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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기술 흠 없는 천재 박주영, 실력 발휘 못해 안타까워

[스포츠 오디세이] ‘풍운아’ 이회택 전 축구협회 부회장 

이회택(74)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풍운아’ ‘이춘풍’ 같은 별명을 갖고 있다. 축구도 잘했지만 사생활도 화려했다. 불같은 성격에 화통하고 직선적이라서 따르는 후배가 많다.
 

손흥민, 힘·스피드·슈팅 역대 최고
골잡이는 양발 기본, 위치 선점 중요

고1 때 첫 출전, 졸업 때 태극마크
술·연애 빠져 21살에 이미 무너져

지도자는 선수 믿어주는 게 중요
10분 넣었다뺐다 하면 클 수 없어

이회택은 1960∼70년대 축구 국가대표팀 최전방에서 많은 골을 넣었다. 프로축구 포항·전남 감독을 역임했고, 88년 대표팀을 맡아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축구협회 부회장과 기술위원장으로서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진출,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에 기여했다.
  
#이 전 부회장은 고향인 김포에서 이회택축구교실을 운영하며 꿈나무들을 키우는 재미에 빠져 있다. 지인들과 어울리는 골프도 큰 즐거움이다. 올해만 에이지 슈트(나이와 같거나 적은 타수를 치는 것)를 두 번이나 했다. 이 전 부회장을 그의 모교인 서울 송파구 동북고등학교에서 만났다.
  
A매치 21골? 수십 골은 더 넣었을 것
 
이회택 전 축구협회 부회장이 모교인 서울 동북고 운동장에서 옛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그는 ’동북고 박병석 감독님 밑에서 진짜 선수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이회택 전 축구협회 부회장이 모교인 서울 동북고 운동장에서 옛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그는 ’동북고 박병석 감독님 밑에서 진짜 선수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고등학교만 네 군데 다니셨죠.
“중3부터 본격적으로 축구를 했어요. 김포농고 들어간 61년 초에 양촌면 리(里) 대항 축구대회가 열렸는데 서울서 축구 하는 형들이 청소년대표 선수들을 데리고 내려왔죠. 그 형들이 공 다루는 게 무슨 서커스 보는 것 같았어요. ‘저렇게 축구 하려면 서울로 가야겠다’ 결심하고 친척 통해 한양공고 축구부에 들어갔는데 기본기가 전혀 안 돼 있으니 일주일 만에 쫓겨났죠. 이를 악물고 개인연습을 하는 중에 아는 형 통해 영등포공고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5월에 동대문운동장에서 부산상고와 붙은 첫 공식 경기에서 두 골을 넣어 2-0으로 이겼지요.”
 
그런데 다시 동북고로 옮겼네요.
“사실 난 영등포공고 입학은 하지 않고 축구부에만 등록한 부정선수였어요. 당시 최강이던 동북고 박병석 감독님이 날 주목하셨어요. 땅딸한 게 총알처럼 뛰어다니니까 보통 놈 아니라고 판단하고 스카우트한 거죠. 박 감독님을 만나서 야생마 같던 내가 선수가 된 겁니다. 트래핑, 패스, 움직임 등 기본기부터 시작해 그분의 노하우를 모두 쏟아부어 주셨죠.”
 
선생님 스타일을 황희찬(24·라이프치히)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요.
“황희찬과 나는 비교가 안 되지. 스피드와 저돌성, 폭발력은 비슷하지만 난 그 이상을 갖췄다고 봐요. 볼 없을 때 움직임과 골 결정력 같은 거죠. 동북고에 오니까 한 해 위 2학년 김기복이 최고 스타였어요. 청소년 대표팀 갔다 와서 가슴에 태극기, 등에 ‘KOREA’를 새긴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운 거야. ‘김기복을 넘어서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생겼죠. 감독님이 전수해 주신 기술을 밤늦게까지 다지고 다지면서 내 것으로 만들었죠.”
 
1970년대 포항제철에서 뛸 당시 이회택(왼쪽)의 경기 모습. [중앙포토]

1970년대 포항제철에서 뛸 당시 이회택(왼쪽)의 경기 모습. [중앙포토]

골 결정력은 어떻게 좋아졌나요.
“골 넣는 건 타고난 것 같아요. 골잡이라면 양발은 기본이고 몸 어느 곳을 써서라도 득점할 수 있어야죠. 거기다 난 골 넣는 자리를 찾아가는 기술을 익혔어요. 수비수를 순간적으로 따돌리면서 공이 오는 위치를 선점하는 거죠. 내가 A매치 82경기에서 21골을 넣었다고 공식 기록이 나오는데 아마 훨씬 더 넣었을 거요. 사실상 대표팀인 양지 소속으로 유럽 105일 전지훈련 하면서 우리가 수십 골을 넣었는데 내가 절반은 넣었으니까. 그때는 A매치에 대한 정확한 기준도, 기록도 없었잖아요.”
 
차범근처럼 유럽에 진출했다면?
“기량이 문제가 아니라 사생활이 문제였죠. 스물한 살 때 이미 무너졌으니 세계 최고 선수들이 경쟁하는 자리에 갈 수 있었겠냐고. 난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국가대표가 된 이후 한 번도 후보로 벤치를 지킨 적이 없었어요. 선배들이 워낙 나를 예뻐해서 ‘스타는 공만 잘 차선 안 된다. 술·오락·연애 등 못하는 게 없어야 한다’며 여기저기 끌고 다녔죠. 차범근이 독일에서 성공한 가장 큰 요인은 부인(오은미 여사)을 잘 만난 겁니다. 축구 외에 아무것도 못 하게 막아줬잖아요.”
  
박주영

박주영

#축구팬이라면 줄줄 꿰는 ‘한국축구 스트라이커 계보’가 있다. 최정민(작고)에서 시작해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이동국으로 이어진다. 이 전 부회장은 대체로 공감했다. 그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선수가 박주영(35·FC 서울)이다. “체력이나 기술이나 흠 잡을 곳이 없는 천재지요. 그런데 고려대 1학년 때와 FC 서울 입단 첫해를 빼고는 제대로 보여주지를 못했어요. 오죽 답답했으면 동료 선수들에게 ‘박주영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니까요.”
 
손흥민. [로이터=연합뉴스]

손흥민. [로이터=연합뉴스]

그럼 역대 최고 선수는 누굽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손흥민(28·토트넘)이죠. 누가 부정하겠어요. 차범근과 손흥민의 공통적인 강점은 체력과 스피드, 슈팅력이지요. 2017년 11월 수원에서 콜롬비아 수비수 가랑이 사이로 골 넣는 것 보면서 완전 인정했어요. 그 전까지는 딱딱하고 유연성이 좀 떨어진다고 봤거든요. 본인도 그 경기 이후 자신감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안 뺄 테니까 소신껏 해라” 믿음 줘
 
좋은 지도자의 조건은 뭡니까.
“선수와 마음이 연결되고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포철 감독 마지막 해 허정무한테 물려주기 전에 선수들을 좀 정리해주고 떠나야겠다 싶었어요. 후반기부터 신예들을 많이 기용했는데 게임 전에 불러서 ‘90분 동안 안 뺄 테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단 기회는 한 번 뿐이다’고 했어요. 이 아이들이 펄펄 날아다니면서 박경훈·이흥실·이기근 등 기라성 같은 선배 자리를 완벽하게 메우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선수라도 몇 번 실수할 수는 있는데 10분 넣었다 뺐다 하면 클 수가 없어요.”
 
이 전 부회장은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전수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초등학교 대회가 열리는 제주도에서 지도자 대상으로 기술 전수 프로그램을 준비한 적도 있는데 딱 한 명 참석했다고 한다. 백발 원로는 안타까움과 진심을 담은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지도자들이 당장 성적에 목 멜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압니다. 그렇지만 좋은 선수를 키우는 데 힘쓰다 보면 성적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어요. 지도자들이 좀 더 큰 비전과 긴 안목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고, 축구협회도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비쩍 마른 고1 황선홍 ‘찜’…대학 2학년 때 대표팀 발탁
황선홍

황선홍

이회택 전 부회장은 국가대표 감독을 짧게 맡았지만 한국 축구의 큰 재목 둘을 발굴했다. 황선홍(52·전 대전 감독·사진)과 홍명보(51·축구협회 전무)다.
 
한양대 감독 시절 이회택은 용문고의 P선수를 스카우트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그가 다른 학교로 틀어버렸다. 이 감독은 “다른 선수를 보자”며 용문고를 불러 한양대와 연습경기를 시켰다. 전방에서 비쩍 마른 선수가 휘청휘청 뛰는 게 이 감독 눈에 들어왔다. 경기 후 “저 선수를 뽑겠다”고 하자 용문고 감독이 당황하며 “쟤는 1학년인데요” 했다. 그가 황선홍이었다.
 
이 감독이 포철로 옮기면서 한양대 후임에게 “황선홍은 무조건 뽑아라. 큰 선수가 될 거다”고 했는데 결국 황선홍은 건국대로 갔다. 이 감독은 틈날 때마다 건국대 경기를 보러 갔고, 대표팀을 맡자마자 건국대 2학년 황선홍을 뽑아 주전으로 기용했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대표팀 최종수비수 조민국이 무릎을 다쳤다. 이 선수 저 선수 넣어봤지만 신통치 않았다. 김순기 코치가 “고대 2학년에 홍명보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머리가 영리하고 잘합니다”고 귀띔을 했다. 허정무 코치한테 한번 보라고 했더니 ‘괜찮은데요’ 했다.  
 
기술위원회를 소집하자 위원들이 “대표팀 합숙 중에 정기 연고전 한다고 도망가 버리는 연대·고대 선수는 안 뽑기로 하지 않았나. 청소년대표 경험도 없는 고대 듣보잡을 동북고 후배라고 뽑으려고 하느냐”고 난리가 났다.  
 
이 전 부회장은 “내가 무릎만 안 꿇었지 사정사정했어요. 일단 뽑은 뒤에는 월드컵 본선 끝까지 한 번도 안 빼고 기용했지요”라며 웃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인터뷰 전문은 월간중앙 10월호 〈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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