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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연주는 죽은 텍스트를 상상력으로 되살리는 작업”

[아티스트 라운지] 피아니스트 손열음

전 세계 음악계가 멈춰선 올해, 한국에선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음악제가 무사히 끝났다. 7월 22일부터 8월 8일까지 열린 평창대관령음악제 ‘그래야만 한다’는 전 공연 전석 매진이라는 새 역사도 썼다. 거리두기 조치로 띄어 앉기를 시행하긴 했지만, 18일간 열린 전 공연이 매진을 기록한 건 2004년 첫 개최 이래 처음이다.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3년차
코로나19에도 전석 매진 기염

올 취소 공연 내년 초 다시 올릴 터
관객과 같이 사유하는 음악 하고파

 
3년째 예술감독으로 행사를 이끌어온 피아니스트 손열음(34)은 폐막 공연 ‘지금 아니면 다시는’에 직접 참여했다. 지휘자 정치용이 이끄는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PFO)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베토벤 생전에 있었던 어느 공연의 프로그램을 따온 특별한 공연이었어요.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마라톤 공연이었거든요. 베토벤이 지휘도 하고, 4번 협주곡 연주도 직접 했고, 교향곡 5, 6번을 초연한 공연이죠. 1808년 12월 22일 그 추운 날에 관객들이 5시간짜리 공연을 보러 모여들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날 공연을 그대로 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성악곡과 협주곡, 교향곡 한 곡씩만 가져와야 했죠.”

  
클라라 주미 강과 전국 투어도

 
손열음은 9월 클라라 주미 강과 함께 서울 롯데 콘서트홀, 고양 아람누리 등에서 듀오 콘서트로 전국 투어를 예정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장소협조 오드포트]

손열음은 9월 클라라 주미 강과 함께 서울 롯데 콘서트홀, 고양 아람누리 등에서 듀오 콘서트로 전국 투어를 예정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장소협조 오드포트]

내년 초 임기가 끝나는 손열음은 3대 예술감독으로서의 대미를 베토벤으로 장식할 계획이었다. 올 초 겨울음악제부터 내년 겨울음악제까지를 베토벤 3부작으로 구상했던 것. 하지만 이제 모든 게 불투명졌다. “준비과정에서 수정하고 번복하는 일이 너무 많아 힘들었어요. 국제음악제 성격상 해외 아티스트 초청이 제일 큰 부분이니까요. 겨울엔 여름음악제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구상 중인데, 지난 2월 취소된 2개 공연을 올리는 게 첫째 목표에요. 공연 직전에 취소돼 너무 아쉬웠거든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에 익숙했던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예술감독’은 도전이었다. 책상에 앉아 밤을 새우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 충돌을 겪는 일도 난생처음이었다. “피아노는 시작부터 무대 올라갈 때까지 혼자 하는 일이잖아요. 여러 사람과 합을 맞추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초반에는 쉽지 않았어요. 대신 그만큼 보람도 희열도 큰 것 같네요. 지역사회에도 보탬이 되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음악제가 되기를 희망했고, 대한민국 전체 음악계를 같이 고양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프로그래밍을 100% 제가 했는데, 곡 하나하나 찾아보고 아이디어 짜내면서 공부도 많이 했죠.”

 
9월에는 ‘절친’으로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과 듀오 콘서트로 전국 투어가 예정돼 있다. DECCA 레이블 듀오 앨범 발매를 기념한 2016년 전국 투어 이래 4년 만이다. “대학 때부터 친한 친구예요. 음악보다 먼저 인간적으로 잘 맞아 친해졌죠. 주미 시험 볼 때 반주 정도 해주다가 무대에 같이 선 건 2011년 대관령음악제가 처음이니까요. 이번엔 20세기 초반 작곡가들 작품으로 구성해 봤어요. 갑자기 재즈도 생기고 네오바로크, 12음기법 등 여러 사조가 한꺼번에 나온 멀티 스타일 시대죠. 라벨과 프로코피예프, 슈트라우스와 스트라빈스키라는 네 명의 작곡가도 동시대를 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스타일이 전혀 다르거든요. 그런 부분이 흥미롭지 않을까 해요.”

 
‘손열음’ 하면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떠오른다. 2011년 2위 입상 당시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신들린 듯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두들긴 뒤 엄청난 박수와 환호에 휩싸이는 장면은 우리 음악사에 남을 명장면이다. 하지만 그에겐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운동선수에게 올림픽 금메달이 끝맺는 느낌이라면 음악에서 콩쿠르란 등용문이죠. 한국인들이 대회를 좋아하고 경쟁적인 사회다 보니 더 주목받았지만, 전 그 이후가 힘들었어요. 한국인으로서 유럽 무대에 계속 서는 게 가능하지 않은 건 아닐까 싶기도 했죠.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은 자기들끼리의 사회가 견고한데, 그들에게 나란 존재가 과연 필요할까. 저한테나 그들한테나 그걸 증명할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지만,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토종 피아니스트’였던 손열음을 얘기할 땐 ‘엄마의 헌신’이 세트 메뉴다. 고교 교사인 어머니가 평일에 시간을 쪼개 원주에서 서울까지 매번 레슨을 데리고 다녔다는 이야기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냐’고 물으니 왜 그런지 ‘깔깔깔’ 웃는다. “아빠는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에요. 자유에의 갈망 같은 제 타고난 기질과 성향은 다 아빠한테서 왔죠. 음악성이요? 그건 그냥 하늘에서 온 거죠. 음악성이란 게 세습되는 건가요?(웃음) 아빠를 보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깨달은 게 많아요. 늘 가장 큰 성원을 보내주는, 제 가장 좋은 친구죠.”

 
‘자유로운 영혼’을 자처하는 그는 클래식 연주회에서의 엄격한 관람예절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단다. 올해 초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악장 사이 박수에 대한 물음에 “좋다고 생각한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좋다기보다는 그렇게 논란될 내용이 아니라 생각해요. 박수 치고 싶으면 치는 거죠. 물론 곡이 끝난 것처럼 박수를 치면 곤란하겠죠. 코스요리를 먹다가 중간에 자러 가면 곤란하겠지만, 잠깐 쉬는 걸 뭐라 하겠어요.(웃음) 공연문화가 300~400년 된 유럽은 오히려 다양해요. 개방적인 공연도 있고 엄격한 공연도 있는 거죠.”

 
“악장 사이 박수? 논란거리 아냐”

 
3월 이후 해외 투어 일정이 모두 취소되었다는 그는 대학 졸업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장기 체류하고 있다. 평소엔 쉴 새 없이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지만, 사실은 매주 일요일 새벽 TV에서 볼 수 있는 얼굴이다. 2018년부터 MBC ‘TV예술무대’ 진행을 맡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조금씩 찍어 두는 거죠. 유일하게 20여 년간 명맥을 유지하며 클래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잖아요. 묵묵히 사명감으로 임하는 제작진을 보며 감동을 정말 많이 받아요. 클래식 방송을 사수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몇백 년 전 쓰인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는 ‘클래식’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사람들이 계속 곱씹어보면서 사유하도록 여지를 주는 것이 고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클래식 연주란 죽어있는 텍스트를 되살리는 작업이라 생각해요. 어떻게 자신의 상상력을 담아서 생명력을 불어넣느냐가 고전음악의 새로운 문화가 된 거죠. 나라는 사람을 통해서 나오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고, 그게 곧 연주 음악의 매력이 되는 것 같아요. 제 색깔을 단정 짓긴 싫지만, 지향점이라면 답을 내려주는 음악 말고 질문을 던지는 음악이에요. 저는 함께 사유하게 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더 자세한 내용은 포브스 9월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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