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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병든 소나무에 '하트 문양'이 새겨진 슬픈 이유

최금화 사진전 'PAIN TREE' 속 상처 입은 소나무들.

최금화 사진전 'PAIN TREE' 속 상처 입은 소나무들.

9월 1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사진전문 갤러리 ‘류가헌’에서 최금화(57) 작가의 사진전 ‘PAIN TREE’가 열린다. 갤러리를 가득 채운 사진 속 피사체는 소나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소나무의 영어 이름은 ‘PINE’. 그런데 사진전의 제목은 PAIN(고통·통증)이다.  
최금화 작가의 카메라가 포착한 수많은 소나무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습과는 다르다. 용이 승천하듯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신비로운 형태는 온 데 간 데 없고 수피(나무줄기의 바깥 조직)가 깊게 패이고, 줄기가 꺾인 채 죽어가는 소나무들이 액자를 채우고 있다. 전시 제목처럼 고통스러운 상처와 통증으로 신음하고 있는 소나무들이다.
최금화 사진가가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최금화 사진가가 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수피에 깊게 팬 커다란 생채기들은 일제강점기 때 비행기 연료로 쓰이던 송탄유를 만들기 위해 송진을 강제로 채취한 흔적들이에요.”
일제강점기 때 사람뿐 아니라 한국의 자연과 자원도 수탈의 대상이 됐다. 일본이 전시체제에 돌입하면서 본격적인 송진 채취가 시작됐고, 전국의 마을과 사찰 주변의 수령 20년을 넘긴 소나무들은 날카로운 톱날로 온 몸이 찢겨지는 폭력 앞에 서서히 병들게 됐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교수는 이 소나무 사진들을 “귀신의 얼굴 내지 가면 같기도 하고 일그러지고 우는 얼굴이자 고통에 뒤척이는 몸이기도 한 소나무는 짙은 목탄화처럼 바탕으로부터 솟아오른다”고 표현했다.  
중앙대학교와 미국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s)에서 사진을 공부한 최금화 작가는 1994년부터 2018년까지 광고사진을 찍었다. 한창 때는 한 달에 10여 건 이상의 광고를 촬영했던 그가 소나무의 상처와 마주한 건 2015년이다.  
최금화 사진전 'PAIN TREE' 속 상처 입은 소나무들.

최금화 사진전 'PAIN TREE' 속 상처 입은 소나무들.

“일산에서 사진카페 ‘쿠마씨’를 운영하며 사진 강좌를 열 때였어요. 누군가 ‘이런 소나무 사진이 있다’며 보여주는데 신기하게도 수피에 커다란 하트가 새겨져 있는 거예요. 나무에 왜 이런 걸 새겼을까 안타까우면서도 예쁘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송진 채취 때문에 생긴 상처가 그렇게 하트 모양으로 굳어진 거더라고요.”
인적 드문 산속에서 몸에 깊은 상처를 안고 혼자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소나무의 존재를 알게 된 최 작가는 그 길로 전국에 산재한 아픈 소나무들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상처 입은 소나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 아픔을 나라도 기록해줘야겠다 생각했죠.”
염치없는 인간들은 저 필요한 것만 챙기고 아낌없이 준 나무의 말로는 나 몰라라 한다. 최 작가는 그렇게 말 한 마디 못하고 홀로 죽어가는 나무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자 생각한 것이다. 마치 소나무의 영정사진처럼.  
최금화 사진전 'PAIN TREE' 속 상처 입은 소나무들.

최금화 사진전 'PAIN TREE' 속 상처 입은 소나무들.

밀양, 울산, 해인사, 남원, 안면도, 설악산, 울진, 평창 등등. 상처 입은 소나무들은 의외로 사찰과 인가 부근에 많았다.  
“원래 우리 선조들은 오래 전부터 송진을 채취했었으니까요. 그래도 그 때는 소나무 수피에 얇게 조금만 상처를 내고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니까 금세 회복이 됐는데, 일제강점기 때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송진을 채취하려고 수피 전면에 톱날로 몇 십 줄의 깊은 상처를 내서 도저히 회복이 안 된 거예요.”
최금화 사진전 'PAIN TREE' 속 상처 입은 소나무들.

최금화 사진전 'PAIN TREE' 속 상처 입은 소나무들.

균이 옮아 깊숙이 썩어 들어간 소나무는 새살을 돋울 힘을 잃었다. 속이 텅텅 비고 비쩍 말라버린 나무는 바람 때문에 어이 없이 휘어지고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상처에 시멘트를 발라놓은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 더 이상 온전히 자라지 못했다.  
인가에서 먼 소나무는 등산객의 도움을 얻었다. ‘여기 오니까 이런 소나무들도 있다’며 등산객들이 찍어 올린 블로그나 SNS 사진을 뒤져가며 위치를 짐작해 찾아 나선 경우다. 덕분에 20년 넘게 화려한 도심에서만 사진을 찍던 최 작가는 아마추어 등산가가 됐다.  
그는 갔던 곳을 다시 찾아가기도 했다. 사계절을 담고 싶어서였다. 꽃이 피는 것도 아니고, 서서히 죽어가는 나무들에서 무슨 계절을 느낄 수 있을까. 더욱이 그의 소나무 사진은 모두 흑백 사진이다.  
“숲 속에는 다른 나무들이 함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계절이 바뀌면 햇빛이 달라져요.”
사진 앵글도 다양하게 변주했다. 어떤 나무는 멀리서 풍경 속에 찍힌 하나의 점처럼 바라보고, 어떤 나무는 초상화를 찍듯 가까이 다가갔다.  
“늙고 병든 나무라 할지라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안고 있을 테니까요. 좀 더 다채롭게 나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죠. 어찌 보면 우리네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최금화 사진전 'PAIN TREE' 속 상처 입은 소나무들.

최금화 사진전 'PAIN TREE' 속 상처 입은 소나무들.

전시장의 소나무 사진들을 오래 바라보고 있자니 기괴하고 어둡고 슬프고 무섭기조차 했던 생채기들이 때로는 하트로, 때로는 십자가로 보이기 시작했다. ‘괜찮다, 괜찮다’ 마음을 다독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진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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