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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가 불지핀 표현의 자유 논란…웹툰 덕후 판결 엇갈렸다

웹툰 '복학왕'에서 문제가 된 장면들. 현재는 일부 내용이 수정된 상태다. 네이버 웹툰 '복학왕' 캡처

웹툰 '복학왕'에서 문제가 된 장면들. 현재는 일부 내용이 수정된 상태다. 네이버 웹툰 '복학왕' 캡처

"여자 주인공이 누워서 배 위에 조개를 올려놓는 장면? 눈살이 찌푸려졌어요. 여성을 성적 상품화하는 장면 같아서…." -한승택(18)군

"창작물에 프레임을 씌우고 보면 나쁘게 보일 수밖에 없죠. 작가가 일부러 나쁜 의도로 그린 장면이 아니니 문제 삼을 순 없다고 생각해요." -정원우(18)군

 
지난 1일 서울시의 한 고교생들이 밀실팀에 들려준 말입니다. 이들은 매주 자신의 '최애' 만화가 올라오는 요일만 기다린다고 합니다. 시쳇말로 웹툰 '찐'팬들이죠. 이들에게 최근 작품 내 여성혐오 표현으로 구설에 오른 유명 웹툰 작가 기안84와 그의 작품 '복학왕'에 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밀실] <45화>
웹툰 팬들이 말하는 혐오 표현 논란

# 웹툰 하나가 불러온 나비효과, 독자들의 반응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뭐가 문제였을까요. 가장 논란이 된 대목은 지난달 11일 공개된 회차에서 나왔습니다. 대기업 인턴으로 일하는 여성 주인공 ‘봉지은’이 회식 자리에서 조개를 배에 올린 뒤 돌로 깨뜨리는 장면이었는데요. 그 모습을 본 남성 직장상사가 업무 능력이 미숙한 봉지은을 정직원으로 채용합니다. 그 후 다른 주인공인 '우기명'에게 "봉지은과 사귀게 됐다"고 말합니다.
 

"잤어요?"

"ㅋ"

직장상사는 남성 주인공의 물음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웃음으로 답하죠.
기안84가 '복학왕'에 올린 사과문. 네이버 웹툰 '복학왕' 캡처

기안84가 '복학왕'에 올린 사과문. 네이버 웹툰 '복학왕' 캡처

공개 직후 논란에 불이 붙었습니다. 인턴이 직장상사와 성관계를 맺어 채용된 걸 암시한다는 해석이 나온 겁니다. 댓글만 4만개 가까이 달렸습니다. 결국 기안84 사과문과 함께 일부 내용이 수정됐습니다. 배에 올렸던 조개가 테이블 위의 대게로 바뀌는 식이었죠. 그 후에도 '표현의 수위'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합니다. "기안84가 여성을 비하하고 희화화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한편, "작가에게 허락된 표현의 자유"라며 옹호하는 목소리도 만만찮죠.
 
복학왕으로 불거진 창작의 자유 논쟁, 10·20대는 특히 할 말이 많습니다. 지난 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9 만화 이용자 실태조사’에서 15~29세 만화 독자 4명 중 1명(25.9%)이 ‘웹툰을 거의 매일 본다’고 응답했습니다. 웹툰을 향한 애정이 남다른 세대라는 뜻입니다. 밀실팀이 웹툰 '찐'팬을 자처하는 10대 4명, 20대 5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논란-사과’ 무한 반복…웹툰 혐오표현의 역사

선정적인 표현으로 논란을 빚은 박태준 작가의 '외모지상주의'. 네이버 웹툰 '외모지상주의' 캡처

선정적인 표현으로 논란을 빚은 박태준 작가의 '외모지상주의'. 네이버 웹툰 '외모지상주의' 캡처

"웹툰을 보면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몰입하는 재미가 있어요. 하지만 간혹 주제와 상관없이 너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만 나온다고 느낄 때도 많죠." 

 
이성재(18)군의 고백입니다. 웹툰 내 표현을 둘러싼 논란, 복학왕이 처음은 아닙니다. 인기리에 연재 중인 여러 웹툰이 여성혐오·사회적 약자 비하 등으로 논란거리가 됐죠.
 
복학왕은 이전에도 장애인·외국인 비하로 구설에 오른 바 있습니다. 청각 장애인 말투를 과장해서 어눌하게 표현하고,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허름한 직원 숙소를 보고 "우리 회사 최고다. 죽을 때까지 다닐 거다. 캅캅캅!!"이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죠.
과거 외국인 비하로 논란이 된 '복학왕'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복학왕' 캡처

과거 외국인 비하로 논란이 된 '복학왕'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복학왕' 캡처

네이버 웹툰에서 인기를 끄는 '외모지상주의', '뷰티풀군바리' 등도 비판받습니다. 성인 인증 없이 볼 수 있는 웹툰이지만,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불필요하게 강조하거나 학교·군대 내 폭력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식입니다. 평소 외모지상주의를 즐겨 본다는 정원우(18)군은 "내용이 많이 자극적인 건 사실이지만, 학교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에피소드를 보며 공감한다"며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이 있다 해도 네이버의 자체 심의 기준을 믿는다"고 말했죠.
 
작품 내 표현이 문제가 될 때마다 네이버 웹툰은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논란이 되풀이되자 혐오 표현을 방지할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죠.
 

창작자들의 자정 노력…중견 작가도 나섰다

네이버 TV광고 중 웹툰 부분. 네이버 유튜브 캡처

네이버 TV광고 중 웹툰 부분. 네이버 유튜브 캡처

웹툰 작가들도 뒷짐 지고 서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한국만화가협회는 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자율규제 업무협약을 맺어 웹툰을 자체 심의하기로 했죠. 최근엔 작가 스스로 지침을 만들어 독자들의 감수성에 발맞춰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웹툰 경력 12년 차, 40대 남성 작가 하마탱(필명)도 그중 한 명입니다. 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강사로도 일했던 하마탱은 지난해 ‘웹툰 작가가 조심해야 할 혐오표현’이라는 강의 자료를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현직, 예비 작가들을 위해 스스로 만든 혐오표현 지침이었죠.
 
그는 자료에서 "약자가 강자를 농담의 대상으로 삼으면 ‘풍자’, 강자가 약자를 비웃으면 ‘폭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혐오표현을 3단계(아주 위험-다소 애매-다소 안전)로 나눴습니다. 출신 성분·신체 조건 등 태생적인 특성을 비판·조롱하는 건 ‘아주 위험’한 혐오표현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작가 하마탱이 공개한 '웹툰 작가가 조심해야 할 혐오표현' 중 일부. 하마탱 블로그 캡처

작가 하마탱이 공개한 '웹툰 작가가 조심해야 할 혐오표현' 중 일부. 하마탱 블로그 캡처

하마탱은 “작가에게 창작의 자유는 소중하지만, 독자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유를 누리겠다는 건 오만”이라며 “작가 스스로 성찰하며 나름의 기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런 말도 덧붙였죠.
 

“저도 혐오표현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이걸 다 조심하면서 살지?’ 꼬인 생각을 품을 때가 있었어요. 저 나름의 해답을 찾다 보니 단계별 지침까지 만들게 된 거죠. 서로 어느 선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 다 같이 기준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봉지은' 막아야" vs "문화적 퇴보 피해야"

지난 19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웹툰 본사 앞에서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 등 회원들이 기안84 웹툰 '복학왕' 연재 중단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웹툰 본사 앞에서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 등 회원들이 기안84 웹툰 '복학왕' 연재 중단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선 웹툰 내 혐오표현을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웹툰 독자 강모(26)씨는 “그저 재미있다는 이유로 어떤 소재·표현이든 허용한다면 더 선정적으로 그려진 또 다른 ‘봉지은’이 웹툰 재미를 담당하는 요소 정도로 여겨질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반면 내용 자체를 규제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걱정 섞인 반응도 나옵니다. 김상현(25)씨는 “작가의 특정 표현을 금지한다면 예술적 자유가 억압되고 문화적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웹툰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이용연령등급을 정하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규제가 생겨도 실질적 효과가 의심된다는 회의론도 있습니다. 배현진(24)씨는 “잘못된 표현을 규제하는 기준이 생긴다 해도 작가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어물쩍 넘어가면 끝날 문제 같다”며 고개를 저었죠.
2018년 11월 태국에서 열린 네이버 웹투니스트 데이. 네이버

2018년 11월 태국에서 열린 네이버 웹투니스트 데이. 네이버

전문가들은 웹툰에 강제 규제를 가하는 데 신중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한창완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는 “이미 플랫폼의 자율규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추가적 규제는 옥상옥이 될 수 있다”며 “플랫폼 측의 규제 외에도 소셜 미디어를 통한 독자 문제 제기 등으로 웹툰계 자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웹툰 내 혐오표현 논란,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박건·윤상언·최연수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김현정·이시은 인턴, 백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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