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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책임은 내가 진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오벌오피스 책상 위에는 ‘The buck stops here!’란 말이 쓰인 패가 놓여있었다. 직역하자니 ‘책임은 여기서 멈춘다’ 곧,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이다.
 

트루먼의 책상 위에 있던 말
트럼프는 책임 전가의 달인
누가 더 위대한 대통령인가
책임이 문제 해결로 이끈다

그런데 ‘벅(buck)’이란 단어가 ‘책임’이라는 뜻을 갖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호이트 벅이라는 이름의 대장장이가 칼날이 날카로우면서도 오래가는 주머니칼을 만들었다. 그는 1902년 칼끝이 살짝 치올라간 모양의 이 칼을 ‘벅 나이프’란 상표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잘 팔리고 있는 이 칼이 그때 이미 인기가 있었나 보다. 과거 서부의 술집에서 도박꾼들이 포커를 할 때 이 칼을 썼다.
 
참여자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며 카드를 섞고 패를 나눠주는데, 그 역할을 하는 딜러 앞에 이 칼을 놓았던 것이다. 패를 잘못 돌려 게임을 망칠 경우 딜러가 책임을 진다는 뜻에서였다. 실제로 트루먼은 결정을 망설이는 각료들이 있으면 그 패를 가리키며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자신을 가지고 추진하라”고 격려했다 한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다시 한번 이 ‘벅’을 소환했다. 대선 광고 제목으로 ‘책임은 내가 진다’를 선택한 것이다. 일이 잘못될 때마다 남 탓을 하기 일쑤인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을 비꼬기 위함이다.
 
광고는 코로나19 태스크포스의 백악관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가 미국의 검사 능력 부족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탓으로 떠넘겼던 발언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트럼프는 당시 “나는 그것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 말해 빈축을 샀었다.
 
이렇게 책임을 전가할 때도 ‘벅’이 쓰인다.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걸 ‘pass the buck’이라 한다. 포커판의 딜러가 그 역할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때 하는 말이었는데, 나중에 ‘책임을 떠넘긴다’는 의미가 됐다.
 
선데이 칼럼 8/22

선데이 칼럼 8/22

트럼프만 한 ‘패스 더 벅’의 달인은 찾기 어렵다. 잘된 일은 자기가 안 했어도 자기 덕이요, 잘못된 일은 자기가 하고서도 남 탓이다. 자신이 주도한 미·중 무역전쟁 탓에 증시가 폭락하면, “멍청한 파월(중앙은행 의장)” 탓이며, 코로나 사태에 대처를 잘못해 최대 피해국이 되고도 그저 중국과 세계보건기구(WHO) 탓이다.
 
미국보다 중국에 친근감을 느끼는 듯한 우리 정부가 미국에서 ‘벅’을 수입하는 건 아이러니다. 그 벅이 ‘여기서 스톱’하는 거면 좋으련만, 불행하게도 ‘남에게 패스’하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맹렬히 재확산되자 정부는 원인을 특정 교회 탓으로 돌리며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물론 그 교회가 가장 큰 원인 제공을 한 것은 맞다. 또 그 교회 목사와 일부 신도들의 행동은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이해 불가다.
 
하지만 그에 앞서 교회 등의 소모임 금지를 해제하고 외식·공연·여행 쿠폰을 약속했으며 임시공휴일까지 지정해 연휴를 만든 건 정부였다. 코로나 병상을 감축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감염병 전문가 김우주 교수의 말마따나 “정부가 국민에게 방심해도 된다는 일종의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근본 원인은 그 어떤 요인보다 정부의 방역 정책 실패인 것이다.
 
앞서 1차 확산기에 신천지 교회와 이태원 성소수자클럽에 화살을 돌린 것과 마찬가지다. 그때도 닷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곧 종식”을 외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둘러 어려운 경제를 살리겠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지나친 안이함과 조급증 탓에 오히려 경제를 더 죽이고 국민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니 하는 말이다.
 
거기에다 지지율이 역전돼 긴장하던 여당은 국가적 위기를 자신의 위기 탈출 기회로만 여기는 듯한 태도다. 안하무인 독주와 부동산 대책 실패로 성난 민심의 화살을 코로나 사태로 돌려보겠다는 의도다. 광복절날 벌어졌던 광화문 집회를 어떻게든 야당과 엮어보려고 애쓰는 게 눈물겨울 정도다. 야당도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황교안 전 대표가 전 목사에게 기댔던 건 변명의 여지가 없고, 뒤늦게 극우세력을 손절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집회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말렸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야당에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사태 수습과 대책 마련에 전력을 기울이는 게 집권 여당의 바른 자세다. 남자끼리 엉덩이 좀 두드리는 게 뭐 나쁘냐는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늘어놓을 시간에 말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근본 원인을 찾아 바로잡는 대신, 심각한 결함이 있거나 무능력한 우리 편은 놔두고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며 어물쩍 덮어버리고 상황을 마무리하는 게 반복되는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책임자 경질 대신 통계로 물타기 해서 감추려는 정부의 시도도 다른 게 아니다.
 
책임질 줄 알아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트루먼이 역대 위대한 미국 대통령 중 한 손에 꼽히는 이유도 다른 게 아니다. 책임 전가는 곧 해결 불가로 이어질 뿐이다. 지난 세기 미국의 사회저항 시인 에드윈 마컴의 노래가 그것이다.
 
“책임이 그대 문을 두드릴 때 기꺼이 맞으라/그를 기다리게 하면 떠나도 다시 올지니/일곱의 다른 책임과 함께.”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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