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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등 8곳 연쇄폭파···日 공격한 그들은 일본인이었다

 1974년 8월 20일 낮 12시 45분,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1층에 놓인 화분에서 시한폭탄이 터진다. 엄청난 위력으로 1층과 현관이 거의 파괴됐고, 건물에서 일하던 직원과 거리를 지나던 행인 등 8명이 사망, 37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일본 역사상 최악의 폭탄 테러로 기록된 '미쓰비시중공업 폭파사건'이다.
 

20일 개봉 다큐멘터리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1974~75년 일본서 일어난 기업 연쇄폭파사건 조명
현재에 안주해 과거 역사 잊은 일본사회에 경종
"방식은 틀렸지만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이 많아"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한 장면. 지원자들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조직원들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꾸준히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활동을 했다. [사진 감픽처스/아이엠]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한 장면. 지원자들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조직원들이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꾸준히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활동을 했다. [사진 감픽처스/아이엠]

 
한달 후, 이 사건을 자신들이 일으켰노라 주장하는 단체가 나타난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東アジア反日武装戦線)'이라는 이름의 이 단체는 성명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미쓰비시는 과거 식민주의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중추로 기능하면서, 사업이라는 가면 아래 시체를 뜯어먹는 기업이다. 이번 폭파는 미쓰비시로 대표되는 일제의 침략기업, 식민자(植民者)들에 대한 공격이다."
 

일본을 공격한 일본인들  

폭파는 이어진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란 이름 하에 '늑대', '대지의 엄니(어금니)', '전갈'이라는 조직명을 내세운 청년들이 1975년 5월까지 8곳에서 잇달아 폭탄을 터뜨렸다. 미쓰이 물산, 가지마 건설, 하자마구미…. 모두 식민지 시절 조선과 중국 등에서 노동자들을 강제징용해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거나 학살을 저질렀던 전범 기업들이었다.
 
이후 조직에 가담한 이들의 정체가 밝혀지자 일본은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반일'을 기치로 내건 이들이 모두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운동권 출신의 대학 중퇴생, 한국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 회사원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 지배로 성장한 기업들을 폭파함으로써 과거에 책임을 지지 않는 일본의 현재를 드러내려 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일본 기업들이 여전히 아시아를 무대로 또 다른 식민 전략을 펴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멤버들이 수감돼 있는 도쿄 구치소. [사진 감픽처스/아이엠]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멤버들이 수감돼 있는 도쿄 구치소. [사진 감픽처스/아이엠]

 
20일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감독 김미례)은 '가해국' 일본의 정체성을 들춰내며 폭력으로 싸우려 했던 일본인들의 과거의 현재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잊혀졌지만..아직도 붙어있는 수배 전단 

한국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이들의 삶은, 일본에선 거의 잊혀진 역사다. 무고한 희생자를 낸 '생각 없는 폭탄 마니아들'로 기록됐을 뿐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 곳곳에는 아직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건 후 35년간 도주 중인 '전갈' 멤버 기리시마 사토시(桐島聡)의 지명수배 전단은 지금도 일본 전역에 붙어있다.
 
기리시마를 제외한 나머지 8명은 체포됐고, 이 중 1명은 품에 넣고 다니던 청산가리를 먹고 사망했다. 1명은 옥중에서 세상을 떠났고 2명은 아직 감옥에 있다. 2명은 출소했다. 일본 언론에 단체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2017년, 이 조직에 가담했던 에키타 유키코(浴田由紀子)가 석방됐을 때였다. 
 
70년대 일본기업 연속 폭파사건으로 지금도 수배 중인 기리시마 사토시의 지명수배 전단. [사진 일본 경시청 홈페이지]

70년대 일본기업 연속 폭파사건으로 지금도 수배 중인 기리시마 사토시의 지명수배 전단. [사진 일본 경시청 홈페이지]

 
'대지의 엄니' 멤버였던 에키타 유키코는 스물다섯인 1975년에 체포됐다가 1977년 '요도호 사건'을 일으킨 일본 좌파 테러단체 '적군파'의 석방 요구로 풀려났다. 이후 중동으로 건너가 적군파 활동에 가담했으나 1995년 일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잡힌다. 그리고 67세가 된 2017년에야 감옥에서 나왔다. 함께 중동으로 갔던 두 사람은 아직도 국제 수배 중이다. 
 

"과거 돌아봐야"...남아있는 지원자들 

영화 속에서 에키타 유키코는 석방 후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테러리스트가 오면 곤란하다'는 주민들의 반대에 가로막힌다. 일본인들에게 아직도 이들의 행위에 대한 깊은 반감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들의 방법은 과격했고, 그래서 일본 사회에서 배척당했다. 사건에 관여했던 이들 역시 영화 속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인명을 희생시킨 데 대해 참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일본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인 이규매(오른쪽 첫번째), 박재훈 씨(두번째)가 2019년 2월 15일 피해자의 사진을 들고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에 있는 미쓰비시(三菱) 중공업 본사 앞에서 지원단체 관계자와 함께 서 있다. [연합뉴스]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인 이규매(오른쪽 첫번째), 박재훈 씨(두번째)가 2019년 2월 15일 피해자의 사진을 들고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에 있는 미쓰비시(三菱) 중공업 본사 앞에서 지원단체 관계자와 함께 서 있다. [연합뉴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늑대' 부대 소속원의 친척으로 일본 식민지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오타 마사쿠니다. 그는 영화 개봉을 기념해 열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감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부대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 오타 마사쿠니. [사진 감픽처스]

수감된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부대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는 오타 마사쿠니. [사진 감픽처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당시 반성이 없던 일본인들에게 근대 일본의 식민지 문제를 자각하게 만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난 30년간 일본 사회에서는 민족적인 우파 세력이 확장돼 왜곡된 사고방식이 널리 퍼지게 됐다."
 
미쓰비시·일본제철 강제징용 문제는 2020년에도 청산되지 않은 채 한·일간의 뜨거운 갈등 요인으로 남아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15일 태평양전쟁 종전일에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가해'를 언급하지 않은 채 '적극적 평화주의'를 주창했다.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16일 자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전쟁 체험자가 줄고,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지금이야말로 역사를 마주 봐야 할 때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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