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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일의 이코노믹스] 고용 목표 달성하지 못하면 저금리 기조 안 바꾼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변신인가 꼼수인가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해 8월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과 공동으로 주최한 ‘인플레이션 목표제-전망과 도전’이라는 주제의 콘퍼런스에 초청받아 ‘중앙은행의 책무’를 주제로 발표했다. 뉴질랜드는 1989년 세계 최초로 인플레이션 목표제(Inflation Targeting, IT)를 채택하면서 물가 안정을 중앙은행의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그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IT를 도입했다. 이렇듯 전 세계의 선봉에서 IT를 도입했던 뉴질랜드가 30년이 흘러 중앙은행의 책무를 물가 안정에서 고용의 극대화를 포함하는 이중 책무로 변신을 꾀하면서 IMF와 공동으로 콘퍼런스를 기획했다.
 

인플레이션 유발하려 해도 어려워
물가 안정보다 고용에 집중하기로
2023년까지 유동성 넉넉하게 풀고
고용 충분해질 때까지 저금리 유지

이 콘퍼런스에서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비롯한 여러 중앙은행 관계자들과 나눈 의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노동시장에서 고용(또는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관계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으며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올리는 것이 내리기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이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단일 책무를 벗어던진 이유도 이런 고민에서 비롯됐으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낮은 인플레이션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업 줄어도 물가상승 영향 제한적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올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고민의 깊이를 배가했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 경제위기가 경제적 요인에 의해 일어났다면 코로나19 사태는 역사상 처음으로 생태 환경적 요인에 의해 촉발된 위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쌓였던 중앙은행의 고민에 코로나19 사태가 불을 질렀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나라의 중앙은행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매년 8월 하순 중앙은행 총재들과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잭슨홀에 모여 통화정책에 관한 콘퍼런스를 연다. 올해 모임의 제목은 ‘다가올 10년, 통화정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였다. 제롬 파월 미국 Fed 의장은 Fed가 2012년부터 시행했던 ‘장기 목표 및 통화정책 전략’의 변경 방향을 기조연설에서 상세히 설명했다.
 
Fed의 가장 큰 변신은 고용 부문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전 장기 목표 및 통화정책 전략의 둘째 문단의 시작이 ‘인플레이션과 고용’이라고 되어 있는데, 첫 번째 수정은 이 부분의 순서가 ‘고용과 인플레이션’으로 바뀌었다는 내용이다. Fed가 2012년부터 암묵적으로 따라온 이중 책무의 순위가 바뀐 셈이다.
 
고용시장 분석의 면에서 Fed의 가장 큰 변화는 정책판단의 기준으로서, 이전에는 완전고용으로부터의 ‘편차(deviations)’를 사용했는데 반해 앞으로는 완전고용으로부터의 ‘부족(shortfalls)’을 이용하겠다고 천명한 점이다. 즉, 전에는 과도한 실업뿐만 아니라 고용시장의 과열에도 같은 정도의 주의를 기울인다고 했다. 앞으로는 실업이 심하면 확장적 통화정책을 사용하겠지만, 고용시장이 너무 뜨겁다고 이자율을 올리거나 유동성을 축소하는 정책을 펴지 않겠다고 천명한 셈이다. 이는 최근 중앙은행들의 고민처럼 노동시장에서 실업과 인플레이션의 관계(필립스 곡선)가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학계의 발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플레이션이 고용시장에 반응하는 정도는 점점 줄어왔으며, 특히 실업의 감소가 인플레이션의 상승을 가져오는 방향은 줄어든 정도가 더욱 심했다.
  
인플레이션 2% 넘어도 저금리 허용
 
미 연준의 인플레이션 정책 변화

미 연준의 인플레이션 정책 변화

고용 부문 못지않게 금융시장의 관심을 끈 것은 평균 인플레이션 목표제(Average Inflation Targeting, AIT)의 도입이었다. 기존의 IT가 현재 혹은 미래 일정 시기의 인플레이션을 목표에 맞추도록 노력한다면, AIT는 과거를 포함한 상당 기간 인플레이션의 평균을 목표에 맞추는 것으로 변경한 셈이다. 최근에 인플레이션이 목표 수준인 2%에 상당히 미달한 것을 고려한다면 앞으로는 인플레이션이 2%보다 더 높게 되도록 의도한다는 것이다. 즉, 인플레이션이 올라가면서 점차 2%로 근접하거나 심지어는 이를 상회하는 경우에도 이자율을 올리거나 유동성을 축소하는 정책을 이전의 IT에 비해 천천히 수행한다고 공표한 셈이다.
 
물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듯이 수정된 ‘장기 목표 및 통화정책 전략’이 어느 정도 Fed의 변신을 의미하는지는 Fed가 실제로 수행되는 정책을 봐야 판단할 수 있다. 8월에 이루어진 전략의 수정은 Fed의 의결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ederal Open Market Committee, FOMC) 참가자 17명 전원의 만장일치를 통해 이루어졌다. 한편 지난주에 열린 FOMC 미팅에서 투표권자 10명 모두 정책금리의 범위를 0~0.25%로 동결하는 데 동의하면서도, 앞으로 ‘완전고용과 2%를 완만히 상회하는 인플레이션 궤도에 오를 때까지 현 정책금리 목표 범위를 유지한다’는 표현에 대해 두 명의 소수의견이 나온 것을 보면 정책 수행의 디테일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더구나 소수의견 중 한 명은 언제라도 금리를 올리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매파적인 의견을 표시했고, 다른 한 명은 지금보다 더 완화적인 방향의 비둘기적인 의견을 표시하는 다양성을 보여줬다.
  
아직은 꼼수라서 성공할지 미지수
 
이런 중앙은행의 변신은 뉴질랜드와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물가안정의 단일 책무를 택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도 고용에 대한 언급을 점차 확대하고 있으며, 한국은행도 지난 6월 한은 70주년 기념사 등에서 중앙은행 역할의 확대에 대한 언급을 늘리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신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용 등의 영역에 발을 깊게 들여놓으며 중앙은행의 영역을 늘리는 것에 대하여 탈선이며 타락이라고 하는 의견도 엄연히 존재한다.
 
2016년에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인 알파고와 바둑 5판을 두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유일한 승리인 4국에서의 ‘신의 한 수’ 78수에 대해 이세돌 9단은 “꼼수였다”고 겸손하게 표현한 적이 있다. 그 78수가 묘수인지, 악수인지는 그 수 이후에 바둑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중앙은행의 변신이 아직은 ‘꼼수’일텐데 이 수가 악수가 되지 않고 묘수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전대미문의 생태 환경적 경제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길이다.
 
‘가짜’라는 비판도 받는 평균 인플레이션 목표제(AIT)
물가안정을 목표로 삼는 중앙은행이 가장 적절한 수준으로 삼는 물가상승률은 0%라기보다는 약간의 양수, 많은 경우에 2%의 수준이다. 이때 Inflation Targeting(IT)은 ‘인플레이션 목표제’ 혹은 ‘물가상승률 목표제’로 번역되며 ‘물가안정목표제’로도 불리고 있다. 가장 고전적 형태의 IT는 올해의 물가상승률을 2%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즉, 작년의 물가상승률과 관계없이 올해 2%가 목표다.
 
IT에 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이 Price-Level Targeting이다. ‘물가수준 목표제’ 혹은 ‘물가 목표제’로 불린다. 이를 주장하는 논거는, 올해의 인플레이션에 관한 목표치를 설정하지 않고 올해의 물가수준에 관해 미리 설정된 목표치를 맞추는 통화정책을 펴는 것이 더 바람직한 정책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물가수준 목표가 5년 전에 설정됐다면 이는 올해를 포함한 과거 5년간의 평균 인플레이션을 적절한 목표 수준에 맞추는 것과 실질적으로 같다. 이러한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를 위해 Fed는 이번에 Average Inflation Targeting(AIT)을 도입하게 됐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AIT를 ‘평균 물가목표제’보다는 ‘평균 인플레이션 목표제’나 ‘평균물가상승률 목표제’로 번역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고속도로 운전에 비유한다면, IT는 일정한 장소에서의 속도 단속이고 AIT는 구간 단속이라고 하겠다.
 
구간단속을 하는 경찰이 구간을 정확히 알려주지 않으면 운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Fed는 아직 AIT의 구체적인 정책구상을 밝히지 않고 Flexible AIT를 펼 예정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FAIT’의 발음에서 비판적인 입장을 펴는 사람들은 ‘fake(가짜)’를 떠올리고 찬성을 하면 ‘faith(신뢰)’를 생각한다고 한다. Fed가 구간단속을 어떻게 성공시키느냐에 따라서 FAIT의 운명이 결정지어질 것이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선임경제학자로 일했다. 버지니아주립대 경제학과 교수와 조지타운대 겸임교수를 거쳤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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