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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관범의 독사신론(讀史新論)]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끝내 이루지 못한 ‘국토광복’

광복 75주년에 돌아보는 광복의 뜻

1948년 8월 15일 열린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식 모습. [사진 이승만기념관]

1948년 8월 15일 열린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식 모습. [사진 이승만기념관]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8월 15일’은 인도 영화다. 인도 서부 대도시 뭄바이의 어느 공동주택 주민들이 보낸 독립기념일 이야기를 담았다. 8월 15일이 한국에서 광복절이라면 인도에서는 독립기념일이다. 영화에서 이날의 풍속을 볼 수 있다. 젊은 연인들끼리 작은 인도 국기를 선사하고 인도 독립을 축하하는 말을 건넨다. 차알이라 하는 이 지방 특유의 근대 주택 생활문화도 볼 수 있다. 차알은 특히 종교와 문화가 서로 다른 도시 주민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빛의 회복’ 아닌 ‘빛나게 회복’ 의미
조선시대·대한제국서도 널리 쓰여
해방의 날은 곧 국토를 되찾은 날
1948년 정부 세우며 광복을 완성

한국의 8·15와 인도의 8·15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한국의 그 날은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기쁨의 날이고, 인도의 그 날 역시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기쁨의 날이다. 기쁨의 날은 같지만 기쁨의 시각은 다르다. 한국은 이날 정오에 일본 히로히토의 녹음 방송이 라디오 전파를 탔지만 인도는 이날이 시작하는 자정에 네루의 연설이 울려 퍼졌다. 뭄바이 출신 세계적 작가 살만 라슈디의 맨부커상 수상작 『한밤의 아이들』은 이날 자정 태어난 인도 해방둥이의 이야기다.
 
한국의 그 날과 인도의 그 날은 기쁨과 함께 슬픔의 날이기도 했다. 미·소 양군의 분할 점령으로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는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들어섰다. 해방 세 해 후 대한민국 정부가 해방의 그 날에 맞추어 수립됐고, 이로써 이날은 해방과 건설의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하게 됐다. 인도는 힌두와 이슬람의 종교적 대립이 정치적 분립으로 이어져 인도와 파키스탄의 서로 다른 국가가 들어섰다. 카슈미르를 둘러싼 인도-파키스탄 전쟁을 거쳐 독립 세 해 후 인도는 비로소 인도공화국을 선포했다.
  
인도는 독립기념일, 북한은 해방기념일
 
1946년 8·15 1주년 기념식장에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왼쪽)과 백범 김구. [중앙포토]

1946년 8·15 1주년 기념식장에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왼쪽)과 백범 김구. [중앙포토]

오늘날 한국에서 8월 15일은 ‘광복절’이라 부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결과 시작한 이름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날을 ‘해방기념일’이라 부른다. 인도의 경우 ‘독립기념일’이라 불러 이와 또 다르다. 대한민국 제헌의회에서 ‘해방’이나 ‘독립’과 다르게 ‘광복’이라는 말로 8·15를 기념하는 날을 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위해 먼저 ‘광복’이란 말의 유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광복(光復)의 뜻을 ‘빛을 회복함’이라 풀이하는 데 이는 잘못된 새김이다. 광복이란 빛을 회복했다가 아니라 빛나게 회복했다는 뜻이다.
 
광복이라는 말은 전근대 한국에서는 주로 중국 후한을 일으킨 광무제의 ‘광복구물’(光復舊物)이란 구절과 연결돼 이해됐다. 중국의 왕망(王莽)이 한나라 황제의 외척으로 나라를 찬탈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신(新)나라를 세웠는데 왕망의 신나라를 무찌르고 다시 한나라 황실을 회복한 임금이 후한 광무제라는 뜻이었다. 『자치통감』에 수록된 사마광의 사론에서 유래한다. 한국에서 광복이 보이는 이른 시기의 문헌으로 『고려사』가 있다. 마치 광무제가 왕망이 찬탈한 한나라를 빛나게 회복했듯이 공양왕은 우왕과 창왕이 빼앗은 고려를 빛나게 회복했다는 뜻으로 쓰인 광복이 발견된다.
 
조선시대에도 광복이란 말이 곧잘 쓰였다. 임진왜란을 만나 파천의 길을 떠난 선조가 환도하여 나라를 복구하자 이를 가리켜 광복이라고 불렀다. 숙종의 정비 인현왕후가 궁궐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궁궐로 돌아와 국모의 지위를 회복한 사건을 가리켜 광복이라고 불렀다. 영조를 대신해 대리청정하던 사도세자가 임오화변으로 죽은 후 영조가 친정을 회복하자 이를 가리켜 광복이라 불렀다. 고종이 즉위한 후 옛 궁궐 경복궁이 중건되자 이를 광복이라 불렀다. 고종 때 유학자 유인석은 ‘화하(華夏)의 광복’을 힘써 말했다.
 
1946년 8월 15일 대전역 광장에 세운 을유해방기념비. [연합뉴스]

1946년 8월 15일 대전역 광장에 세운 을유해방기념비. [연합뉴스]

대한제국기 언론에서 광복이라 부른 첫 사례는 대한매일신보 제2면(1905.12.2)에 실린 투고문이 아닐까 한다. ‘앙천통곡생(仰天痛哭生)’이라는 필명의 지은이는 1905년의 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민영환의 마음을 온 나라 사람들이 본받아 ‘대한제국의 광복’을 촉구했다. 황성신문 제1면(1907.10.29~30)에는 유길준이 순종에게 헌정한 ‘평화광복책(平和光復策)’이 실렸는데, 1907년의 늑약에 절망하지 말고 실력 양성에 힘써 진정한 독립의 기초를 닦으라는 내용이었다. 1910년 국망에 직면해 망명 한인 김택영은 ‘조국 광복’의 뜻으로 아들 이름을 광조(光祖)라고 지었다.
 
이 시기의 신문과 잡지는 다양한 광복을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유신에 이르는 일본의 정치적 변혁이 광복으로 전달되는가 하면,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 재위 기간에 추진된 이권 회복과 헌정 준비로 광복의 기대가 표명됐다. 일본의 광복, 중국의 광복과 더불어 그리스의 광복도 소개됐다. 그리스가 터키와 싸워 독립을 쟁취한 사건도 광복의 대의거로 찬미됐다. 신채호는 연재물 ‘독사신론’에서 고구려는 멸망 후 즉각 존화양이(尊華攘夷)의 군사가 일어나 광복이 실현됐으나, 백제는 신라처럼 자강의 방책을 구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외세에만 의지해 멸망에 이르렀다고 평론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장과 임시헌법도 중요한 문헌이다. 임시헌장(1919.4.11) 전문(前文)에도 전국의 평화적 광복이 언급되고 있지만, 임시헌법(1925.4.7)의 제1장 대한민국 제3조는 대한민국은 광복운동 중에는 광복운동자가 전체 인민을 대신한다고 했다. 제6장 보칙 제32조는 임시정부는 국토광복후 1년 이내에 국회를 소집해 헌법을 제정하되 국회 성립 전에는 임시헌법이 헌법을 대신한다고 했다. ‘광복운동’ ‘광복운동자’ ‘국토광복’ 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장과 임시헌법의 공식적인 언어였다. 중국 충칭에서 탄생한 광복군(1940.9.17)이라는 이름을 이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1947년 8월 15일 태어난 인도 해방둥이 이야기를 다룬 소설 『한밤의 아이들』 영화 포스터.

1947년 8월 15일 태어난 인도 해방둥이 이야기를 다룬 소설 『한밤의 아이들』 영화 포스터.

광복군에 의한 국토광복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일본군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1941.12.7)으로 영국·미국·중국 등의 대일 선전포고가 잇달아 일어나는 가운데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함께 일본에 선전포고했으나 일본과 싸운 연합국의 지위를 얻지는 못했다.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소련군과 미군에 의해 차례대로 해방됐다. 『얄타 - 8일간의 외교전쟁』의 지은이 세르히 플로히는 얄타회담(1945.2.4~11)에서 두 나라가 한국 문제에 관한 구체적 합의를 도출함이 없이 소련의 태평양전쟁 참전을 결정했기 때문에 한반도 분할이 초래됐다고 말했다.
  
3·1절을 독립기념일로 부르면 어떨까
 
해방 중에서 ‘을유해방’이란 말이 널리 쓰였다. 대전역 광장에 을유해방기념비(1946.8.15)가 세워진 것은 당시 해방으로 충만한 사회적 정서의 발현을 뜻하는 사건의 하나였다. 남원향교에서 발간된 『속동감강목』(1972.12.30)이란 역사책은 경술국치부터 을유해방까지 ‘국치(國恥)’의 기간에 ‘국통(國統)’이 중단된 적이 없었음을 보이고자 부록으로 3·1운동과 임시정부를 기록했다. 이 책을 편찬한 남원 유학자 김종가(金種嘉)는 해방의 감격으로 광복의 의미를 살폈다.
 
해방과 광복은 일치하는 것일까. 대한민국 제헌헌법 전문(1948.7.12)은 한국인이 3·1운동으로 이미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그 독립정신을 계승해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밝혔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해방의 날은 곧 대한민국이 국토를 광복한 날이 된다. 그 광복의 날에 다시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광복의 완성을 기했다. 광복의 날을 독립의 날이라 불러도 좋을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행한 대한민력이라는 달력에서 보듯 3·1절은 본디 독립선언일이었다. 미국이 독립선언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했듯 3·1절을 독립기념일이라 부르면 어떨까.
 
유대 민족의 광복절 ‘유월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광복절은? 정답은 유대 민족의 유월절이다. 유대인의 민족 해방을 기념하는 이 명절은 유대 달력 1월 14일부터 시작한다. 가톨릭 용어로 유월절을 해방절이라 일컫기도 한다.
 
가톨릭 명절에는 성모승천대축일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성모 마리아가 선종한 후 하늘나라에 들어 올림을 받았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공교롭게 8월 15일이다. 한국의 광복절과 같은 날이다.
 
유대인의 유월절이나 가톨릭의 성모승천대축일을 보면서 한국의 8월 15일 광복절로부터 세계와 소통하는 열쇠를 얻을 수 있음을 발견한다. 광복절을 이해하는 열린 마음으로 유월절이나 성모승천대축일을 이해해보자.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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