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센 그립'과 '버럭 꼰대' 사이···"무섭다" 말도 나온 이해찬 2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8일로 2년 임기가 끝나는 이해찬 대표 체제에서 더불어민주당을 관통한 키워드로 ‘단일대오’를 꼽을 수 있다. 이 대표는 2018년 전당대회 수락 연설문에서 “우리 당은 하나가 될 때 승리하고 분열할 때 패배했다. 철통 같은 단결로 문재인 정부를 지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이 말을 철저히 실현했다. 23일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민주당 정당사에 처음 있는 ‘원룰’ 공천으로 잡음 없는 ‘원팀’ 승리를 끌어냈다”고 이 대표를 평가했다.
 
다만 그 부작용으로 “당내 민주주의가 사라졌다”(민주당 보좌진)는 얘기가 적잖았다. 대표 취임 후 ‘버럭’이라는 별명을 굳히면서 철통 리더십 이면에 깔린 ‘꼰대 속성’이 드러났다는 불만이 나왔다. 지난달 28일 민주당 차기 최고위원 후보들은 이 대표의 아쉬운 점으로 “버럭하는 것은 배우기가 좀 그렇다”(노웅래), “무섭다.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하고 충고를 듣기 힘들다”(이원욱), “새로운 상상력이나 도전에 대해서는 대부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면이 강하다”(김종민)는 점을 꼽기도 했다.
 

7선 ‘군기반장’ 이해찬

 
그럼에도 이 대표 재임시절 민주당이 새 역사를 창출한 것은 누가 뭐래도 그의 공로가 크다. 이 대표가 2년 전 당대표 예비경선 때 자신을 소개한 말이 이랬다.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을 일곱 번 했고, 김대중 대통령 국민의 정부에서 장관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는 책임총리라는 명예도 얻었다.” 
 
그는 30여년 정치인생의 마침표로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여당 대표직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 시대의 포로가 돼 마지막 소임을 다하겠다”며 “강력하고 유능한 여당”을 내세워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국무총리를 거친 7선 당대표가 주는 무게감은 청와대·정부에도 컸다. 취임 닷새 만에 첫 고위 당·정 협의회(2018년 8월 30일)에서 “3주택 이상이거나 초고가 주택 등에 대해 종부세 강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논의를 주도했고 이는 그 해 9·13 부동산대책에 곧바로 반영됐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8년 9월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8년 9월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여당이 청와대를 끌고 가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 대표가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했을 때 야당에선 “문재인 정부의 상왕(上王)”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그는 부동산 정책뿐 아니라 소득주도성장, 북한, 적폐 청산, 공공기관 이전 등 국정 전반을 아울러 구체적 지침을 제시했다. 그해 10월에는 노무현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직접 방북해 리선권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 등과 만났다. 지난해 '조국 사태' 국면에서 이 대표는 한 박자 빠르게 조국 사수와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으로 방향을 잡았다. 민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진영 내 이견이 내홍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해 총선을 안정적으로 치를 수 있었지만 조국 사태에 대한 대응이 중도층과 청년층이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당사 새로 쓴 180석

민주당 대표실 관계자는 이 대표가 “모든 역량을 다 쏟아내고 가겠다는 마음이 컸다”며 “떠난 뒤에도 작동할 근본적 시스템·구조를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민주당은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안 등을 4+1 범여 공조로 통과시켰다.
 
‘시스템 공천’을 통한 총선 압승은 이해찬 체제의 역량 총집결 성과물로 평가받는다. 당내 비주류로 분류되는 의원들도 “대선 이후 (국회) 과반도 안됐던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총선 승리를 이끈 것만은 인정해야 한다”(수도권 중진)고 했다. 이 대표가 취임 전부터 본인 불출마를 공언한 점은 “사심 없이 일했다”는 말을 듣는 배경이다. 비례위성 정당 창당을 둘러싼 이견, 영입 인재들의 잇딴 구설 등 잡음도 있었지만 모두 조기에 진화된 걸 두고는 “이해찬 카리스마여서 가능했다”는 평이 나온다.
 
 
이해찬 대표(왼쪽 두번째)가 4·15 총선 당일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종합상황판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시민당 이종걸 선거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이 대표,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공동상임선대위원장. [뉴스1]

이해찬 대표(왼쪽 두번째)가 4·15 총선 당일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종합상황판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시민당 이종걸 선거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이 대표,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공동상임선대위원장. [뉴스1]

  

거침없는 발언으로 종종 구설에 올라

하지만 이 대표는 거침없는 발언으로 적잖은 설화(舌禍)를 일으켰다. 2018년 12월 당내 장애인위원회 발족식에서 “정치권에 정신장애인들이 많다. 신체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사과한 일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지난 1월 “선천적인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나와서 의지가 좀 약하다”고 해 또 한차례 장애인 비하 논란에 시달렸다. 최근에는 고 박원순 시장 상가에서 취재기자를 향해 “XX자식”이라고 한 일, 세종시를 찾아 “서울은 천박한 도시”라고 하면서 구설에 올랐다.
 
“국민들을 위한 최고 수준의 협치를 추진하겠다”던 취임 초 다짐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여당이 지난해 1야당을 배제하고 선거법·공수처법을 처리하면서 여야 협치구도는 완전히 깨졌고, 21대 국회에선 여당의 상임위원장 싹쓸이가 이어지면서 여야의 갈등은 최악의 수준으로 치달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호우피해 대처상황 점검을 하고 있다. [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호우피해 대처상황 점검을 하고 있다. [뉴스1]

 
이 대표는 대표직에 물러난 뒤에도 당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한 측근은 “이 대표가 퇴임 후에도 당분간은 여의도 정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두 달 전 국회 인근에 사무실을 둔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민주당 상임고문도 겸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이해찬 특유의 ‘센 그립(장악력)’이 앞으로 어떻게 발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심새롬·김홍범 기자 saerom@joongang.co.kr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