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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 때도 했는데…정치풍자 못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

개그맨 김영민씨는 21일 ’개그맨이 지금보다 대통령을 자유롭게 풍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개그맨 김영민씨는 21일 ’개그맨이 지금보다 대통령을 자유롭게 풍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TV 개그 프로그램의 묘미 중 하나는 정치·사회 풍자다. 노태우 정부 들어서면서 본격화됐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을 통해 권위적인 ‘5공 시대’에 대한 청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고(故) 김형곤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같은 풍자극이 나오는가 하면 최병서 등의 유명 정치인 성대모사가 인기를 끌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개그 콘서트’ 등에서 풍자는 이어졌다. 그런데 지금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정치 풍자 코너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 그럴까.
 

개그맨들이 말하는 ‘풍자 실종 시대’
과거엔 정치 입장 떠나 모두 박수
팬덤정치 시대, 비판을 모욕 여겨
정부 비판하는 뉘앙스만 비쳐도
지지층 좌표 찍고 한꺼번에 공격

“지금 사회 분위기가 정치 풍자를 하려면 국민의 절반은 적으로 돌릴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KBS2 ‘개그콘서트’에서 ‘내 아를 낳아도!’라는 유행어로 인기를 얻었던 개그맨 김시덕의 이야기다. 그는 21일 통화에서 “예전엔 정치인을 풍자하면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모두 재미있어하며 박수를 쳤는데, 이제는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불편함’이 많은 시대이다 보니 개그맨들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그맨은 “과거 김형곤·이주일 선배도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주요 정치인을 개그 소재로 다루고 희화화했는데, 지금은 소위 ‘6공 시대(노태우 정부)’보다 정치 풍자를 못 하니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라며 “정부 비판 뉘앙스만 발견돼도 지지층이 떼로 몰려다니며 소위 ‘좌표’를 찍고 개인 SNS를 털기 때문에 누구도 정치풍자를 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5년 KBS2 ‘개그콘서트’ 중 ‘민상토론’의 일부. [유튜브 캡처]

2015년 KBS2 ‘개그콘서트’ 중 ‘민상토론’의 일부. [유튜브 캡처]

소위 ‘팬덤’ 정치가 강화하고 정치인에 대한 극단적 지지세력이 등장하면서 풍자를 모욕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다. 개그우먼 김영희씨는 지난해 10월 팟캐스트 ‘육성사이다’에서 출연진들과 ‘금수저’를 주제로 농담을 주고받다가 “지금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조국 딸 느낌 나요. 박탈감 느껴요”라고 말했다가 비난 여론에 밀려 결국 방송을 중단했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솔직히 부동산 실패와 고위공직자 다주택 보유, 조국 사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등 풍자 소재가 적지 않다”면서도 “군사정권처럼 압박을 주는 건 아니지만 이걸 다뤘을 때 분위기를 아니까 아이디어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나마 유튜브에서 풍자는 이어진다.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 김영민은 지난 4월 ‘내시십분’이라는 채널을 만들었다. 과거 ‘개콘’의 ‘감수성’이란 코너에서 맡은 내시 역할에서 따온 제목이다.
 
‘내시십분’의 대표 코너 ‘김제동화’는 유명 동화를 통해 정치 세태를 풍자한다. 11일 ‘알라딘과 요술램프’에선 “지이니는 새로운 부동산 정책을 만들어 집값을 올려줬지요”라며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꼬집었다. 램프의 요정 ‘지이니’는 디즈니 만화 ‘알라딘’의 램프 요정 지니와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키는 ‘이니’의 합성어다. 또 만화 ‘알라딘’의 OST ‘A whole new world’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해석해 부르기도 했다.
 
4월 개설한 ‘내시십분’ 구독자는 11만명. 항의나 비난 댓글도 만만치 않다. “마음고생이 너무 심해 후배들에겐 (정치풍자) 하지 말라고 만류한다”는 그에게 왜 정치 풍자를 다루고 있는지 물어봤다.
 
‘개그콘서트’에서 코미디40년 특집으로 방영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사진 KBS]

‘개그콘서트’에서 코미디40년 특집으로 방영한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사진 KBS]

정치 풍자를 다루게 된 이유는.
“코미디가 시사를 다룰 때 가장 빛이 나지 않나. 대통령하고 ‘맞짱’뜨고 당당할 수 있는 직업은 코미디언뿐이라고 생각해왔다. 코미디는 현실을 담아 비틀어야 맛이 나는데 어느 순간 시사 코미디라는 것이 이 시대에서 사라지고 있더라. 때마침 유튜브가 뜨기 시작해, ‘저기서 시사 코미디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여의도 텔레토비’를 못마땅하게 여긴 뒤부터 시사 코미디가 사라졌다고 한다.
“박 대통령 때도 ‘개콘’엔 정치풍자 코너가 있었다. 다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정치풍자를 놓고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갈등이 생길 일조차 없다. 시도조차 못 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폭소클럽’으로 데뷔했는데 지금처럼 눈치를 보고 정치 풍자를 하기 힘든 적은 없었다.”
 
‘개그콘서트’가 낮은 시청률로 고전하다가 종영됐다.
“코미디는 사회 현상이라는 재료를 담아내 웃긴다. 그런데 사회 현상을 못 담으니 재료가 취약해진다. 과거 김형곤 선배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은 권위적인 기득권의 모습을 ‘비룡그룹’이라는 틀 안에서 담아 히트를 쳤다. 지금 세상이 그때와 크게 바뀌었을까. 세상은 다르지 않은데 그것을 비꼬고 풍자하면 지지자들은 ‘좋아졌는데 왜 저러냐’고 화를 낸다. 현상을 숨길수록 코미디가 이를 풍자하고 다뤄야 한다. 그걸 못하니 외면받은 것이다.”
 
‘내시십분’에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항의도 적잖다. 보수우파에 우호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원래 코미디는 진보 정권을 만나면 보수적, 보수 정권을 만나면 진보적이라고 양 지지층에게 원망을 듣는다. 요즘 내가 문재인 정부를 풍자하고 패러디하니까 집단으로 찾아와 댓글을 쏟아낸다. ‘어디 감히 너 따위가…’ ‘못 배운 딴따라 것들이…’라며. 그러면서도 ‘내시십분’ 채널에 매일매일 온다.”
 
감당하기 어려운 공격도 있나.  
“악성 댓글을 도배하고, e메일 등으로도 계속 괴롭힌다. 허위사실도 뿌린다. 가끔 후배들이 이런 채널 만들고 싶다며 문의하면 그동안 받은 공격들 보여주면서 만류한다.”
 
그렇게 힘든데 왜 하나.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개그맨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통령 욕을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조롱을 봐라. 현 정부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전 세계가 빵빵 터지는데 왜 우리만 안 되나. 대한민국 법이 있다. 선을 넘으면 고소·고발로 알아서 잡으러 온다. 개그맨들이 자유롭게 대통령 풍자하면 세상이 더 좋아지면 좋아졌지 나빠질 일은 없지 않나. 오죽하면 나 같은 ‘못 뜬’ 개그맨이 나서겠나.”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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