정부가 ‘불공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스로 기득권이 되었다는 걸 모르고 있다. 진실을 부정하고, 자기들만의 가공된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지자들도 그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에 매몰돼 진실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게 민주화 세력의 큰 약점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 문제만 나오면 “나 때문에 고생했다”며 가슴 아파했다. 이런 ‘마음의 빚’에 연연하다 임기 말 ‘홍삼 트리오’가 모두 감옥에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도 ‘아빠 찬스’ 시비가 이어져 왔다.
 
더욱 절망적인 건 ‘아빠 찬스’ ‘엄마 찬스’가 전·현직 법무부 장관의 문제라는 점이다. 법무부의 영문 명칭은 ‘Ministry of Justice’(정의부)다. 촛불 정부, 공정 대통령 밑에서 정의를 관장하는 장관이 줄줄이 불공정 시비를 벌이고 있으니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공정을 보는 눈도 다르다. 문 대통령은 북한 선수도 남한 선수처럼 올림픽에 함께 참여하는 게 공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청년들은 노력한 선수가 출전하는 게 공정이라고 생각한다. 기회는 같이 주되 노력만큼 더 받는 게 정의라는 것이다.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자리를 정규직으로 바꾸는 건 옳은 방향이지만 정규직이 되기 위해 땀 흘려 준비하는 사람의 기회를 뺏고, 노력을 허사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게 청년들의 생각이다. 문 대통령은 청년들의 공정 시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답은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 담겨 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고 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이고,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발탁하겠다고 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겠다”고 했다. 고시생이 소신과 관계없이 맞는 답만 쓰듯이 좋은 말이 다 모여 있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은 대부분 거꾸로다. 듣고 보다 보면 분열증을 일으킬 것 같다.
 
문 대통령은 비서들에게 ‘春風秋霜’(춘풍추상)이란 글씨를 선물했다. 남의 잘못은 마땅히 용서하고, 자신의 과오는 용서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공정은 여기서 비롯된다. 하지만 돌아가는 건 영 딴판이다. 내 자식에게는 춘풍, ‘이웃집 아저씨’에게는 추상이라면 어떻게 그런 정부를 믿을 수 있겠나.
 
37번이나 ‘공정’을 말해봐야 감동이 없다. 말대로 실행하면 된다. 문 대통령은 “청년의 눈높이에서 ‘공정’이 새롭게 구축되려면 채용, 교육, 병역, 사회, 문화 전반에서 공정이 체감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를 약속할 필요 없다. 한번만 측근의 불공정에 추상같은 칼질을 하면 바로 공정을 체감할 수 있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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