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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안현태·백선엽…안장과 파묘 사이, 잠 못이루는 현충원

“앞으로 현충원에 묻힐 자들, 예를 들면 백선엽의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백선엽 장군을 서울현충원에 모실 수 없다는 국가보훈처의 넋 나간 조치는 당장 취소돼야 마땅하다.”(윤상현 무소속 의원)

 
지난 5월 정치권에선 고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 대장)의 현충원 안장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백 장군은 노환으로 위독한 상태였다. 민주당은 백 장군의 친일 행적을 근거로 “친일파 군인들의 죄상은 한국전쟁 때 세운 전공만으로 용서받을 수 없다”(김홍걸 의원)며 안장에 반대했다. 반면 통합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육군 대장이자 전쟁 영웅을 이렇게 대접해도 되냐”(주호영 원내대표)라고 반발했다. 여야의 논쟁은 6·25 전쟁을 이끈 영웅이면서 동시에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에 잠시 몸담은 이력 등을 두고 벌이는 좌우 진영간 역사 전쟁이었다.  
  

현충원에 잠든 북한 노동당 비서  

노무현 정부였던 2005년 국립묘지법이 제정된 이후 친일 행적이나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한 인물의 현충원 안장 여부는 정치권에서 자주 공방의 대상이었다. 2010년 10월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대표적 사례다. 황 전 비서는 사후(死後) 1등급 훈장인 무궁화장 추서를 바탕으로 현충원에 안장됐다.
 
2010년 10월 14일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서 열린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안장식. [중앙포토]

2010년 10월 14일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서 열린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안장식. [중앙포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고인에 대해 생전과 사후 모두 국가가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고 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황장엽 선생은 2300만명의 북한주민이 김정일 독재정권 아래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공이 있다"며 "국가 유공자의 예우를 받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황 전 비서가 현충원에 안장된다면 대한민국 정체성에 혼란을 제기할 수 있어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이낙연 민주당 사무총장 역시 “황 전 비서의 현충원 안장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5공 비리’ 안현태도 현충원 안장

1988년 국회 5공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안현태(왼쪽) 전 청와대 경호실장. 오른쪽은 장세동 전 안기부장. [중앙포토]

1988년 국회 5공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안현태(왼쪽) 전 청와대 경호실장. 오른쪽은 장세동 전 안기부장. [중앙포토]

하나회 출신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3년간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 전 경호실장은 2011년 8월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5공화국 시절 기업으로부터 5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지만, 국가보훈처 국립묘지 안장심의위원회는 심의를 통해 안씨를 안장 대상으로 했다. 당시 안장심의위는 안 전 실장의 현충원 안장에 대해 "1968년 청와대 침투 무장공비를 사살해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하고, 군 전역 후에는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국가안보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심의 과정을 문제 삼았다. 조영택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심의위 회의록에 따르면 위원 일부는 “안현태씨가 받은 5000만원은 뇌물이라기보단 떡값 정도의 수준”이라고 했고, 또 다른 위원은 “청와대 경호실장이 아니었다면 그같은 범죄를 저지를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문제 제기가 나왔다. 권영세 의원은 “5공 비리의 주역으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안장 자체가 영예가 될 수 있는 국립묘지 안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절차를 다시 심의해 안씨를 이장시키는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두환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으면…”

전두환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지만 내란죄 혐의로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아 법률적으론 현충원 안장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중앙포토]

전두환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이지만 내란죄 혐의로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아 법률적으론 현충원 안장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중앙포토]

2017년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현충원 안장 논란이 불거졌다. 전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가 자서전을 통해 “우리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12.12쿠데타의 피해자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으면 한다”고 밝히면서다. 전 전 대통령 측은 형법상 내란죄 혐의로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사면과 복권이 이뤄졌기 때문에 현충원 안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법상 안장 대상에서 제외되는 형이 확정된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면서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장지, 장례 방법에 관한 사항은 국가장법에 따라 결정해왔다”며 명확한 판단을 미뤘다.  
 
조오섭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전직 대통령이라도 중대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국가장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른바 ‘전두환 배제법’을 발의했다. 조 의원은 “전씨는 형법상 내란죄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은 중대 범죄자로 사면, 복권과 무관하게 국가장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선엽 논란'에 파묘법 발의한 민주당 

지난 7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된 고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의 안장식.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헌화를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된 고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의 안장식.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헌화를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충원 안장을 놓고 여야가 찬반으로 나뉘어 두 달 넘게 정치 공방을 벌였던 백선엽 장군은 지난달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장성급 장교 또는 20년 이상 군에 복무해야 한다는 안장 요건(국립묘지법 제5조)에 더해 무공훈장을 수여한 상훈 이력이 있어서다. 하지만 민주당은 현행 국립묘지법 자체를 문제 삼았다. 친일 인사로 분류된 인물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 자체가 ‘역사 왜곡’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유골이나 시신을 다른 장소로 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를 통해 "금년 가을 정기국회에서 국립묘지법이 개정되리라 믿는다"며 이른바 '친일파 파묘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이와 관련 김기현 미래통합당 의원은 "민주당이 백선엽 장군 등을 타깃으로 한 파묘 입법 절차에 돌입한 것인데, 박정희 전 대통령도 파묘할 기세"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뒤집어 현충원에 묻힌 인물을 파내야 직성이 풀린다면 이것은 진영논리에 빠진 좁쌀 정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현재 국립현충원엔 애국지사와 임시정부 요인, 전직 대통령 등 총 21만여명(서울 8만4343명, 대전 13만430명)이 안장돼 있다.  
 
전문가들은 현충원 안장과 관련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명확한 안장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죽은 자의 정치학』 저자인 하상복 목포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는 “국립묘지 안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 국가의 정치 철학과 정체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명확한 기준 없이 과오가 뒤섞인 인물을 안장할 경우 찬반 격론이 오가고 정치 쟁점화하는 상황을 막을 수 없다"며 "특정 정파의 이데올로기를 떠나 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안장 기준을 마련하고, 논란이 있는 인물의 경우 안장 전 유예 기간을 두고 오랜 시간에 걸친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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