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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 전 가야인의 한땀한땀…첫 보물 되는 유리‧수정 목걸이

 
문화재청이 7일 보물로 지정 예고한 금관가야 시대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모래알 같은 크기(폭 4.5㎜, 높이 2.7㎜)의 코발트색 유리구슬 2000여개를 촘촘히 엮어 만든 구슬끈 석줄에다 크기와 빛깔이 다채로운 수정 구슬 10점과 주황색 마노(瑪瑙) 구슬 77점을 치장했다.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7일 보물로 지정 예고한 금관가야 시대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모래알 같은 크기(폭 4.5㎜, 높이 2.7㎜)의 코발트색 유리구슬 2000여개를 촘촘히 엮어 만든 구슬끈 석줄에다 크기와 빛깔이 다채로운 수정 구슬 10점과 주황색 마노(瑪瑙) 구슬 77점을 치장했다. [사진 문화재청]

모래알 같은 크기(폭 4.5㎜, 높이 2.7㎜)의 코발트색 유리구슬 2000여개를 촘촘히 엮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구슬끈 석줄에다 크기와 빛깔이 다채로운 수정 구슬 10점과 주황색 마노(瑪瑙) 구슬 77점을 치장했다. 이 중 가장 큰 수정은 높이 10.3㎜, 폭15.9㎜에 달한다. 이 목걸이 하나에만 쓰인 구슬이 총 2473점. 일일이 대롱이나 주판알처럼 다듬고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구멍을 뚫어 연결했다.  

미세한 구슬 수천여개 깎고 다듬어 연결
'철의 왕국' 가야의 유리세공 기술 입증
김해 대성동 76호 출토분 등 3건 보물로


 
이 목걸이가 발견된 곳은 3세기 말~4세기 초 금관가야 시기 무덤인 김해 대성동 76호 고분(사적 제341호). 금관가야 시대 수장층의 공동묘지로 2011년 대성동고분박물관이 발굴조사 중 목곽묘에서 발견했다. 발굴 당시에 목걸이를 엮었던 끈은 부식돼 없었지만 오랜 고고학적 성과를 토대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했다. 약 1700년 전 솜씨라 믿기지 않는 화려함과 섬세함이다.  
 
2011년 김해 대성동 76호분에서 목걸이 원석들이 발굴됐을 때 현장 모습. 3세기 말~4세기 초 금관가야 시기 수장층의 공동묘지로 발굴 당시에 목걸이를 엮었던 끈은 부식돼 없었지만 오랜 고고학적 성과를 토대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했다. [사진 문화재청]

2011년 김해 대성동 76호분에서 목걸이 원석들이 발굴됐을 때 현장 모습. 3세기 말~4세기 초 금관가야 시기 수장층의 공동묘지로 발굴 당시에 목걸이를 엮었던 끈은 부식돼 없었지만 오랜 고고학적 성과를 토대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원했다.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7일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목걸이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앞서 가야 갑옷이나 금동관 등이 문화재로 지정된 적은 있지만 가야 목걸이의 보물 지정은 이번이 처음. ‘철의 왕국’으로 불리는 가야가 유리 제품 가공 능력도 뛰어난데다 고유한 장신구 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란 점이 높이 평가됐다.
 
가야인들은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 곡옥이나 둥근 옥을 만들어 목걸이로 착용했다고 한다. 고대에 구슬 제작방법은 주형(鑄型) 혹은 잡아 늘리기 기법이 있었다. 주형은 일정한 틀에 재료를 녹여 부어서 만든 방법이고, 잡아 늘리기란 녹인 유리질 속에 막대를 넣고 잡아 늘려 식힌 다음 일정한 크기로 자른 방식이다. 가야 시대 유리구슬은 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가야인의 유리구슬 사랑은 중국의 역사서『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도 나타나 “(가야인들은) 구슬을 보배로 삼아 혹은 옷을 꿰어 장식하고 혹은 목에 걸고 귀에 달았지만 금‧은‧비단은 진귀하게 여기지 않았다(以瓔珠爲財寶, 或以綴衣爲飾, 或以懸頸垂耳, 不以金銀繡爲珍)는 기록이 있다.
7일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 예고한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 목걸이. [사진 문화재청]

7일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 예고한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 목걸이. [사진 문화재청]

 
함께 지정 예고된 ‘김해 양동리 제270호분 출토 목걸이’는 수정제 다면옥 20점과 주판옥 120점, 곡옥 6점 등 총 146점의 수정으로 구성됐다. 전체 약 142.6cm의 길이에 육각다면체형, 주판알형, 곡옥형(曲玉形) 등 여러 형태로 수정을 다듬어 연결했다. 문화재청은 “수정목걸이는 3세기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지배계층의 장신구로서, 3~4세기 가야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었으나 이 목걸이처럼 100여점 이상의 수정으로만 구성된 사례는 희소하다”고 지정 사유를 밝혔다.
7일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 예고한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사진 문화재청]

7일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 예고한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사진 문화재청]

 
또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는 경도 7의 단단한 수정을 다면체로 가공하거나 많은 수량의 곡옥 형태로 섬세하게 다듬은 제작 방법이 높이 평가됐다. 수정제 곡옥 147점, 대형 수정제 다면옥 2점, 마노 환옥 6점, 파란 유리 환옥 418점, 유리 곡옥 1점 등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보석 총 574점으로 구성된 목걸이다. 문화재청은 “투명한 수정을 육각형으로 다듬고 거기에 붉은색 마노와 푸른색의 유리옥을 더하여 영롱한 빛으로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 목걸이 파란색 곡옥과 주황색 마노구슬. 1700년 전 가야인의 수준 높은 세공 솜씨를 보여준다. [사진 문화재청]

김해 양동리 322호분 목걸이 파란색 곡옥과 주황색 마노구슬. 1700년 전 가야인의 수준 높은 세공 솜씨를 보여준다.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 황정연 학예연구사는 “가야 목걸이는 5~6개 대표 고분에서 50건 이상 출토된 대표적인 장신구인데 출토 현황과 보존 상태 등을 고려해 3건이 처음으로 보물 지정 예고됐다”면서 “최근 역사‧학술적 재조명이 활발한 가야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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