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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다? 볼수록 흥미롭다? 감독도 도표 그리며 찍었다는 '테넷'

첩보액션 SF 영화 '테넷' 현장에서 주연 배우 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왼쪽부터).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첩보액션 SF 영화 '테넷' 현장에서 주연 배우 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왼쪽부터).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게 가장 좋은 관람법이란 말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SF 첩보영화 ‘테넷’(26일 개봉)엔 어쩌면 맞지 않는 얘기다. ‘인터스텔라’ ‘배트맨’ 시리즈로 이름난 그의 이 11번째 장편은 미래세력의 사주로 세계를 파괴하려는 악당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에 맞서 작전의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가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드는 첩보전을 그린다. 한번 봐선 이해가 잘 안 갈 만큼 시간과 사건이 복잡하게 뒤얽히다 보니, 보고 난 반응은 “너무 어려워서 지루하다”라거나 “여러 번 보고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로 나뉜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첩보SF
'테넷' N차 관객을 위한 안내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느껴요.” 주인공이 시간을 거스르는 개념 ‘인버전’을 처음 접하는 장면에서 과학자(클레멘스 포시)의 이 대사는 놀런 감독이 보내는 조언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처럼 “직감, 알겠어요”라고 멋지게 알아듣기에 ‘테넷’은 낯선 설정이 많은 영화다. 놀런 감독도 아이디어 숙성에 20년, 직접 각본을 쓰는 데 6~7년이 걸렸다니 오죽할까. “이 영화를 만들며 몇 년 동안 도표를 그리곤 했죠.” 그가 호주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한 말이다.  
 
알고 보면 이해를 돕는 딱 세 가지 키워드를 꼽았다. 일명, ‘테넷’을 여행하는 N차 관람객을 위한 안내서다. 스포일러가 가득하지만, 첫 관람부터 이해하며 보는 쪽을 택하겠다면 최대한 많이 알고 가서 첫 장면부터 눈 크게 뜨고 보는 것도 방법이다.  

※스포일러 주의:이하의 기사에는 관객에 따라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시간여행 아니고 인버전?

‘테넷’에서 시간을 역행하는 개념이 ‘인버전’이다. 시간을 뿅 하고 점프하는 기존 시간여행물과 달리 ‘사물의 엔트로피를 반전시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설명부터 어렵다. 그러니까 진짜 인버전이 뭐냐고? 좋다, 다 잊고 쉽게 생각하자. 한마디로 ‘되감기’다. 영화에서 인버전을 하려면 출입구가 두 개인 회전문을 통과해야 한다. 빨간 불빛 입구로 들어가면 현재로부터 멀어져 과거로 도착, 바로 옆 파란 불빛 출입구로 나오게 된다. 이를 통해 과거로 시간을 거꾸로 ‘되감아’ 들어가게 된다. 영화에선 이걸 인버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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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새 영화 '테넷'에서 주인공인 작전의 주도자와 닐(왼쪽부터).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새 영화 '테넷'에서 주인공인 작전의 주도자와 닐(왼쪽부터).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과거로 인버전한 존재는 그 과거를 실시간으로 살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작동하는 방식이 정반대다. 한 예로 인버전 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발사되는 게 아니라 이미 발사돼있던 총알이 총구로 빨려들며 타깃을 관통한다. 인버전한 사람은 거꾸로 걷고 말도 되감기처럼 하는 듯 들린다. 반대로 ‘인버전한’ 당사자, 즉 시간을 거슬러 점점 더 과거로 되돌아가고 있는 당사자에겐 오히려 온 세상이 되감기 하듯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새가 뒤로 날고, 흙먼지가 흙으로 돌아가는 광경을 보게 되는 것이다.  
 
또 특정 과거 시간대로 ‘점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회전문을 돌아 나와 과거에 일주일만큼 머무르며 역행해야 원하는 시간대에 다다를 수 있다. ‘테넷’에서 과거의 특정 시간대로 가야 하는 인물들이 하염없이 시간을 ‘때우듯’ 보이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거나, 어떤 순간에 맞추기 위해 “10분 남았다” 등의 대사가 나오는 이유다.  
 
회전문을 돌아 나와 인버전한 존재가 회전문을 다시 반대 방향으로 통과하면 되감기 모드를 해제하고 다시 정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때 역시 원래 살던 미래로 ‘점프’해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의 흐름만을 정방향으로 바꾸고 다시 미래를 향해 살아나가는 것이다. 다만, 인버전한 존재는 호흡기관 작동 원리도 거꾸로라, 공기 중 산소를 폐로 흡입할 수가 없어서 자신과 함께 ‘인버전된’ 산소 공급 기기가 필요하지만, 정방향으로 되돌아오면 이런 장치 없이 다른 과거 사람들과 똑같이 살 수 있다.  
 

설마 아까 그 남자가 인버전한 ‘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첩보액션 SF 영화 '테넷'에서 악당 사토르(오른쪽)가 아내 캣을 인버전을 위한 회전문 통로에서 위협하고 있다.[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첩보액션 SF 영화 '테넷'에서 악당 사토르(오른쪽)가 아내 캣을 인버전을 위한 회전문 통로에서 위협하고 있다.[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당연히 이런 원리라면 내가 머물고 있는 과거에, 미래에서 거슬러온 내가 공존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 탓에 화면 속 인물이 지금 그 시간대를 실시간으로 살고 있는 사람인지, 미래에서 거슬러 되돌아온 그 사람인지 헷갈린다. 겉으로 봐선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인버전 중인, 즉 되감기 되고 있는 상태라면 산소호흡기나 정반대 방향의 움직임이 티가 나지만, 과거로 인버전한 후 회전문을 반대로 통과해 되감기 모드를 해지한 상태라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댄다.  
 
그런데 ‘테넷’엔 실제 이런 식으로 여러 시간대 인물이 공존하는 상황이 많다. 놀런 감독이 보잉 747 비행기와 대형 격납고를 CG(컴퓨터그래픽) 아닌 실제로 폭발시킨 걸로 알려진 극중 오슬로 공항 작전 대목을 보자. 인버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주인공이 소개받은 동료 닐(로버트 패틴슨)과 함께 초기 작전에 뛰어드는 장면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첩보액션 SF 영화 '테넷'. 인버전한 상태에선 거꾸로 되감기되고 있는 과거의 산소를 자연스레 흡입할 수 없어 공기 제공 기기를 활용해야 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첩보액션 SF 영화 '테넷'. 인버전한 상태에선 거꾸로 되감기되고 있는 과거의 산소를 자연스레 흡입할 수 없어 공기 제공 기기를 활용해야 한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런데 여기서 복면 쓴 괴한과 격투를 벌인 후 어느 호텔 방에 나란히 줄무늬의 흰 셔츠를 입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조금 이상하다. 분명,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지금의 상태라면 주도자가 몰라야 할 법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더구나 닐은 “날 살려둔 건 이제 날 믿는다는 거냐”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한다. 그렇다, 이들은 방금 막 생애 첫 오슬로 공항 작전을 마치고 온 그들이 아니라, 훗날 또 다른 작전을 마치고 주인공이 닐의 정체를 의심하게 된 이후에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려 이 시간대로 다시 거슬러온 그들이다. 그러고 보면, 닐은 첫 만남부터 주인공의 음료 취향을 세세히 알고 있다. 마치 첫 만남이 아닌 것처럼.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킵 손이 ‘인터스텔라’에 이어 대본 검토에 참여했다는 이번 영화에 다소의 무리수가 있다면 바로, 과거를 사는 그 자신이 미래에서 인버전해 그 시간대로 거슬러온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면 인버전한 버전의 나는 소멸한다는 설정이다. 이 때문에 과거로 되돌아갈 땐 자기 자신을 만나도 못 알아보도록 철저한 동선 체크나 복면 위장 등이 필수. 이 때문에 관객도 미래에서 온 등장인물들을 알아보기 힘든 장면이 있다. 그래도 놓치지 말고 봐야 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영화 오프닝 오페라하우스 테러 현장에서 주인공을 돕는 주황색 고리를 매단 남자다. 이 주황색 고리를 알아보느냐 마느냐에 따라 영화 말미 결정적 장면의 감흥이 완전히 다르다.  
 

열쇠는 사토르 마방진…왜 ‘테넷’인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새 영화 '테넷'. 오페라 하우스 폭파 장면.[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새 영화 '테넷'. 오페라 하우스 폭파 장면.[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 영화는 주인공에게 이름이 없다. 주인공‧주도자란 뜻의 영어단어(Protagonist)로 호명될 뿐이다. 그를 무장시키는 단 하나의 단어가 바로 제목인 ‘테넷(Tenet)’. 주의‧교리, 다시 말해 강한 신념을 뜻한다. 그가 처음 작전에 발탁된 게 무고한 희생을 막으려는 공명심, 자기 죽음을 불사한 정의감인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육면 퍼즐 큐브처럼 세계를 파괴하려는 세력에 맞서 하나를 바로잡으면 다른 하나가 틀어져 영원히 시간과 시간 사이를 오가야 하는 이 끝나지 않는 고통의 작전은 이 정도 신념이 없으면 버텨낼 수 없다.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회문(回文) 구조의 이 테넷이란 단어는 사토르(SATOR, 씨 뿌리는 자) 아레포(AREPO, 쟁기) 테넷(TENET, 붙잡다) 오페라(ORERA, 일) 로타스(ROTAS, 바퀴) 등 라틴어 단어로 이뤄진 정육면체의 표 ‘사토르 마방진’ 가운데에 십자가 형태로 박힌 글자다. 이 다섯 개 단어 모두 미래 세력을 등에 업은 악당이자 폭력 가장의 이름(사토르), 오페라 하우스 테러(오페라), 인버전을 하는 회전문 기기 이름(로타스) 등으로 영화 곳곳에 출몰한다. 이 표는 4세기부터 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요한복음서의 ‘심는 자 따로 있고 거두는 자 따로 있다’는 말씀을 뜻한다는 해석도 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새 영화 '테넷'. 주인공과 닐의 첫 만남. 닐은 주인공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새 영화 '테넷'. 주인공과 닐의 첫 만남. 닐은 주인공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그런데 영화를 보노라면 의문이 든다. 도대체 왜 미래세력은 과거를 파괴하려는 걸까. 그 단서는 악당 사토르의 대사 “바다를 마르게 하고…” 등을 통해 과거의 잘못으로 황폐화한 삶의 터전 문제라는 게 암시된다. 놀런 감독의 SF ‘인터스텔라’는 20세기의 여러 잘못으로 붕괴한 지구를 떠나 우주에 새 터전을 마련해야 하는 미래를 그려 경고했다. ‘테넷’의 주인공은 과거를 몰살해야 한다고 믿는 자들에 맞서 과거와 함께 미래도 살리려고 고군분투하는 희망의 실마리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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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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