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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품격 있는 말의 정치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김원웅 광복회장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지난 15일 광복절 기념사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친일파와 결탁했다” “안익태는 민족반역자” “친일 인사 국립현충원 파묘(破墓)” 등 자극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6·25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에 대해 “사형감”이라는 말도 했다. 이틀 뒤 더불어민주당의 이낙연 대표 후보는 “광복회장으로서 그런 정도의 문제의식은 말할 수 있다”며 “그것을 차분하게 따져보지 않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또 웬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거들었다.
 

막말·극언은 발언자 인격 드러내
진정성·논리 갖춘 말이 힘 있어
품격 있는 지도자가 지지 받아

김 회장의 발언은 대한민국의 성공과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독재와 장기 집권의 과오가 있었다 해서 그의 독립운동과 자유민주주의 수호, 한·미 동맹 체결 등의 업적을 부정해선 안 된다.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가 1942년 만주국 10주년 경축 음악을 작곡·지휘하는 등 친일 행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독립을 염원한 것도 사실이다. 그의 친일 행적을 문제 삼아 ‘애국가’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김 원장이 파묘 대상이라고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없었다면 한국이 지금과 같은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친일 잣대로 한 인물을 재단하는 건 편협하다. 역사적 인물들이 모두 정의롭고 용기 있게 살았으면 좋겠지만, 인간인 이상 세상을 살다 보면 오점이 남게 마련이다. 이런 오점 때문에 한 인물의 일생을 깎아내리는 건 역사를 협소하게 만들 뿐이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는 포용적 자세가 필요하다.
 
격과 수준을 뜻하는 한자 ‘품(品)’은 입 ‘구(口)’ 세 개가 모여 이루어졌다. 말이 쌓이면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는 뜻이다. 말을 들으면 인격을 알 수 있다. 공감과 배려의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열과 증오를 부르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작은 허물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싸잡아 거친 말로 공격하는 건 인격의 천박함을 드러낼 뿐이다.
 
서소문 포럼 8/20

서소문 포럼 8/20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 중엔 극단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서울을 ‘천박한 도시’, 부산을 ‘초라하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서울과 부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전세의 월세 전환은 정상’이라는 발언은 전세 사는 사람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다. 전세가 월세보다 주거 안정성이 높고 세입자 부담이 적은 게 사실인데도 이를 부정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폭탄이 떨어지는 전쟁의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외치는 사람만이 더 정의롭고 더 정당할 수 있다”는 발언은 한반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말이다. 통일부 장관이 남북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한 말이겠지만, 북핵이 한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을 인식한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서 품격 있는 말이 되진 않는다. 말에는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공자는 “말이 실천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을 군자라 했다. 국가 지도자가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으면 국민은 외면하고 나라는 분열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야당과)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 등의 약속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후 정국 운영을 보면 말만 앞섰지 실천이 따르지 않아 지금은 취임사가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5분 연설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건 말에 진정성과 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력과 인격을 갖춘 사람은 극언이나 막말을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의견을 조용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논리적으로 펼치면 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이 지난 17일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화상 연설이 그런 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거칠게 공격하기보다 트럼프가 얼마나 미국을 망가뜨렸으며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했는가를 거론하며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을 역설했다. 그의 연설에 폭스뉴스 앵커 등 보수 진영에서도 호평이 나왔다. 한국 사회도 진영 논리에 치우쳐 극언이나 막말을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진정성과 실력을 갖추고 품격 있는 말을 하는 정치인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시대가 됐다.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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