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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쿼티자판으로 보는 도시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발바닥은 좁되 엉덩이는 넓적하고 등이 편편하다. 인간은 걷기보다 누우려 한다. 인간은 게으르며 더욱 게을러지고자 한다. 오늘의 게으름을 내일로 미루지도 않는다. 더 게을러질 수 있는 내일 대신 그냥 오늘의 게으름을 선택한다. 바꾸는 게 더 귀찮은 것이다. 인간은 모일수록 더 게을러진다. 그래서 사회는 잘 바뀌지 않는다.
 

코로나가 강요한 사회적 실험
도시는 이동효율 확보의 공간
좁은 공간에 모여 사는 가치
이동 강요 도시는 나쁜 도시

핸드폰이나 컴퓨터 자판을 보자. 영문자판 왼쪽 위에 QWERTY가 모여있다. 사연은 기계식 타자기 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초기 타자수들은 당연히 속도가 경쟁력이었다. 그런데 자판을 빨리 두드리면 먼저 친 활자와 다음 활자가 꼬이는 사태가 빈발했다. 제조업체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치기 어려운 자판 글자 배열. 그래서 모음은 좌우 분산배치되었고 연속 사용빈도가 특히 높은 ER은 고약하게 왼손하고도 저 위에 붙어 자리를 잡았다. 쿼티자판의 탄생설화다.
 
기계식 타자기가 전자식으로 바뀌고 컴퓨터, 핸드폰으로 진화했다. 타자수가 사라지고 독수리타법족·엄지족이 등장해도 불편한 자판배열은 굳건하다. 편리한 자판보다 익숙한 자판을 계속 쓰겠다는 게으름이다. 이걸 사회적 관성이라 부를 것이다. ‘자판’은 무엇인가. 문자를 입력하는 도구다. 그래서 쿼티자판은 자판이다. 그렇다면 ‘좋은 자판’은 무엇인가. 문자를 편하고 빠르게 입력할 수 있는 도구다. 이때 쿼티자판은 좋은 자판은 아니다.
 
게으른 인간의 등을 떠밀어 사회혁신을 강요하는 기제가 있으니 전쟁과 역병이다. 지금 역병 창궐로 전 세계가 사회적 실험에 돌입했다. 외출억제·이동억제·집회억제. 이 덕분에 사회와 도시의 근본을 성찰하는 기회도 생겼다. 다시는 이전 사회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일부는 그럴 것이다. 유럽의 흑사병이 낳은 부산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뉴턴의 〈프린키피아〉다. 세계관이 바뀐 것은 틀림없다. 콜레라로 사회의 위생관이 바뀌고 도시의 상수원이 정리된 것도 맞다.
 
지금 전 세계 여행·운항·이동 업체가 도산위기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미국 몇 기업의 가치상승이다. 아마존·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애플·테슬라 등이다. 이들 기업을 묶어 교집합을 추리면 이렇게 수렴한다. 이동의 대안. 운반이거나 전송일 수도 있다. 물품·정보를 더 싸고 편하고 빠르게 옮겨주는 회사들. 게으른 인간을 더욱 게으르게 해줄 유통대안을 내세운 기업들이다. 인간이 이동해야 하는 산업이 대체되는 실험 중이다. 산이 다가오지 않자 산에게 걸어간 것은 마호멧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 기업 덕에 이제는 기어이 산이 인간에게 오길 기대하는 지경이 되었다.
 
코로나 덕에 어떤 종교는 신이 아니라 인간을 만나는 게 목적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경기장은 경기를 보는 게 아니고 모여 아우성치는 곳이었다. 음악당은 더 좋은 음향의 음악을 듣는 게 아니고 어떤 연주자·공연자의 팬을 자임하러 가는 곳이었다. 본질상 경험을 요구하는 것들은 코로나 이후에도 변할 수 없다. 마호멧 시대가 지났어도 여행은 우리가 결국 거기 가야하는 것이므로 여행은 다시 여행이 될 것이다. 진료카드는 전송되어도 모니터에 주사바늘을 꽂지는 못할 일이다. 큰 티비로 영화를 보던 사람들도 초대형 화면의 경험을 찾아 기어이 영화관으로 나설 것이다.
 
비대면강의 실험으로 대학의 존재가치 의심도 생겼다. 그러나 대학은 학원이나 교습소가 아니다. 대학은 아테네학당과 볼로냐대학 시대부터 지금까지 다음 세대 구성원들이 공동체를 체험하고 형성하는 기관이었다. 그 가치는 여전히 굳건하며 지식전달은 그중 일부일 뿐이다. 뉴턴이 대학에서 축적한 지적 관계망이 없었다면 〈프린키피아〉도 없었다. 대학 공간은 강의실 외에 도서관·동아리방·식당·벤치 등으로 이루어진다. 대학은 코로나 이후에도 오프라인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건강하다.
 
마지막 질문은 도시로 향한다. ‘도시’는 무엇인가. 도시는 이동이 귀찮은 게으른 인간들이 게으름 구현 극대화를 위해 만든 초대형 구조물이다. 그래서 도시는 인간이 모여사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좋은 도시’는 무엇인가. 게으른 인간들이 가장 쉽고 빠르고 편하게 자신들의 물품·정보를 교환하며 사는 공간이다. 그래서 좋은 도시는 더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더 빽빽이 모여 사는 곳이다. 사회구성원의 집합적 게으름은 극복할 대상이 아니고 따라야 할 목표다. 그 결과를 표현하는 단어가 경제성·생산성·효율성 등이다.
 
지구와 한반도가 두루마리 휴지가 아니기에 개구리 뜀뛰듯 만드는 도시계획은 그만두어야 한다. 우리는 정치적 이해로 여기저기 뿌려 도시를 만들었고 그 계획도시의 모델은 미국에서 배운 교외형 도시들이었다. 전 세계 대비 4%의 인구가 20%의 석유를 소비하는 나라의 도시. 널찍한 땅에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을 구분하여 배치한 도시. 불편한 교환 때문에 불필요한 이동이 강요되고 결국 화석연료를 불태워야 하고 기후변화를 부추기는 도시. 그런 도시를 이렇게 부를 것이다. 나쁜 도시.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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