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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 숨은 바이든" 대놓고 포토샵 조작한 트럼프 광고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하이오주 군부대를 방문해 전차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영상 캡처]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하이오주 군부대를 방문해 전차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영상 캡처]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차 오하이오주의 육군부대를 방문했을 때다. 전차들을 배경으로 연설하다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꺼냈다.
 
"저 뒤에 탱크를 타보고 싶지만 안 그러겠습니다. 저 탱크를 탔다가 완전히 망했던(Tanked) 사람이 생각나네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사람은 과거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마이클 듀카키스다. 이야기는 1988년 미국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화당의 조지 H.W. 부시 부통령과 민주당의 듀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맞붙었다. 딱 지금처럼 전당대회가 끝나고 11월 선거일을 향해 전력 질주를 시작했을 때였다. 듀카키스 측은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었지만, 국방· 안보 분야가 걱정됐다.
 
대학 졸업 후 2년 동안 군 복무를 했다 해도 2차대전 참전 용사에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부시 후보 앞에 내밀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다 미시간주 스털링하이츠의 전차 공장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주저 없이 68t의 육중한 M1A1 에이브럼스 전차에 올라탔다. 달리는 전차 위에서 작전을 지휘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 이벤트는 이내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된다. 부시 후보 측에서 이 영상에 음울한 내레이션을 입힌 뒤 오히려 자신들의 선거 광고로 만들었다.


"마이클 듀카키스는 미국이 개발한 모든 방어시스템을 반대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전투기 개발을 반대했습니다.  
미사일 시스템에 반대했습니다.  
(중략)
그런 그가 우리의 군 통수권자가 되려고 합니다.  
미국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습니다."
 
1988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H.W. 부시 후보 측이 만든 네거티브 선거 광고. 전차를 타고 있는 상대편 듀카키스 후보의 모습 위에 '미국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문구를 넣었다. [유튜브 캡처]

1988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H.W. 부시 후보 측이 만든 네거티브 선거 광고. 전차를 타고 있는 상대편 듀카키스 후보의 모습 위에 '미국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는 문구를 넣었다. [유튜브 캡처]

 
특히 마지막 문구가 나갈 때 탱크 위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듀카키스의 모습은 처연해 보일 정도였다고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선거를 한 달도 남겨두지 않고 나간 이 광고의 반향은 대단했다.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지지율은 역전됐고 결국 그해 대선의 승자는 부시가 됐다.
 
미 선거 역사에서 '탱크 광고(Tank ad)'라는 고유명사로 남은 이 해프닝의 더 큰 문제는 내레이션 내용이 대부분 근거가 없었다는 점이다. 듀카키스는 "모든 게 다 거짓말"이라며 "부시의 네거티브는 지긋지긋하다"고 맞섰지만 이미 전세를 되돌리기엔 늦었다.
  

포토샵으로 조작한 트럼프 대선 광고 

지금 2020년 미국 대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달 초 트럼프 캠프에서 만든 '델라웨어'라는 선거 광고다.
 
"델라웨어의 깊은 곳에 조 바이든은 자기 집 지하실 깊은 곳에 혼자 앉아 있습니다. 숨어서, 나약해진 채…바이든은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트럼프와 달리 야외 활동을 최소화 하고 있는 민주당 바이든 후보를 공격하는 내용이다. 지하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사진, 이마를 긁으며 곤혹스러워하는 모습,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떨군 채 홀로 앉아 있는 사진 등을 가져다 썼다. 그런데 셋 다 조작이었다.
 
첫 번째 사진은 일단 바이든 집의 지하실이 아니었다. 아이오와주 코랄빌 시장 집을 찾았을 때 방 안에 지지자와 기자들이 많아 의자를 양보하며 바닥에 잠시 앉았던 것이다. 트럼프 측은 바이든 뒤에 있던 사람을 포토샵으로 아예 지워버렸다.
  
이달 초 트럼프 캠프가 내놓은 선거 광고 '델라웨어'의 한 장면. 바이든 후보가 지하실로 보이는 곳 바닥에 외롭게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포토샵으로 조작한 사진이다. [유튜브 캡처]

이달 초 트럼프 캠프가 내놓은 선거 광고 '델라웨어'의 한 장면. 바이든 후보가 지하실로 보이는 곳 바닥에 외롭게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지만 포토샵으로 조작한 사진이다. [유튜브 캡처]

트럼프 캠프의 선거 광고가 논란이 되자 ABC 기자가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며 광고 내용을 반박하는 트윗을 올렸다. [트위터 캡처]

트럼프 캠프의 선거 광고가 논란이 되자 ABC 기자가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며 광고 내용을 반박하는 트윗을 올렸다. [트위터 캡처]

 
두 번째는 야외 공원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하던 장면이었다. 
잠깐 이마를 긁었는데, 역시 포토샵으로 마이크를 지워버리고 배경도 숲이 아닌 지하실처럼 만들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선거 광고 영상에서 바이든 후보가 잡고 있는 마이크와 뒷 숲 배경을 포토샵으로 지워버렸다. [유튜브 캡처]

트럼프 캠프 측은 선거 광고 영상에서 바이든 후보가 잡고 있는 마이크와 뒷 숲 배경을 포토샵으로 지워버렸다. [유튜브 캡처]

 
세 번째 사진은 집 근처 교회에서 기도하는 장면을 고뇌하는 모습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트럼프 캠프의 선거 광고 영상에서 상대편 바이든 후보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홀로 고뇌하는 장면으로 둔갑시켰다. [유튜브 캡처]

트럼프 캠프의 선거 광고 영상에서 상대편 바이든 후보가 교회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홀로 고뇌하는 장면으로 둔갑시켰다. [유튜브 캡처]

 
현장 기자들의 반발과 팩트체커들의 '거짓 판정'이 잇따랐지만, 이 광고는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의 유튜브 공식 계정에 남아 있다.
 
"최고의 영상. 속 시원하다"는 반응부터 "사진에 문제가 있더라도 내용이 사실인데 무슨 상관이냐"는 댓글이 올라 있다.
 
히스패닉 유권자를 겨냥한 스페인어 선거 광고도 논란이 됐다. 식품업체인 고야 푸드의 최고경영자(CEO)인 로버트 우나누에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자 바이든이 주도해 이 회사 제품 불매운동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고야 푸드는 미국 내 히스패닉계 기업 중에는 가장 큰 규모다. 이민자들의 표심을 자극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 팩트체커는 "민주당에 불매운동을 주장한 의원이 있지만, 바이든은 포함돼 있지 않다"며 거짓 판정을 내렸다.
 

소셜미디어 시대 '사상의 자유시장' 기능에 의문 

미국 선거에서 노골적인 거짓 네거티브 광고는 항상 논란이었다. 그래도 계속되는 건 역시 수정헌법 1조에 따른 '표현의 자유' 때문이다.
 
잘못된 정보를 흘리더라도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한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에서 충분히 걸러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런 뿌리 깊은 믿음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뉴요커지는 가짜 뉴스 관리에 소극적인 페이스북 문제를 다루면서 "소셜미디어에선 (허위 선거 광고가) '사상의 자유시장'을 비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가 일부 지지층 사이에서만 돌면서 좀처럼 공개적인 토론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유세장에서 30년 넘은 일화를 갑자기 꺼내 든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그때의 전략을 다시 쓰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에 맞서기는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그때는 반박할 채널이 너무 부족해서 그랬다면, 지금은 너무 넘쳐서 그렇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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