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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진보 긴즈버그의 보수 ‘베프’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157년 간 남성 입학만 허용한 미국 공립 버지니아 군사학교는 1996년 연방 대법원 판결로 여성 생도를 받아들이게 됐다. 3년 차 연방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다수의견에 이렇게 썼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능력을 바탕으로 열망하고 성취하며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할 동등한 기회를 부정하는 법과 공공 정책은 명백히 무효다.”
 
아들이 이 학교에 재학 중이어서 기권한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을 뺀 표결은 7대 1. 양성평등을 실현한 역사적 판결에서 딱 한 명이 긴즈버그에 반대했다. 앤토닌 스캘리아 대법관이었다. “남성 전용 군사학교는 오랜 전통이다. 국민은 다른 전통과 마찬가지로 민주적 과정을 통해 전통을 바꾸기로 결정할 수 있다. 다만, 전통이 몇 세기 동안 위헌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법으로 밀반입된 정치다.”
 
2006년 긴즈버그(뒷줄 왼쪽에서 셋째)와 스캘리아(앞줄 왼쪽에서 넷째). [AFP=연합뉴스]

2006년 긴즈버그(뒷줄 왼쪽에서 셋째)와 스캘리아(앞줄 왼쪽에서 넷째). [AFP=연합뉴스]

확고한 진보주의자 긴즈버그와 뼛속까지 보수주의자 스캘리아는 판결에서 극과 극을 달렸다. 헌법을 대하는 시각도 달랐다. 근원주의자인 스캘리아는 제정자의 입법 의도대로 헌법을 해석해야 한다고 믿었다. 긴즈버그는 헌법은 “살아있는 문서”이므로 사회 변화에 따라 해석도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두 사람은 대법관으로 함께 일한 22년간 낙태, 동성결혼, 건강보험 등 논쟁적 사건에서 같은 편에 선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깊은 우정을 나눴다. 80년대부터 해마다 12월 31일 저녁 긴즈버그 집에서 두 가족이 모여 식사하며 새해를 맞았다. 두 사람 이름을 딴 오페라가 만들어지고, 카메오로 출연하고, 여행과 쇼핑도 함께 했다. 2016년 스캘리아 대법관 추도식에서 긴즈버그는 “그를 따라가서 산 카펫을 지금도 잘 쓰고 있다”고 농담했다.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냐는 질문에 2014년 스캘리아는 “나는 생각을 공격하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다. 옆에 있는 긴즈버그를 보며 “몇몇 아주 좋은 사람들이 나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스캘리아는 반대의견을 초안 단계에서 긴즈버그에게 보여줘 다수의견을 쓸 때 약점을 보완하고 논리를 강화할 수 있게 했다. 대법관 임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둘을 우정으로 묶었다.
 
편을 갈라 내 편 아닌 네 편은 배척하고, 정치 이데올로기로 모든 사안을 바라보는 데 우리는 익숙해졌다.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어쩌면 논쟁할 아이디어가 없어서일까.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 정치적 분열의 시대에 두 사람은 생각이 같지 않아도 함께 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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