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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m 파미르서 여든넷 생일 자축 “난 행복한 할망구”

이춘숙씨와 아들 정형민 감독이 2017년 티베트 성산 카일라스에서 찍은 기념 사진. 정 감독의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에도 담겼다. [사진 영화사 진진]

이춘숙씨와 아들 정형민 감독이 2017년 티베트 성산 카일라스에서 찍은 기념 사진. 정 감독의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에도 담겼다. [사진 영화사 진진]

“2014년 히말라야 갈 땐 여든살 어머니가 처음 한국을 벗어나 가고 싶은 곳이 생긴 게 기뻤어요.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이른 나이에 먼저 간 아버지와 형님에 대한 아픔을 씻고 웃으며 가시길 바랐어요. 집에만 계시면 그런 슬픔을 고스란히 안고 떠나시지 않을까. 앞뒤 생각 않고 여행길에 올랐죠.”
 

오늘 개봉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
이춘숙씨, 감독 아들과 오지순례
“세상 위해 한 것도 없이 할머니 돼
부끄러워져서 둘이서 길 떠났죠”

6년 전 노모 이춘숙(86)씨와 히말라야 순례를 떠난 다큐멘터리 감독 정형민(51)씨의 말이다. 이씨는 첫아들을 1년도 안 돼 잃고, 결혼 7년째이던 1970년 남편마저 떠나보냈다. 남매를 홀로 키운 지 40여년. 2008년 경북 봉화로 귀촌해 아들이 손수 지은 집에서 농사짓는 재미에 빠져 사는 그는 막내 정 감독이 다녀온 히말라야 까그베니 마을의 600년 된 불교 사찰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게 간 생애 첫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그는 물었다. “아들아, 우리 이제 어디에 가니?”
 
정 감독이 다큐 ‘무스탕 가는 길’(2017)에 먼저 담은 이 첫 여행 이후 모자의 오지 순례는 2017년 티베트 성지 카일라스 산으로 이어졌다. 3일 개봉하는 그의 다큐 ‘카일라스 가는 길’은 어머니와 그간의 여정을 담은 작품. 2017년 초 바이칼 호수, 그해 9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고비 사막, 파미르 고원, 티베트 성산 카일라스, 히말라야, 네팔 카트만두까지, 3개월간 다닌 길이 2만㎞에 이른다.
 
이춘숙씨는 여든네 번째 생일도 평균 해발 고도 5000m 파미르 고원에서 맞았다. 일기장엔 “언제 또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할망구”라 썼다. “대한민국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골짜기 골짜기에서 왔습니더. 올해 팔십하고도 너이입니더. 그래도 청춘! 입니더!” 그의 맑고 유쾌한 기운이 89분 다큐 내내 흘러넘친다. 유튜브 1세대 박막례 할머니, 백발 모델 김칠두, 패션 유튜버 ‘밀라논나’ 장명숙 등 오팔세대(OPAL·Old People with Active Life,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신노년층) 스타들의 궤를 잇는다.
 
지난달 31일 서울을 찾은 이춘숙씨 모자가 여행기를 돌이키며 웃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31일 서울을 찾은 이춘숙씨 모자가 여행기를 돌이키며 웃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달 31일 서울을 찾은 그와 정 감독을 인사동 한 호텔에서 만났다. “영화로 될 기라고 생각했으믄 주연배우처럼 옷도 좀 폼 내고 그랬을긴데요(웃음). 주연배우가 시원찮아도 정 감독이 잘했습니더.”
 
그전엔 아들의 여행 권유도 수차례 물리쳤던 그는 TV 다큐에서 오지 사람들을 보며 뭉클해졌단다. 세상을 위해 한 일이 없다 싶어 부끄러워졌고, 히말라야 사람들은 어찌 사는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80대 노모와 오지에 간다니 주변에선 다 말렸지만 정 감독은 어머니 체력을 믿었단다. “산에서 쓰러진 나무를 끌고 와서 도끼질을 하셨거든요. 2014년 히말라야부터 해발 5000m 넘는 티베트 고지까지 4년 여정이 고산 적응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괜찮으실 거라 믿었고 실제 괜찮으셨죠.”
 
“엄마 괜찮나~.” “그래~.” “안 춥습니꺼~.” “안 춥습니더~.” 카메라 뒤 아들과 경상도 억양으로 노래하듯 주고받던 그는 길에서 만난 낯선 이들에게도 오래 정든 사이인 듯 다정했다.
 
백발 노모는 길 가다 마주친 가난의 아픔에 기도했다. “밥 굶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세상천지 슬픔에서 헤매는 모든 인간, 즐겁게 좀 해주십시오. 부처님” 그 자신 겪었기에 헤아린 아픔들이었다.
 
“자라면서 본 어머니는 분식집에서 고등학생 형들한테 라면 팔며 고생하시던 모습이었어요. 어머니가 젊을 적 유망한 공무원이었단 걸 철들고야 알았어요. 경남, 창원, 진주 일대에서 서부 경남 이춘숙 여사 모르면 간첩이었다더군요.” 정 감독의 말이다.
 
1934년 태어난 이춘숙씨는 “내가 잘사는 것보다 국민이 잘살아야 한다”는 어머니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진주여고, 수도여자사범대학을 나와, 1956년 22세에 12대 1 경쟁을 뚫고 경남 진양군 농사교도소(현 농업기술센터) 최초 여성 공무원이 됐다.
 
“야(정 감독) 낳기 전엔 농촌지상주의였습니다. 문맹 퇴치한다고 방학 때 부락 가서 한글 가르쳤고. 농촌이 부강해야 대한민국이 잘 산다 믿고 살았죠.” 서른에 지인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서울서 한국은행을 다니다 고향 남해가 그리워 돌아온 남자였다.
 
40대 중반 공직생활을 그만둔 건 막내아들 때문이었다. “서울 외할머니댁에 저를 맡기고 한 달에 한번 오셨는데 헤어질 때마다 제가 붙잡고 울자 사표를 던지셨어요. 안 해본 일 없이 저희를 키우셨죠.”
 
카일라스 산비탈에서 쓰러진 이씨는 이렇게 되새기며 일어섰다. “서른일곱에 혼자 돼서 고통 겪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여기 못 올라가면 안 됩니다. 부처님, 도와주시옵소서.”
 
“태몽에 지구본 둘러멘 아이가 나왔다”는 그는 아들이 “정약용 할아버지 후예다운 인류학자, 이 나라에 필요한 박사가 되길 꿈꿨는데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다”고 했다.
 
어머니 뜻대로 경북대를 거쳐 캐나다 맥마스터대 문화인류학 유학까지 떠난 정 감독은 박사 과정 중 9·11 테러 등을 보며 학문에 회의가 들었단다. 귀국 후 방송 다큐 번역을 하다 2011년 처음 간 히말라야에서 카메라를 들게 됐다.
 
그런 아들과 함께할 어머니의 다음 소원은 북인도 보드가야 빈민들에게 쌀과 담요를 나눠주는 것. 노령연금을 매달 20만~30만원씩 빠짐없이 모으는 이유다.
 
“진작에 50대에 (오지에) 갔으면 수도관을 몇 동네라도 놔줬을 건데. 여생 90꺼정 가난한 나라 다만 한 군데라도 수도를 놔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물이라도 좋은 물 먹도록요. 내가 가더라도 정 감독한테 하늘이 복을 내려서 엄마가 하려던 수도를 한 마을, 한 마을 놔주는 게 평생소원입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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