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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붙이가 와르르···1500년전 신라인 황천길은 호화로웠다

문화재청·경상북도·경주시는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지난 5월 금동신발과 금동 달개(동전 크기의 둥글납작한 금동 장신구)가 발견된 데 이어 무덤 주인이 머리부터 발치까지 장착했던 6세기 전반 제작된 장신구 일체가 최근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 사진은 금귀걸이 주변 유물 노출 모습.[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경상북도·경주시는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지난 5월 금동신발과 금동 달개(동전 크기의 둥글납작한 금동 장신구)가 발견된 데 이어 무덤 주인이 머리부터 발치까지 장착했던 6세기 전반 제작된 장신구 일체가 최근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 사진은 금귀걸이 주변 유물 노출 모습.[사진 문화재청]

 
키 170㎝ 정도의 그는 생전 왕족이나 최고위 귀족이었을 게다. 이승을 떠나는 마지막 차림까지 호화로웠다. 머리엔 금동관을 쓰고 양 귀엔 금귀걸이를 했다. 구슬을 엮어 만든 가슴걸이 아래로 은허리띠, 은팔찌, 은반지까지 갖췄다. 양 발엔 금동신발을 신었다. 세월 속에 시신은 삭아 없어졌지만 황천길에 함께 한 장신구들은 그대로 남아 1500여년 만에 빛을 보았다.

키 170㎝에 굵은고리 귀걸이 "장신의 여성"
금동관·금동신발 등 착장 형태대로 첫 출토

 
지난 5월 신라 적석목곽묘 사상 13번째로 금동신발이 나와 관심을 모았던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금동관 등 6세기 전반에 제작된 장신구 일체가 출토됐다. 특히 이들 장신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람 형상대로 노출돼 피장자가 이들을 착장한 상태로 묻힌 것으로 보인다. 경주 지역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 적석목곽묘)에서 관과 귀걸이, 반지, 신발 등이 일괄로 출토된 것은 1973년∼1975년 황남대총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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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3일 이 같은 발굴 성과를 알리며 현장 사진 등을 공개했다. 앞서 지난 5월 금동 달개((瓔珞, 영락) 일부가 먼저 노출됐던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는 최종적으로 금동관이 확인됐다. 금동관은 가장 아래에 관테(帶輪, 대륜, 머리에 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가, 그 위에 3단의 나뭇가지모양 세움장식(樹枝形 立飾, 수지형 입식) 3개와 사슴뿔모양 세움장식(鹿角形 立飾, 녹각형 입식) 2개를 덧붙여 세운 형태이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노출 모습. [사진 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 금동관,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노출 모습. [사진 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은허리띠, 은팔찌, 은반지 노출 모습. [사진 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은허리띠, 은팔찌, 은반지 노출 모습. [사진 문화재청]

 
금동관 혹은 금관은 피장자의 신분이 최고위급임을 암시한다. 이번에 출토된 금동관은 관테에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장식용 구멍들이 보이고, 세움장식과 사이에 ‘ㅜ, ㅗ’ 모양의 무늬가 뚫린 투조판이 있는 등 화려한 모습이다. 조사단 측은 “금동관의 관테에 장식용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투조판의 용도 역시 관모(冠帽)인지 금동관 장식용인지 더 조사가 필요하지만 지금껏 나오지 않은 희귀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은허리띠의 양 끝부분에서 4점이 묶음을 이룬 은팔찌가 나왔다. 오른팔 표면에선 1㎜ 내외의 노란색 구슬이 500점 넘게 출토돼 별도로 구슬팔찌도 찼던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은반지가 오른손에서 5점, 왼손에서 1점이 나왔는데 왼손 부분에 대한 추가 조사가 이뤄지면 은반지가 더 출토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천마총의 피장자처럼 각 손가락마다 반지를 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무덤 주인이 머리부터 발치까지 장착했던 6세기 전반 제작된 장신구 일체가 최근 확인됐다. 사진은 일반적으로 적석목곽묘 최고위층 피장자가 착장하는 장신구의 종류와 위치로 이번 120-2호분에선 이 가운데 대도가 발견되지 않아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진 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무덤 주인이 머리부터 발치까지 장착했던 6세기 전반 제작된 장신구 일체가 최근 확인됐다. 사진은 일반적으로 적석목곽묘 최고위층 피장자가 착장하는 장신구의 종류와 위치로 이번 120-2호분에선 이 가운데 대도가 발견되지 않아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진 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무덤 주인이 머리부터 발치까지 장착했던 6세기 전반 제작된 장신구 일체가 최근 확인됐다. 사진은 황남동 120-2호분 피장자가 착장한 장신구의 종류와 위치. [사진 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무덤 주인이 머리부터 발치까지 장착했던 6세기 전반 제작된 장신구 일체가 최근 확인됐다. 사진은 황남동 120-2호분 피장자가 착장한 장신구의 종류와 위치. [사진 문화재청]

한편 앞서 출토됐던 금동신발은 피장자가 신은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까지 발굴된 경주 지역 적석목곽묘의 금동신발이 모두 피장자 옆에 놓여있던 데 반해 처음으로 착장한 사례가 확인된 것. 신발은 ‘ㅜ, ㅗ’ 모양의 무늬를 번갈아가며 뚫은 앞판과 달리 뒤판은 무늬를 새기지 않은 사각의 방형판으로 마감한 형태다. 문화재청은 “1960년 의성 탑리 고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금동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신발이나 관은 실생활에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장송 의례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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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관에 금동신발을 한 피장자는 남자였을까 여자였을까.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 뒤꿈치까지의 길이가 176㎝인 것으로 보아 일단 키는 170㎝ 내외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 조사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이날 유튜브를 통해 진행된 온라인 발굴현장 설명회에서 “남성의 고분에서 빠짐없이 출토되는 큰 칼(대도)이 나오지 않았고 여성 고분에서 주로 나오는 굵은고리 귀걸이, 청동다리미, 방추차(가락바퀴) 등이 출토된 데서 볼 때 피장자는 여성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신구를 전공한 이한상 대전대 교수 역시 “굵은고리 귀걸이 외에도 허리춤에서 작은 장식칼의 흔적들이 확인되는 등 무덤 주인공은 여성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신라왕경핵심유적복원‧정비사업 추진단의 이현태 연구사는 “인골이 그대로 나오지 않는 한 성별‧신장을 확언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고고학적 판단으로는 장신의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신라인의 평균 키를 알 순 없지만 당시 이례적인 케이스였을 거로 추측한다”고 덧붙였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 금동신발 일부 노출 상태. 경주 지역 적석목곽묘에서 피장자가 금동신발을 신은 상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 금동신발 일부 노출 상태. 경주 지역 적석목곽묘에서 피장자가 금동신발을 신은 상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 문화재청]

의성 탑리 고분 제2곽 출토 금동신발. [사진 문화재청]

의성 탑리 고분 제2곽 출토 금동신발. [사진 문화재청]

이번 발굴은 2018년부터 계속돼 온 경주 황남동 120호분 조사 사업의 일환이다. 문화재청은 경상북도 및 경주시와 함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이를 진행해왔고 지난해 120호분의 북쪽에 위치한 120-1호분과 120호분의 남쪽에 위치한 120-2호분을 추가로 확인했다. 문화재청은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인골 흔적을 탐색하는 한편, 신분·성별 등 피장자의 정보를 계속 조사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수정: 3일 오후 문화재청 간담회 내용을 반영해 기사를 업데이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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