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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감시 권하는 사회

전수진 경제정책부 차장

전수진 경제정책부 차장

지난 여름 최고의 납량의 순간은 지하철에서 찾아왔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지 않은 승객이 보이시면 단속을 나갈 테니 OOO앱으로 신고하세요”라는 요지의 안내방송이 나오면서다. 마스크 착용은 물론 필수이지만, 옆 사람을 감시하라고 버젓이 안내방송까지 하는 게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웠다. 소설가 현진건이 들었다면 ‘감시 권하는 사회’라는 작품을 썼을 법하다.
 
‘마스크’를 검색 엔진에 넣으면 자동완성기능으로 ‘마스크 미착용 신고’가 뜬다. 15일 현재 한 포털 사이트엔 ‘초딩 6’이라는 사용자가 “마스크 안 쓴 사람 찍어서 신고하면 3만원 준다던데 맞아요?”라는 글을 올렸다. 거리두기 2.5단계가 한창이던 지난주, 단골 식당 사장은 “상가 점포 주인들끼리 서로 감시하느라 난리”라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모 구청에 근무하는 지인은 “신고 포상금 받으려면 사진 어디로 보내냐”는 전화가 폭주해 업무를 못 볼 지경이란다. 하긴, 그전에도 ‘쓰파라치(포상금을 노리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감시하는 사람)’ 등, ‘O파라치’가 득세했다. 감시가 하나의 경제활동으로 정착하면서, 한국은 상호 감시가 돈 버는 수단으로 인식되는 사회로 진화 중이다.
 
노트북을 열며 9/16

노트북을 열며 9/16

개인 정보 민감성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거주지와 핸드폰 번호를 명부에 적지 않으면 커피 한 잔 못 샀던 지난주까지, 그 명부가 타인에게 고스란히 노출되는 상황은 당황스러웠다. 개인 정보는 돈이다. 해외에서 택배 주소용지 파쇄용 세단기가 인기 상품인 건 다 이유가 있다. 피싱 사기꾼들은 개인 정보 풍년에 환호했을 게다. 성 인지 감수성만 논할 게 아니다. 개인 정보 감수성의 부재는 감시 사회의 또 다른 어두운 면이다.
 
감시 경제(surveillance economy)란 대개 정보기관 및 정부가 부당한 방법으로 잘못된 목적 달성을 위해 시민을 감시하는 맥락에서 쓰인다. 진보 성향 싱크탱크인 뉴 아메리칸 재단이 2013년 낸 보고서의 핵심 키워드도 ‘감시 경제’였다. 9·11 테러 이후 설립된 미국국가안전보장국(NSA)이 기업 및 개인을 도·감청한 것이 실질적 경제 손실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감시라는 것은 일견 효용이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종국엔 공동체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2020년 대한민국에선 정부가 드러내놓고 포상금을 내밀며 시민형 감시 경제를 조장하고 있다. 여기에 길들여지고 있는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를 미워하며, 서로를 신고한다. 돈 주고도 못 사는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이렇게 무너져간다. 여기에 둔감한 현실이 더 슬픈 2020년의 시간이 가고 있다.
 
전수진 경제정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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